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문고

"뉴욕의 젊은 여자"(단편-바람거사)

바람거사 2023. 2. 3. 10:39

1996년 가을, 석이는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30여 년 전 추억 속의 한 여인의 행방을 좀 알아보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두 달 후에 그녀의 고등학교나 대학동문회에는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해외 거주라는 네 글자만이 남아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서편 저 멀리 고국의 하늘 아래 어디에서 잘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온 터라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하여 한국에 있는 사이트에 이름을 조예 해보니 불과 네 명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나이가 비슷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띄워 봤다. 그녀는 P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역시 동명이인이었다.

사실, 구미지역에서 살고 결혼도 했다면, 성과 이름이 몽땅 바뀌기가 십상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면 몰라도 가정주부가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갖는다는 게 흔치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다시 미국에서 검색해 보니, 두 명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이제 대학 4학년의 학생이었고, 다른 하나는 뉴욕시에 살고 있었다. 석이는 헛일 삼아 메시지를 또 보냈는데, 그녀는, ‘사연이 많으신 모양인데,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라는 영어로 쓴 답장을 보내 줬다. 그러나 그녀가 석이가 찾는 사람이 아녀도, 친절하게 답장까지 해준 성의에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메일이나 주고받자는 제의를 했었는데 흔쾌히 받아 줬고, 그로부터 4년이 넘도록 사이버공간에서만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우여곡절을 겪는 교신을 하면서, 그는 메마른 이국 생활에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자극을 만끽하게 되었다. 막가는 청춘의 하한선에 이르러 얼굴도 모르는 한 여인과 설레는 밀어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뇌수 깊숙이 잠재웠던 감성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화끈하게 달 필요도 없고, 안타깝게 미련을 둘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녀의 생활이 있을 거고, 그의 생활이 있으니, 어쩌다가 생각나면 잔잔한 강물과 같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부유한 부모덕에 아버지의 근무처를 따라 세계 여러 곳을 다니다가 남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데, 한국에서는 채 2년도 살지 않아서 한국말을 좀 듣기는 하지만, 거의 못 한다고 하였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나왔고, 재작년에 대학원을 뒤늦게 끝내고 반년 동안 새로운 직장을 찾는 데 고심하다가 일 년 전부터 라틴계 텔레비전 방송국에 근무를 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문외한인 집사람이 우연히 서재에서 발견한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사연을 모아 논 카피를 발견하고서 발파용 도화선에길이 당겨졌다. 그동안 넌더리가 나도록 참아 왔던 집사람마저 꿈만 먹고사는 인생의 낙오자니 뭐니- 잔뜩 험담만 해대더니만, 뉴욕의 젊은 년 하고 잘해보라며 주섬주섬 봇짐을 챙겨 나갔다. 딸 얘기만 듣고서 험한 욕설을 퍼 대는 장모의 화난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그게 아니라고 나름대로 변명을 수차 피력하였지만, 너무도 뚜렷한 증거가 있어서 발목이 잡혀 버렸다. 가련한 사람. 미안 하이. 조금만 기다리고 참아 달라는 말로 지금까지 수없이 달래 왔었지마는, 이제는 그 옛날에 열심히 쌓아 놓은 사랑의 정열은 마르다 못해 얼굴만 봐도 지겨운 화상이 되었다는데, 더 붙들 명분이 없었다. 어차피 훗날 가슴 아픈 영원의 이별을 할 사람이 일찍 없어졌다는 자위를 하면서도, 미안할 따름이라 생각했다. 늦게나마 그를 떠나는 그녀가 행복하길 빌어 본다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별거는 이혼으로 가는 첩경이라는데, 앞으로는 절대 성질도 안 부리고, 욕도 안 하고, 금방 후려쳐서 잡아먹을 듯이 눈을 곱 뜨지도 않을 거며, 그동안 고상하게 하이테크를 한다고 뜬구름만 잡고 있던 미련을 싹 버리고, 벼룩시장에 쭈그리고 앉아서 장사라도 하겠다는 각서를 내보이며 싹싹 빌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참으려면, 좀 더 참지.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꼬라박으며 속을 까바치길 바랐단 말인가? 그동안 어려운 고비는 다 넘기고서 이제 어찌하잔 말이냐고!’ 하며 혀를 찼다.

