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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마당/시카고사는 이야기

1978년 거사 결혼식 후로 30년도 넘게 지나서---

by 바람거사 2025. 12. 13.

<2014년에 비공개로 썼는데, 오랜만에 열어봤다가 11년 만에 공개로 돌렸습니다. 이제 아들은 사내 둘(14/11), 딸은 딸 둘(10/6)을 뒀답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흐릅니다.> 

1978년 9월 13일, 우리 결혼식:

[ 2013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국 뉴스를 보다가 남산타워가 보이고 빌딩숲사이로 보이는  Pacific Hotel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 저기가 1978년 9월 13일 우리가 결혼했던 그 호텔! 그래서 다시 화면을 정지해 놓고 찍어논 거랍니다. 오른쪽 이미지는 2024년 8월, 명동교자에서 칼국수 즐기고 퇴계로로 나오면서 찍은 사진인데, 이제 높은 빌딩사이에서 옛 간판을 그대로 보는 게 참 감회가 깊다.]

고 김항욱 교수님(후에 총장)이 성혼 선언문을 낭독-. 그리고 나의 공군장교 64기/대학 동기생과 직장 동료/신부 친구와 함께

신랑신부의 힘찬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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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0일: 아들 결혼식은 신부의 고향인 앨라배마 버밍햄에서- 

우리 부부와 같이 찍고/ 좌로부터 막내처남,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불란서 태생 피아니스트, 그리고 로스쿨 친구들과 같이-.

 

식이 끝나고 피로연에서 깜짝 선보인 아이리쉬 탭 댄스(Irish Tap Dance)! 신부가 아이리쉬계 이민 후손인데, 전통 무용이라 남다르게 관심이 더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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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2일 딸 결혼 전야제(신랑 측에서 리허설 디너 대접), 6월 23일 결혼식: 

우리 식구들 모두 한복으로 갈아입고서 디너파티 전에 모친과 더불어서 하례도 받고 사진을 찍었죠. 폐백예식을 하는 동안 한복의 다양한 색상과 그 멋에 신랑 식구들이 너무 신기한 듯 모두들 한층 기분이 고무되었습니다. 장남 결혼식은 신부가 사는 앨라배마에서 하였기에, 모친이 참석지 못하고 장모님만 같이 하였는데, 이번에는 모친만 참석,  장모님은  3월 중순에 당뇨병으로 인한 스트록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참석지 못하여 집사람과 처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이게 웬 고속도로 진입 차단 경고라고요? 맞습니다. 시카고 시내로 들어가는 I-94에서 빠른 소통을 위해서 시카고 다운타운까지 출구가 두 군데로 제한된 급행도로 진입로 입구인데, 붉은 X는 다운타운에서 교외로 나가는 시간대라는 걸 알려주는 게지요. 6/22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에는 교통체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7시에 신랑 측이 마련한 결혼전야 디너가 있고, 신부 측 하객들은 6시에 미리 사진을 찍고 하례를 하는 모임을 갖기로 하여서, 모친과 여동생 내외를 태우고 시내로 가는데, 교통체증이 심하여 이리 가다가는 30분 이상이나 늦을 거 같아서 매우 난감하였습니다. 집사람은 다른 친척들을 데리고 이미 약속장소에 다 가고 있다고 전화가 왔는데, 내가 탄 차가 6시까지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면서, 7시 전에는  도착할 거 같다고 통화하였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I-90와 합해지는 Junction 지역이라 최악의  체증이 계속되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요령으로 1차선 도로로 서행을 하고 있는데, 이곳 진입로를 막 지나자마자 급행도로로 진입방향이 바꿔져서 이 천국으로 가는 10개의 게이트가 일제히 서서히 열리는 거예요. 아~ 소리를 내며 뒤를 보니까,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후진을 하고, 심지어는 내 앞차도 후진을 하더군요. 그리고 흥분된 맘을 억누르며 그 진입로로 웽~ 하며 들어섰습니다. 이 거사 앞으로 서너 대가 앞장을 섰고 15분이 채 못되어 다운타운으로 빠져나와서 6시 10분 전에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집사람은 아직 도착 전이었고 6시가 좀 넘어서 들어 오더군요. 집사람은 날 보더니, "아이고, 어찌 된 거요? 헬리콥터라도 타고 온 거요?" 물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절묘한 타이밍도 있었다는 얘기는 화제가 되었죠. 이런 행운은 진입방향이 바꿔지는 5:00시 후에 마지막 차가 다 빠져나간 후 30분 정도 양방향을 다 막아놓고 시 교통국의 트럭이 와서 먼저 장애물을 치우고 게이트를 작동시키기에, 그 진입로 입구에서 타이밍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한 거죠. 게다가 1차선에 있었기에 진입이 가능했던 거랍니다. 이 거사는 고갤 설레설레 흔들었죠. 그게 어쩜 나의 행운이 아니고 딸애의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사내외와  아들/딸 내외와 같이 사진을 찍으며 모친이 모처럼 흐뭇해하셨습니다. 우리 내외는 자손의 번창과 번영의 의미로 대추와 밤을 두 손 가득히 던져줬습니다.

