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형수(1914~1946) 시인은 생전에 불과 17편의 시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6년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 재학 시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퇴학당한 후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서정주(徐廷柱)‧김동리(金東里) 등과 교분을 맺었다.
1936년 『시인부락』 창립동인으로 참가해서, 창간호에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형화(螢火)」, 「홍도(紅桃)」, 「그 애」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1937년 가을 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건너간 이후 만주 길림성 도문(圖們) 시의 공립 백봉우급학교(白鳳優級學校) 교원으로 재직했다. 194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음」이 당선된 바 있다.
광복 후 북한에서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1946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집은 없고, 「New Arabian Night」(1939), 「개아미와 같이」(1940) 등을 포함해서 30편에 가까운 작품들이 남아 있다. 그는 출발기부터 닫힌 세계 속의 불안과 비애, 열린 공간 속의 사랑과 동경이란 두 가지 시적 경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초기작 「해바래기의 비명」은 자신의 염원을 절규하듯이 비명 형식으로 절실하게 승화시켜서 당시 시단에서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시인부락』 제2호에 발표한 연작시 「소년행」은 유년시절에 대한 어두운 기억을 암울하고 애상적인 어조로 표현하는 한편, 소년적인 동경의 세계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추신>: 하도 가난해서 노동자 숙박소 등을 전전했지만 하모니카와 시 노트만은 꼭 갖고 다녔다. 한 여배우와 동거했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에서 숨졌다. 그는 30살의 짧은 생애동안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지만, <해바라기의 비명> 만큼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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