그는 집사람이 모르게 그런 관계를 유지해 온 사실에 대해서 죄스럽게 생각을 하였지만, 서로 은밀히 만나서 놀아 난 적도 없고, 또 사랑한다느니, 보고 싶다느니 하는 감성적인 얘길 결코 한 적도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아내가 있는 남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적인 예의를 지켜왔다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결혼 후 지금까지 자기를 뼈 빠지도록 일만 하게 만들어 놓고도 수고한다는 말 대신에 성질만 부리더니, 이 판국에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없이 한가하게 숨겨 놓은 여자와 정신적인 간음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은 전혀 죄의식이 없다는 그의 태도에 환멸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돈으로 목욕을 시켜주지는 못했지만, 허름해도 방이 넷 딸린 집에 살면서 그리 쪼들린 적도 없었고, 학자금 융자받아서 애들 대학공부를 시킨 것도 아녔다는 자위를 해왔었다. 더구나, 어떤 놈같이 땡전 한 잎도 못 버는 주제에 비자카드나 긁어대어 술이나 퍼먹으면서, 애 딸린 젊은 이혼녀 하나 꼬여서 살림 차려놓고, 생쥐같이 들락거린 것도 아녔는데, 젠장 돈독이 머리끝까지 올라, 은퇴 후 생활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유난히 안달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숨통 조이는 생활에서 맘의 여유를 갖고 싶어 우연히 저질러진 일이 그렇게 크게 번질 줄은 예측 못 하였다.

직선적이고 단순한 집사람이 좋았다. 지금도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20년 이상을 같이 살아오면서 마치 연륜의 손때가 덕지덕지 붙은 장롱 같은 아내를 배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그런 집사람에 비해서 세상일에 밝고, 맘이 넓은 그녀와의 은밀한 교신은 답답한 숨통을 조금이나마 터주는 조그만 공기구멍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집사람과 별거한 지 두 달이 되어 가는 지난달 말, 언제 헤어져도 좋으니, 더 세월이 가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게 해 달라는 메일을 보내놓고, 가부에 대한 메시지를 받지도 않은 채,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저녁 7시에 약속을 한 A 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무작정 그녀를 기다렸다. 그는 두 어 차례 그의 사진과 가족사진을 보낸 적이 있어서 그녀는 그를 알아볼 수 있을 터였지만, 그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초점이 좀 어긋난 사진이라도 보내 달라고 수차례 부탁하였지만, 매번 엉뚱한 화제로 말을 돌리면서 보내주지 않았다.

비까지 내리는 거리는 이미 어두워졌고, 오가는 차량의 불빛이 이리저리 비치면서 가뜩이나 초조한 그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교통이 매우 혼잡하니 좀 지체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지만, 20여 분이 지나는데도 그한테 말을 거는 동양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동양 여자 같은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에 후론트 데스크에 부탁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1904호로 올라오라는 전갈을 받았을 때 그는 너무도 뜻밖에 반전된 상황이라서 더욱 긴장되어 한참을 망설였다.

엘리베이터로 가기 전에 용변하고 싶지 않은데도 화장실에 들러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이모저모로 쳐다봤다. 입도 벌려서 혀도 내어보고 앞 이가 깔끔하게 보이는 모습도 지어보고 옆모습도 번갈아 비쳐 본 후, 좀 흐트러진 머리도 다시 잘 쓸어 넘겼다. 그가 아무리 젊게 보인다 해도 30대로 보일 리는 없고, 그녀와는 아무리 따져 봐도 2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얼굴이 좀 못생겨도 젊은 애인 하나쯤 있으면 하는 것이 중년 남자들 대부분이 바라는 거라지? 젊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 늙은 주제에 사내라고 계집 보는 눈은 있어서―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다.

무슨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70이 넘은 클린트 이스트우드한테, 지금 본인은 몇 살이나 된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40대 같은 느낌이라고 하였다.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그도 거울을 쳐다보며 나는 그래도 그렇게 늙게 보이지는 않겠지? 하며 연신 손가락 빗질을 하였다.

