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문고 37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 함형수(1914~1946) 시인은 생전에 불과 17편의 시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6년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 재학 시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퇴학당한 후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서정주(徐廷柱)‧김동리(金東里) 등과 교분을 맺었다. 1936년 『시인부락』 창립동인으로 참가해서, 창간호에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형화(螢火)」, 「홍도(紅桃)」, 「그 애」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1937년 가을 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건너간 이후 만주 길림성 도문(圖們) 시의 공립 백봉우급학교(白鳳優級學校) 교원으로 재직했다. 194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음」이 당선된 바 있다. 광복 후 북한에서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1946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집은 없고, 「N..

단풍과 나목

[거사 주]: 기원전 3100년에 메소포테미아의 수마리언들이 일년을 12달로 정하고 한 달이 29~30일로 달력을 처음 만들어 사용했는데, 그때는 천체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가 매년 일정하게 반복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여튼, 인류가 만든 달력과 시계에 의해서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서 계절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추분이 지나고 가을로 들어서면서 북반구에서는 해의 남중이 낮아지고 또 일조량도 적어집니다. 그리고 여름내 무성했던 나무도 이제 때가 왔다는 걸 감지하고 떨켜층을 만들면서 단풍 진 잎새를 떠내 보내는 겨우살이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런 계절에 인간의 감성도 한층 무르익어갑니다. 단풍과 나목

"이빨이 난 땅"(단편소설)- 리다설(중국)

[거사 해설]: 해외문인협회지 해외문학 27호에 게재된 단편소설인데 단숨에 읽을 정도로 글 구성이 매우 탄탄하고 주제의 흐름이 유연하여,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였다. 단편 소설이라 분량이 많아서 포토 복사를 하기도 그렇고 해서 해외 문학지 발행인한테 부탁했는데, 바로 보내주셔서 올렸다. 일반적으로 단편 소설의 주 테마는 지지고 볶는 사랑 아니면 그런 삶이다. 리다설(李茶雪): 본명 리명화(李明華) 소설가: 1972년 5월. 흑룡강성 탕원현에서 출생. 흑룡강대학 졸업. 단편소설 「개개비를 아시나요」등 중단편소설 다수 발표. 연변작가협회회원. 흑룡강작가협회회원. 1 "킁... 킁... 그릉 그르릉..." 가래 끓는 소리가 비좁은 집안을 가득 채운다. 소리 때문일까. 아이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루..

단풍(시)---장영희

2010년에 첨 올리고, 2022년 만추에 들어서 다시 올렸고, 올 2023에도---. 장영희(장영은)님은 70년대 중후반, 박인희가 데뷰하던 시절에 '가버린 계절'를 불렀던 통기타 학사가수, 그 후로 도미하여 시카고에 정착. 2005년 신인상 수필로 등단, 2006년 에서 이 바람거사가 수필 '추상'이 당선될 때, '단풍' 과 '새해'라는 시로 당선하였습니다. 2010년도 만추를 넘어 이미 초동으로 접어들었지만, 지난 만추지철의 낙엽지던 풍경을 반추하며 그녀의 추심을 음미해보세요. 단 풍 가을이 오면 청청 하늘빛으로 보낸 어린 아들의 고사리 손 더듬어 붉은 그리움의 눈물 한 점 나무에 건다. 가을이 되면 흩날리는 낙엽에 야윈 가슴 움츠리던 어머니의 노란 얼굴도 은행잎 하나하나에 웃고 있다. 그리움만 그..

"간밤에 부던 바람" - 선우협 (1588-1653)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滿庭桃花) 다 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구나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요 [해설 1] 떨어진 꽃도 꽃이다. 봄바람이 거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뜰에 가득 피어 있던 복사꽃이 다 떨어졌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한다. 떨어져 있어도 꽃은 꽃이다. 쓸어 무엇하겠는가? 선우협은 선조대부터 광해군, 인조, 효종 연간을 산 평북 출신의 성리학자다. 유년기에 임진왜란을 보았고, 30대에 인조반정으로 한때의 권력자들이 봄꽃처럼 피 흘리며 스러져가는 것을 목도했다.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까? 당대에 그의 문명은 드높아 여러 차례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조정에 우뚝한 선비 중 누가 그를 넘을 수 있겠는가”라고 찬탄했던 거유(巨儒) 우암 송시열마저 훗날 ..

"옥이 흙에 묻혀"- 윤두서/"오우가"- 윤선도

[거자 주]: 예전부터 "옥이 흙에 묻혀-" 를 좋아했다. 지금 날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 누가 날 알아주는 이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그날을 대비하여 나를 다시 둘러보고 만전을 기한다. 옥이 흙에 묻혀, 길가에 밟히이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구나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해설] : 옥이 흙에 묻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흙인 줄 알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행인들 발길에 흙과 함께 밟히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이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나타날 때까지 흙인 듯이 있거라.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이다. 1693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당쟁의 심화로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

"석모도에 부는 밤바람"- 거사(단편 2007)

석모도에 부는 밤바람: 이젠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떨어졌다. 그래도 아직은 기온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때라, 마지막 가는 추색을 즐기려고 주말에는 2시간 이상을 기다려서 페리를 타고 건너온 사람들이 저 멀리 보문사로 가는 길목은 북적거리지만, 민석이네 대하 양식장 쪽으로 차를 몰고 오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하였다. 작년 가을엔 그래도 올해보단 나았다고 하였다. 주말이면 몇 킬로씩 사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또 컨테이너 앞 평상에서 주변 분위기에 빠져들어 소금구이에 소주를 마시고 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는데. 그러나 민석이 잔뜩 기대를 했던 올해 장사는 여러 이유로 죽을 쑨 채로, 그렇게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만규는 손아래 막내처남인 민석의 얘길 잠시 털어놨다. 만규가 30..

