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문고 37

"집에 가고 싶다"- 이상국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떠올리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또 병원에 오랫동안 있다보면, 하는 말이 그러 하다. 우리 엄니도 그리 하셨다. 우리 집에서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대접해 드려도, 휠체어에 한 동안 앉아 있다보면, 편하게 눕고 싶어서 입을 삐죽 거리며 애교 넘치게 하신 말씀은, "야, 집에 가~자~!".

定婚者에게 보낸 "님의 沈默"-1977

지금의 집사람은 1976년 5월에 먼저 해외이주를 하였기에 약혼을 하지않았고, 기약없이 혼인을 약속하였다. 이 거사가 현대건설에서 별 보기 운동하며 현장에서 뛰고 있을 때, 보낸 책이다. 그때 책 표지 다음 면에 "인생의 의미는 생각하는 자의 의지에 의한 소역사"라고 썼는데, 45년이 지나면서 다시 음미해본다. 자기 한테 주어진 소중한 삶을 바람부는 대로 휩쓸려 사는 사람은 없을 일이다. 그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기에 자신의 의지가 만들어가는 소역사일 것이다.

"가을 서사"- 이상국 詩

*시인은 죽어 없어져도 그 가여운 시는 세상을 떠돈다.* 가을 서사 나는 이파리처럼 가벼워서 두고 가기 좋으나 그래도 해 질 때 바닷가 술집에라도 데리고 가면 나의 시가 얼마나 좋아 하겠냐며…… 그전에 선배 시인이 죽어 화장장 불가마에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의 시는 계속 세상을 떠 돌았다. 시처럼 가여운 것도 없다. 사람들이 무작정 가을 산에 와 죽으니까 군(郡)에서 자살 수상자 신고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래도 어디든 죽음은 제집에 들기 마련이다. 나의 지구에서 가을 하나가 떠나간다. 어둑한 길을 걸어 당도했는데 그래도 그는 나를 두고 간다. 잘 가라 가을.

추상(秋想)-해외문인협회 수필 당선작(2007)

김석휘(Mark S Kim) 며칠 전 캐나다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찬 기운을 밀어붙이더니 밤 새 기온이 영하로 조금 떨어진다고 하였기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동안 밖에서 공들려 가꿔 논 화분들을 갑자기 실내로 옮겨 놔야 하는 소동이 벌어진 게다. 아직도 체리 토마토, 임페이션트, 제라늄, 야래향, 재스민, 선인장, 장미 등이 좀 더 아쉬운 초가을 태양 빛을 즐기고 싶다는데, 이게 무슨 날 벼락이냐 하며, 덮어씌울 건 그렇게 하고, 안으로 드려 올 건 서둘러 그리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첫서리가 조금 내렸지만, 다행히 냉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붉거나 샛노랗게 물들여져야 할 캐나다 단풍은 이파리가 일부 우그러지고 누리 구리 한 갈색으로 탈색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겨울이 ..

"표랑(漂浪)의 길 위에서"- 배미순 시인

* 배미순 시인: 1947년 경북 대구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70년 한국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등단,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미주 문학] 대상, 시집: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풀씨와 공기돌', '보이지 않는 것도 하늘이다', '꽃들은 바쁘다', 등. 시카고 중앙일보 편집장 역임, 현재 [해외문학] 편집주간, 시카고 거주(거사와 같은 [해외문인협회] 회원) [거사 해설]: 인생살이를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였지만, 뜻하지 않은 불행은 여지없이 찾아오고, 질긴 목숨 오래 살았으나 머지않아 가까이 남아있는 그 낯선 표랑의 길을 홀로 떠나게 된다는-. 독실한 믿음이 있는 분이지만, 인생의 허무는 누구나 선험적으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화두인가 봅니다. [註釋]: - 표랑(漂浪)..

"오빠, 가지 마세요!" - 거사의 "어느 남자의 사랑 이야기"중에서

1970년 석이는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도 과외지도에 얽매여 고향이라고 내려와서도 한 1주 남직 보낼 때는 주로 동생들하고 어울렸다. 어느 날 여동생은 제일 친하다는 친구 미선일 데리고 왔는데, 꼭 다문 도톰한 입술이 웃을 때는 너무도 화사하고 꾸밈이 없이 보여 무척 호감을 주었다. 붙임성도 좋아서 바로 오빠, 오빠 하면서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고, 그가 머무는 동안 두어 차례 놀러 왔는데, 눈발이 약간 휘날리던 오후, 당시 인기가 대단했던 ‘러브 스토리’를 같이 구경 갔다. 미선과 동생은 너무도 감격하여 눈이 살짝 온 어두운 밤길을 걸어오면서 시종 그 영화 얘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1주가 금세 지나고 그는 서울로 올라 가버렸고 그 후 일 년 이상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동생을 통해서 고등학교를 ..

"소식" - 거사의 "어느 남자의 사랑이야기" 중에서(2007)

[거사 주]: 수필이나 자서전이라는 장르가 꼭 100% Fact 에 준해서 쓴 건 아닙니다. 더구나 기록이 없는 경우는 오랜된 기억을 되살려서 쓰는데, 그게 다 정확하지 않기도 하고, 개인적이나 집안에 아주 난처한 부분은 아예 빼거나 각색도 하기 때문에 허구가 가미된 장르라고 합니다. audio element. 석이는 방과 후 분단별로 돌아가면서 배정된 청소가 끝나자 후닥닥 교실 밖으로 제일 먼저 나왔는데, 책상 맨 안쪽에 틀어 박혀 있던 빈 도시락을 챙기러 다시 들어갔다가, 결국 제일 늦게 가방을 다시 꾸려 메고 터덜거리고 나왔다. 먼저 나온 애들은 이미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운동장을 거의 건너지르는데, 교사 뒤꼍 묘목 장 쪽에서 갑자기 운동장으로 넘어 들어온 회오리바람이 흙먼지와 ..