방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이 나이에도 첫 데이트를 하려고 다방 문을 들어서던 때보다 더욱더 설레었다. 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고 천천히 노크하였다. 잠시 후에 그가 누구임이 확인되었는지 들어오라는 여인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맨해튼의 야경이 시원스럽게 보이는 큰 창문을 뒤에 두고 서 있던 그녀는 뮤지컬의 디바(diva)같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다가와서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서툰 한국말로 첨 뵙겠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도 동시에 고개를 엎드려며,, 구시렁거리는 말로 대꾸를 하고, 잠시 어찌할 바 모르고 서 있었다. 소파 옆에 쇼비뇽 블랑이라는 프랑스 백포도주를 얼음에 채워둔 서빙 카트가 보였고, 목이 긴 화병에는 연분홍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그들은 전에 두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스튜어디스를 하는 여자 친구의 초청으로 하루 저녁을 미시간 호수가 보이는 시카고 다운타운의 고층 아파트에서 지내고 돌아갔었다. 혹 여유가 생기면 전화를 하라고 사무실 번호를 알려 주웠는데 여유가 없었다며, 바다 같은 호수가 보이는 환상적인 밤 풍경을 다시 보고 싶다 했다. 또 그녀가 나파 밸리의 북서쪽 소노마 카운티에 있는 겔로 와인어리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샌프란시스코에 들렸을 때,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맘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휴가 중에까지 집사람을 속이면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여기 평생 맘에 걸리는 첫사랑과 같은 이름의 한 여인이 앉아 있다. 그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있었다. 눈동자가 약간 위로 뜬 탤런트 성현아의 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말하는 입이 사뭇 한쪽으로 쏠리는 모습이 김청의 도톰한 입술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녀가 서빙 카트 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거들었다. 다시 앉아 있기가 민망하여 카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그가 코르크를 따내어 그녀의 잔을 채우고 그의 잔을 채운 후 역사적인 첨 만남을 위하여 건배하였다. 첫 잔을 조심스레 입술에 댈 때 그녀의 입술을 쳐다보는 순간, 그의 입술이 바르르 전율하였다.

젊어 한때를 제외하고는 겉 얼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지만,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성적인 충동만으로 젊은 그녀를 만나지는 않을 거라 별러 왔다. 수도 없이 주고받는 메일 끝에 매번 몸조심하라는 형식적인 인사가 유난히 마음에 닿았었다. 아내가 있고 다 큰 자식들이 있다는 선입 관념이 항시 따라다녔지만,, 위해주고 싶고, 아껴주고픈 생각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맘이 갈라진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다. 21세기가 내일모레인 마당에 웬 사이버 순애보? 그렇게 비아냥거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빗살이 세어지며 유리창을 얼룩지게 만들면서, 불 밝은 맨해튼의 건물들이 흐려지고 색색의 모자이크가 되어 현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그녀와 영어로 하는 대화가 속 시원할 리는 없었지만, 바르르 떠는 그녀를 껴안는 순간 그녀의 뼛속까지 저며진 외로움이 젖어들었다.. 가슴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은 심장 박동에 골수 자체가 비어져 버렸는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여기 으스러지게 한 고독한 여인만을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긴 손톱이 등허리를 파고들었다.

다음날 그녀는 공항까지 따라 나왔다. 아득한 옛날 눈이 펑펑 오던 날 교외선 어느 간이역에서 한 여학생을 전송하던 것처럼, 오늘 동명이인의 여인이 손을 흔들며 그를 전송하고 있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고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그녀는 그날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을 위하여 마치 긴 세월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 후로는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는 바뀌어서 더는 전할 수 없다는 에러 메시지만 연거푸 떴다. 가느다란 전화선이 이어줬던 사이버공간은 우주보다도 더 넓어 보였고, 그 신호가 단절되니 그는 사이버공간을 헤매는 미아가 되어버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는 희망의 불씨가 몸에서 이탈 돼버린 허탈감에 빠져서, 만취한 날 밤에는 게슴츠레한 눈을 연신 끔벅거리며 구시렁거렸다.

참 독한 사람. 4년이 넘도록 쌓은 깊은 정을 하루 저녁에 그리 깔끔하게 씻어버리려고 했단 말인가? 물론 내가 자네 인생의 반려자가 되기엔 너무 늦게 만난 사람이라는 건, 서로가 잘 알고 있었던 게지만. 정말로 매정한 사람이야-!”