2012년 6월 23일에 딸애의  결혼식은 시카고 다운타운이 젤 멋있게 보이는 천체관 뜰에서 6시에 치르고, 피로연은 건물 내에서 새벽 2시까지-. 그런데, 주례는 신랑신부의 역할모델이었던 당시 일리노이주 부검사이었던 오빠인 AJ에게 부탁하였고 기꺼이 수락하여 더욱  좋았죠. 신랑은 일리노이 공대출신 엔지니어인데, 잘 다니던 직장을 몇 년후에 그만두고, MIT Sloan 경영대학원을 풀타임 2년 만에 Finance(재정) 전공을 하고 졸업하는 달에 식을 올렸답니다. 딸애는 Socialogy(사회과학)을 전공했지만, 마케팅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 제약회사에 이어 맥도널드 본사에 다니며 파트타임으로 3년 반 만에 Northwestern Kellogg 경영대학원에서 Marketing을 전공하여, 결혼 후 딱 1년 뒤인  2013년 6월에 졸업했습니다. 장남도 Lawyer에 추가로 2019 University of Chicago, Booth에서 Finance 전공 MBA 학위를 끝냈습니다.

결혼식 주례/ 혼인 증명서 원본에 서명을 하는 장남과 며느리인데, 로스쿨 동기생 부부입니다.

일몰 전까지 미시건 호수 건너편 시카고 스카이 라인을 구경하며 칵테일 시간을 즐기고, 또 여러 그룹별로 기념촬영-.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다운타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연회장에 신랑/신부와 하객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거사 부부가 입장하면서,  마치 정치인같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노련한 제스처를 쓰는 바람에 어찌 그리 능숙하냐고 모두들 한 마디씩 하였죠.ㅎㅎㅎ. 젤 마지막에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시카고의 야경이 서서히 밝아 옵니다. 이제 모두들 만찬을 즐기고--.

[무르읶는 피로연]

신랑/신부 아빠는 미국에서 자녀 결혼식을 치를 때 가능하면 축사를 꼭 해야 합니다. 이 거사는 미리 써온 한쪽 분량으로 연설을 했죠. 한글로 번역하면, "사람은 누구나 백지 한 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백지를 이제 두 사람이 열심히 정성껏 채워나갈 걸 부탁하고---또 사랑 외에도 희-로-애-락을 잘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새 신랑/신부는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할머니곁에 잠시 들렀습니다.

신랑/신부가 일생에서 아마도 가장 행복한 기분으로 춤을 추고--.

아빠와 함께 하는 춤은 꼭 해야 하는 순서입니다. 거사는 예전에 볼륨댄스를 배운 가락이 있고, 딸애는 고등학교시절부터 과외활동으로 Pom-pom(팜팜)과 Orchesis(댄스협회) 회장도 하면서, 공연도 여러 차례 하였고 직접 안무도 했죠. 대학에 가서도 방학 때 Dance 학원에 다녔고요. 아마도 예전에 고전무용을 하신 할머니의 소질을 이어받았나 봅니다. 이번에 춘 춤은 Fox Trot(한국의 블루스와 흡사)인데 음악은 Stevie Wonder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이었습니다.

9시가 되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거금을 냈죠.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 여름철 동안 매주 토요일에 시카고시에서 미시간호수 옆에 있는 Navy Pier라는 유원지에서 실시합니다. 덕분에 피로연 분위기가 더한층 고조되었죠.ㅎㅎㅎ 그리고 새벽 2시까지 잘 마시고 놀았고 시카고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한국의 결혼식 하고는 완전히 틀리죠? 낮에 식을 올리면 점심식사만 하고 대부분 하객들은 떠나가고 신랑/신부 측근들만 따로 가서 피로연을 하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장소에 따라 비용차이가 크게 납니다. 한국에서 온 하객들은 영화에서 본 할리우드 배우들이 결혼식을 하는 거 같다고 했지만, 오후 6시 무렵에 식을 올리는 경우는 대체로 이런 순서로 진행이 됩니다. 비용은 제법 많이 들어갔지만, 신랑 측도 일부 부담을 하였죠. 근데 아시죠? 결혼전야제는 신랑 측 부담이고 결혼식날은 신부 측 부담이라는 것. 하여튼, 식솔들이나 하객 모두에게 황홀하고 소중한 추억을 안겨줬답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일 년내에 신랑의 부모가 평생 동안 과음과 흡연으로 인한 지병이 악화되어 허무하게도 6개월 간격으로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