그도 저녁이면- (시)이상국

이상국(1946년 9월 27일~ ) 강원도 양양군 출신이며, 1976년 잡지 '심상'에 시〈겨울추상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유심지 주간, 백담사 만해마을 운영위원장, 한국작가회의 강원지회장, 설악신문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강원지회장, 한국작가회의 자문우원 등을 지냈다. 그는 지난 40년간 한결같이 토속적인 향기를 뿜는 시를 썼다. 그도 저녁이면 이상국 북천(北川)에는 내 아는 백로가 살고있다. 그의 직장은 물막이 보(洑) 물 웅웅거리는 어도(漁道)옆 부부가 함께 출근하는 날도 있지만 보통은 혼자 일한다. 다른 한 쪽은 새끼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할 것이다. 그는 고기를 잡는 것보다 하염없이 물속을 들여다보는게 일인데 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도 저녁이면 술 생각이 나는지..

배신의 장미 - 바람거사(2009)

배신의 장미 (1)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돼버린 지 20년이나 흘렀고, 그동안 사내애들을 둘씩이나 낳아, 그 애들이 이제 곧 대학엘 갈 나이가 됐는데도, 성호는 지금이라도 합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버리고 수용하겠다는 태도였다. 정 없이 결혼하여 사내애 하나만 낳고 몇 년 후에 떠나버린 아내에 대한 미련도 없이 곧바로 재혼을 하여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그의 인생은 이미 방향을 잃었고, 술로써 지난 20여 년을 지내는 바람에 이제 그한테 남은 건, 당뇨병에 합병증까지 생겨서 얼마 전까지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사관학교에서 다져진 튼튼한 몸은 이제 피골이 상접하고, 머리는 반백이 되어 버려, 몇 해 전에 만난 사람들도 그를 잘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단지 그런 세월 속에서 그의 부리부리한 ..

장미 한 송이- 바람거사(2012)

탐스럽게 핀 꽃송이 하나 눈 질끈 감고 꺾었다. 안다, 알아-. 뜨거운 수액 솟구치며 잘려나간 아픔 무던히 참고 견뎠을 것을. 선 붉은 꽃잎에 세월의 무게 보인다. 북풍한설 맞으며 긴 겨울 감내하고, 푸르디푸른 잎새 위로 빠알간 속살 내보인 탐스런 봉오리 내밀었다. 간밤에 비바람 몹시 치더니 겹겹이 두른 속곳 밤새도록 젖혀가며 그리도 화사하게 피어댄 걸.

간밤에 불던 바람에-

어젯밤 천둥번개에 비바람이 세게 몰아치고, 뒤뜰에 이미 시들은 박태기꽃이 모두 떨어져서 빗물에 젖여 있었습니다. 너무 지저분하여 쓸어내면서, 이런 옛시조가 생각이 나더군요. * 선우협(1588~1653): 조선 중기 인조 때 평안도 출신으로 벼슬을 마다하고 문인으로 평생 정진하며 살았다.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아희는 비를 들고 쓸으려 허는 고나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허리요 *만정도화(滿庭桃花): 뜰에 가득한 복숭화. 낙화도 꽃일진대, 구태여 쓸면 뭐하겠느냐라는 시인의 풍류를 즐기는 맘을 엿볼 수 있다. 퇴기도 기생일진데, 너무 박대하지 마라 라는 생각이 더불어 생각납니다.

중년의 가슴- 김경훈(石香)

발목만 빠져도 덜컹 거리는 중년의 가슴에 어김 없이 가을은 약속도 없는 그리움을 두고 떠나고 기다림으로 삭혀야하는 겨울이 오고 말았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기차표 없이도 떠날 수 있는 나만의 여행 목적지가 사랑이라는 그대 가슴이지만 감히 드러 낼 수 없는 마음이라 중년의 가슴은 열병을 앓기도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쓸쓸히 반복 되는 일상을 접고 바람 난 새 처럼 날아 가고 싶지만 삶이라는 것은 때로 침범할 수 없는 중앙선이 그어져 있어 함부로 넘어갈 수 없는 것 중년의 가슴에도 스스로 그어놓은 두꺼운 두 줄 중앙선이 있다. 여기까지다... 그리움도 여기까지 사랑도 여기까지 스스로 최면을 걸듯 읊조리는 맹세에 중년의 가슴은 때로 아픔으로 물들기도 한다. 커피 한 잔에도 마음이 녹아 내리는 중년의 가슴 오늘도..

"기다림"- 거사(2012)

2022년 3월 26일에 다시 끌어 올렸습니다. 무작정 기다린다는 게 하릴없는 것이죠. /2021-1-7에 일반 공개로 다시 올렸습니다 / 2012-12-2에 친구 공개로 올렸던 글 기다림 편지가 없었던 시절, 사내는 하루 저녁을 지낸 여인에게, "이녁, 내 한양가면 곧 연락하리라-" 그리 떠난 정인은 한 달, 두 달, 석 달, 반년, 일 년, 이 년, 오 년, 그리고 10년, 20년이 가도 연락이 없었다. 그날 떠난 사내는 문경새재를 넘다가, 화적을 만나 변을 당했던 걸---. 편지가 오가던 시절, 우리 집에 들르지 않고 지나치는 그리 야속던 배달부. 이때나 저때나 기다리던 편지는, 결코 오지 않은 채, 오래고 오랜 기다림속에 그리움, 안타까움, 야속함, 그리고 미움이 무수히 교차하며 세월이 그리 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