이젠 풍장 치는 소음 뒤에 오는 적막만이 그의 벗이 되었다. 외로움이 밤이면 밤대로 낮이면 낮대로 색깔을 달리하며 그의 주변을 감돌았다. 잠 못 이룬 밤에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림의 떡 같은 야한 풍경들을 헤집고 나왔다. 이번 주말에는 라스베이거스 교외에 있는 성인 클럽에 가서 단돈 50불 들여 드라이 섹스나 하고 올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전라(全裸)에 쥐(G) 스트링만(G) 걸친 육체파 아가씨가, 있는 대로 딱 달라붙은 청바지를 입고 양손을 옆으로 벌린 채 소파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사내의 사타구니를 엉덩이로 짓눌러가며 교태를 부리는 건 정말 죽여주는 일이었다. 만약 손으로 그네들을 건드리는 날이면, 킹콩 같은 보디 가드들이 총알같이 들이닥치면서 당장 길바닥에 패대기 쳐진다.. 제기랄, 요지경 세상이지. 그러나 그것도 술이나 취해야 드는 생각일 뿐이었다.

거의 매일 새벽 두 어 시까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침이 되면 간신히 일어나 9시쯤 샤워하고 커피를 내려 머그잔에 담아 홀짝거리며 서둘러야 한. 엔지니어로 일할 직장을 수년 동안 찾았었다. 그러나 나이 때문인지 매번 막판에서 미끄러졌다. 흙 속에 묻힌 진주를 운운하며 혼자 발악을 했어도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6개월째 나가는 베스트 바이라는 전자 제품을 파는 대형 스토어의 세일즈맨 일을 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가진 자가 세탁소를 하고 잡화상을 하는 게 이민 사회다. 속 썩지 않고, 겉으로 옛써,옛써―옛써―하며 시간당 10불짜리 세일즈맨 일을 하는 지금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한참 나이 어린 상사한테 꾸지람도 들으며, 시키는 대로 쫓아다니고, 아르바이트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헤이, 헤이-’ 하고 부르면 알았다니까 하는 손사래를 치며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공사 현장에서 신출내기 토목기사들이 아버지뻘 되는 인부들한테 막무가내로 ‘이씨―‘이 씨―, 박씨―’ 하며 불러대는 거하고 다를 게 없다.

대학에 간 자식들은 간간이 빈 둥지를 찾아 몰려들면서 지들 엄마 얘길 꺼내지만, 시간을 조금 더 달라면서 일축하였다. 그냥 이렇게 세월을 타보자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가 다시 혼자가 되어 버리면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연속극에 나오는 예진이나 비안이 같은 여인들이 허준이나 정약용주변에서 어쩔 도리없이 사모하는 맘을 조이며 맴도는 걸 보면서 속없이 부러워했다. 극에서는 그들이 품고 싶은 욕정을 참는지 마는지 전혀 보여주지도 않고 초연한 도사 같은 면모만 보여줬다. 그는 어깃장이 나서 요즘 사회에서 찾기 힘든 의인을 만들려고 하는 모양인데, 인간다운 맛은 없네그려. 제기랄, 그렇게 떠내 보내기가 안타까우면, 뒤채에 드려 앉히지 그래!’ 하며 불퉁거렸다.

사랑이 주는 기쁨을 찾아 헤맸던 고독한 버트런드 러셀을 흉내 내는 건 아녔다. 그러나 그도 진솔한 사랑이 필요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뉴욕의 고독한 여자나 장롱 같은 집사람이 남자 냄새나 고리타분한 서방 냄새가 그리워 슬며시 찾아오길 기다려 본다. 그래서 올가을이 깊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비바람 치는 창밖에 산란하게 흩어지는 낙엽을 보면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막연한 그리움과 허무가 저며 든 가슴이 터져 나가다 못해, 미친 듯이 날뛰었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신과의 싸움이 더욱 처절하게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존재에 대한 인식도 날로 예리해졌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에서 말하는 적멸(寂滅)을 간혹 생각해 봤다.. 그게 과연 기뻐하여야 일인가? 스스로 의지 없이 태어난 몸에 자신에 대한 인식이 주어지고 과정만을 산다. 그리고 그 생의 말년이 가까우면 포기라는 인식의 파일이 자연히 찾아든다. 삶의 허무를 느끼고 자진을 한다기보다, 구차한 삶을 산다는 게 의미가 없을 때를 생각했다. 몇 달 전 그랜드 캐논 북편의 호젓한 벼랑을 또 찾아가 봤고, 샌프란시스코 북편의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하이웨이 1번 주위의 천 길 만 길 되는 절벽도 두 차례 들러봤다. 아무런 족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걸 생각해 봤지만,, 그를 떠나버린 집사람은 그렇다 치고, 적어도 이제 인생의 발돋움을 막 시작한 자식들한테만은 평생 한을 심어 줄 수는 없었다.