"아카시아꽃 향기"- 거사(단편 2002)

희숙의 외할머니는 일찍 홀로되어 세 딸을 데리고 하숙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하숙하던 어느 젊은이는 이미 정혼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미색이 뛰어난 큰딸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집안 어른들의 뜻을 거역치 못하고 혼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어린 핏덩이를 업고 나타난 한 여인네로 인하여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신랑은 그 날로 행방불명이 되었고 다음해에 6.25전쟁이 터지면서 서로들 영영 만날 수가 없었다. 그 애는 모친의 미색을 닮아서인지 큰 눈에 도톰한 입술이며 낭랑한 목소리는 당시 사춘기에 막 눈을 뜬 초등학교 6학년 사내애들에게 있어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애의 착한 맘씨는 어디에서 왔나?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한테서? 석이는 장난이 심하고 놀기는 좋아했..

거사의 "가족의 온도" 영문 번역소설 "Who Made Mom Cry?"

2014년 11월 말에 한글판 "가족의 온도"를 출판했지만, 어머니에게 바로 드리지 못하고 한국에서의 반응을 눈여겨보다가 실기하면 후회할 거 같아서 2015년 10월에 드렸고, 간병하시던 분이 두 달에 걸쳐 읽어주면서 서로 수 없이 울었단다. 그리고 1년 후 2016년 11월 8일에 모친이 돌아가셨고, 장례식 때 그 책을 모친 곁에 넣어드렸다. 1979년에 시작한 미국 이민 생활을 40여년동안 했어도 한국정서에 머리가 굳어진 나이 서른에 떠나왔기에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거 같이 보여도 영어는 언제까지나 제 2 외국어다. 그러다보니 이민 1세로서 영문판을 낸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또한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2,3세들은 물론, 주류사회에 한국의 정서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꼭 출판을 하..

필연(必然)과 우발(偶發)이 어우러진 人生

* 거사가 2002년에 거나하게 한 잔 들고 쓴 넋두리인데, 20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단상(斷想)에 변함이 없어서 맘의 정화가 필요할 때 끌어올립니다. * 필연(必然)과 우발(偶發)이 어우러진 人生 노자가 얘기한 도가 제아무리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 하여, 포괄적인 최상의 경지를 말한다고 하여도, 석가모니가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五蘊皆空 度一切苦厄)'한 해탈을 하였어도, 또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을 믿고, 죽은 뒤 천상에서 영생한다 해도, 우리는 단지 찰나를 살다가는 진화가 가장 잘된 생명체일 뿐이 다네. 고상함과 고귀함을 얻고 깨달아도 그게 그 걸세. 바뀔 건 하나도 없다는 얘기네.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도 그런 체하는 일일세. 천지 불인(天地不仁)이다 상선약수(上..

"뉴욕의 젊은 여자"(단편-바람거사)

1996년 가을, 석이는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30여 년 전 추억 속의 한 여인의 행방을 좀 알아보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두 달 후에 그녀의 고등학교나 대학동문회에는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해외 거주’라는 네 글자만이 남아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서편 저 멀리 고국의 하늘 아래 어디에서 잘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온 터라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하여 한국에 있는 사이트에 이름을 조예 해보니 불과 네 명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나이가 비슷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띄워 봤다. 그녀는 P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역시 동명이인이었다. 사실, 구미지역에서 살고 결혼도 했다면, 성과 이름이 몽땅 바뀌기가 십상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면 몰라도 가정주부가 자신의..

"오직 단 하나"- 소향

석주 어머니가 어려서 양부모와 남동생 덕근이까지 다 잃고 외로움과 설음에 젖어 살던 시절에 오직 바라는 건 따뜻한 엄마의 손길---. 마치 소향의 "오직 단 하나" 같이, 맘을 저미게 합니다. 오직 단 하나(드라마 "마의" 주제곡 - 2012) 길을 걷다 지쳐서 아직 쉬고 있는지 기다려도 그댄 오지 않아 해는 지려하는데 어둠이 깔리는데 여전히 나 혼자 서있네 아무것도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질 않아 가려진 어둠속을 혼자 걷네 내 아픔도 내 슬픔도 모두 가져가버릴 오직 단 하나 시력을 잃은 듯이 앞은 보이지 않고 꿈처럼 모든 게 멈춰서네 기다리고 있는데 눈물도 말라가는데 넌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질 않아 가려진 어둠속을 혼자 걷네 내 아픔도 내 슬픔도 모두 가져가버릴 오직 단 하나 [간주]..

“시인”-이문열(장편 2009, 2012)

근 10년 전인 2013년 3월에 시카고에서 이문열 작가의 “시인” 사인회에 참석하여 독자들과 대담을 경청하고 그 책자도 샀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으로 “사람의 아들”이나 그 외 몇 권의 작품은 오래전에 접하였지만, “시인”은 그 동안 서재의 한 귀퉁이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3년 1월 3일부터 6일까지 딸네 식구들과 같이 Miami에 있는 호텔 리조트로 避寒가면서 읽을거리를 찾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문열 작가는 이 책에 심혈을 들인 수작으로 생각하였는데, 국내 독자들한테 큰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거사는 읽기 시작하여 점점 빠져들면서 나흘 만에 메모하며 완독 하였다.. 김병연 金炳淵(호: 난고 蘭皐, 별호: 김삿갓-金笠):1807~1863 순조 11년(1811) 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