월남전에서 실종이 된 아버지나 남편이 십중팔구는 전사했을 거라는 통보를 받고도 유품이나마 확인이 되지 못하면, 혹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가족들에게는 평생의 멍에를 안기게 한다. 유서가 있다 해도 시신을 찾지 못하면 그 역시 부질없는 미련을 두게 한다. 그렇다고 생명이 떠난 망가진 몸이 자식들한테 거추장스럽고 추하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살이 물먹은 비누같이 온통 부풀어진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더구나 벼랑에서 떨어지는 동안 바위에 육신이 깨지고 찢긴 험한 몰골은 제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시각적으로 엄청나게 혐오스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몸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일로 하고 싶지만, 그동안 걸쳐 온 이 헌 옷을 어찌하랴. 하지만 아침 햇살이 또 떠오르면, 살아 있는 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지내야 한다고 벼르고 벼르며 비쩍 마른 몸을 추슬렀다.

그의 허름한 단층집 뒤뜰에는 수년 전 조경업자들을 도와서 집사람과 같이 열심히 만든 작은 못이 있다. 그리고 인공으로 만든 여울물이 이끼 낀 돌멩이 사이를 쫄쫄거리면서 수련과 창포가 어우러진 못으로 흘러든다. 여울 주변의 철쭉이나 진달래는 이미 후박한 겨울옷 단장을 해 놓은 터이지만, 아직 물이 들지 않은 단풍나무의 잎새들이 하늘거린다. 연시매최(年矢每催)며 희휘낭요(羲暉朗曜)라는 말을 뇌까리며, 사파이어보다 더 짙푸른 하늘 속에 나부끼는 색깔의대비는 그 이상의 것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봄이 되어 트인 어린잎은 검붉은 색을 띠더니만, 한여름에는 초록으로 변하고, 늦가을에는 선혈의 빛깔로 변신한다. 하기야 새소리, 풀벌레 소리, 매미 소리, 붉은 꽃, 노란 꽃, 진초록 잎, 연초록 잎, 붉은 낙엽, 노란 낙엽, 푸른 하늘,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그 모두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지. 그 자연현상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뿐 일게야. 다 까발려보면, 그냥 필연으로 일어나는 제 현상일 뿐인데. 그래도 짙푸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 저 하늘을 보고 뭉게구름 두둥실 떠가는 모습을 보면, 맘이 편해지는 것은 어찌 수 없는 일이다.

기온이 뚝 떨어지니, 이제는 매미 소리도 멈춰 버렸다. 한여름의 생애가 모두 마감을 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그 한 달의 삶이 허무하다고 말하지만, 10년 이상을 애벌레로 지내면서 나무뿌리에 눌어붙어서 무위도식하며 전성기를 보내다가,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듯, 잠깐 바깥세상에 나온 뒤, 나름의 마무리를 하고 찬바람이 나면 일제히 스러져간 거로 생각해 본다..

헐벗은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니 여기저기에 매미의 허물이 많이 보인다. 개를 조심스레 떼어서 들여 봤다. 주인이 빠져나간 빈집이랄까? 입적(入寂)한 선사(禪師)의 헌 옷이라 할까? 종족 번식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치러 어디론지 가버렸다가 이제 절규도 몸도 모두 버리고 그렇게 갈 길을 간 게다. 언제부터인가 한여름의 매미 우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렸던 것만은 아녔다.

갑자기 막차를 탄 매미 한 마리의 절박한 울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버린 매미의 헌 옷을 다시 만지작거리며 유별난 입적을 시도한 고집쟁이 선사들을 생각해 본다.. 속가를 버렸고, 불가도 부처도 다 버리고 떠나는 맘에 과연 즐거움만 가득했을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뒤늦게 깨닫고 통한의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이제 어느 쪽의 양보 없이 세월만 축낸다면 결국 파경으로 치달을 거고, 그러면 이 집에서도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할 걸 생각하며, 매번 먹이를 주면서 커피 한 잔을 비우던 등걸에 걸터앉았다. 애지중지하던 새끼 금 잉어들이 우르르 모여들면서 잔물결이 일었다. 순간 건너편 단풍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어른거렸던 사람의 얼굴 모양이 여지없이 뭉개졌다. 집사람의 얼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