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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에 부는 밤바람"- 거사(단편 2007)

바람거사 2023. 8. 30. 08:56

 

 

석모도에 부는 밤바람: 

                                                                                             

이젠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떨어졌다. 그래도 아직은 기온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때라, 마지막 가는 추색을 즐기려고 주말에는 2시간 이상을 기다려서 페리를 타고 건너온 사람들이 저 멀리 보문사로 가는 길목은 북적거리지만, 민석이네 대하 양식장 쪽으로 차를 몰고 오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하였다. 작년 가을엔 그래도 올해보단 나았다고 하였다. 주말이면 몇 킬로씩 사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또 컨테이너 앞 평상에서 주변 분위기에 빠져들어 소금구이에 소주를 마시고 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는데. 그러나 민석이 잔뜩 기대를 했던 올해 장사는 여러 이유로 죽을 쑨 채로, 그렇게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만규는 손아래 막내처남인 민석의 얘길 잠시 털어놨다. 만규가 30여 년 전에 보령 부잣집 색시하고 혼인을 했을 때, 민석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공부보다는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데만 정신을 팔았고, 간신히 고등학교를 나오고서 대학은 첨부터 아예 포기를 해버렸다. 그리곤 10여 년부터 양식장을 한답시고 여러 차례 큰돈을 다 말아먹었다. 6년 전까지만 해도 만규의 장인이 살아 있을 때는 처가의 살림살이가 그런대로 풍족했었기에, 매번 날벼락을 맞으면서도 가져다 퍼부었는데, 결국은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집안에 돈이 떨어지자, 매번 마지막이라고, 머리를 땅바닥까지 조아리며 두 형과 매형인 만규를 찾아다녔고, 작년 이맘때 만규도 이번이 정말 끝이라 벼르고 벼른 뒤에 어렵사리 2천만 원을 해줬다.

 

만규는 복잡한 부평역 광장을 빠져나가면서 민석한테 전화를 하더니만, 미국에서 오랜만에 들린 친구와 같이 갈 터이니 괜찮겠느냐고 묻고서 잠시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 뭐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물었는데, 초장하고 김치 한 병만 사 오라는 얘길 하였다. 막 핸드폰을 끄려다가 소주는 넉넉히 있느냐고 묻는 말에 그건 걱정 말고 오라고 하였다. 만규는 전화를 끊고서 희뿌연한 날씨 때문에 자주 눈살을 찌푸리더니 맥없이 말을 이었다.

 - 민석이 그 노마는 재수가 없어도 그리 없는지 몰라. 지독히 안 풀리는 거 있지. 그 동안 양식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다가 이제 새우양식까지 뛰어들었지만, 억세게 운이 없는 건지, 사람이 너무 좋아 당하기만 하는 건지……. 철들자 죽는다고, 돈 다 잃고 나니까, 양식기술이 이제야 도가 텄나 보던데.

- 근데, 난 잘 모르지만, 대하양식은 전라도 쪽에서 하는 것이 아니냐? 강화도는 아무래도 해빙도 늦을 거고 여름철엔 수온이 남쪽보다 낮은 거 아냐?

- 물론 그런데, 아랫동네는 너무 비싸고, 요샌 지구 온난화다 뭐다 하여 매년 수온도 올라가면서 강화 쪽에서도 아열대성 고기가 눈에 띄게 많아 잡힌다고 하더라고. 하여튼, 나름대로 조사는 엄청 한 거 같은데, 이번에도 또 속은 거 아닌지 몰라.

 

차창 밖 풍경은 단풍이 들긴 했어도 여느 가을날과는 달리, 하늘도 대기도 뿌옇게 보였다. 오후의 햇빛마저도 구름에 산란이 되어 더욱 그러했다. 다행히 출퇴근 시간대에 끼어들지 않아서 반시간쯤 걸려 김포로 들어섰고, 끝도 안 보이는 광활한 간석지를 지나, 곧바로 초지대교로 들어서는 삼거리에 이르렀다. 우석은 이번이 세 번째로 강화도를 들리는데, 갈 때마다 비행기에서 내려 보는 미국 네바다 주의 누르스름한 사막지대의 산맥같이 골이 깊은 간석지만 보였다. 외포리 선착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만규는 연신 두리번대다가 어느 편의점에 들렀을 때, 우석도 같이 따라 내려서 인사치레로 여섯 병 들이 소주 한 박스를 샀다.

 

늦은 오후가 되어 대부분 석모도에 사는 사람들이 페리를 타려는지 그리 붐비지 않았다. 만규는 외포리로 돌아가는 마지막 배가 8시 반이라고 하였다. 오리도 못 되는 뱃길을 5분 남짓 걸려 페리가 석포리 선착장에 닿았고 다시 한참을 달려서 민석이 임대한 대하 양식장 입구에 들어섰다. 길옆 좌우로 오래되어 낡은 집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아마도 예전에 염전으로 경기가 좋았을 때 숙사로 쓰던 건물 같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전혀 사는 것같이 않다고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한두 군 데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보고 우석은 잠시 섬뜩한 기분으로  그곳을 눈여겨 쳐다봤다.

 

마지막 건물을 지나가자, 반듯하게 갈라놓은 양식장 가운데로 차 한 대가 겨우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곧게 나있었다. 이리저리 양식장으로 갈라지는 사거리 끝에 낡은 컨테이너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제법 멀리서 만규가 몰고 온 차 소리를 들은 듯, 문이 열리고 불빛이 환하게 새어 나왔다.

 

만규는 활어용 물탱크가 얹힌 두 대의 트럭 옆에 조심스레 정차를 하였다. 주위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고, 양식장마다 한 곁에는 수차를 돌려서 뿜어내는 물소리가 계곡에서 여울져서 흐르던 물이 떨어지는 작은 폭포 소리같이 차분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저 멀리 검붉게 저물어간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젠 시원하다기보다 스산하게 느껴졌다.

 

우석은 잠시 밖으로 나온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눴다. 우석이 네댓 평 남직한 컨테이너 건물로 따라 들어가니 비리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양식장 식구 모두가 얼굴이 불그스레한걸 보니, 이미 소주 몇 배가 돌아간 모양이다. 한 곁에는 홀아비 냄새가 찌든 담요와 이불이 대충 말려있고, 입구 쪽엔 가게용 냉장고 한 대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스티로폼 상자며, 우비와 진흙이 묻은 장화 여러 켤레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서쪽으로 난 격자창엔 저녁노을이 깊게 물들여져 있었다. 흘낏 들여다본 냉장고에는 소주병만 가득하였다. 그리고 비닐 장판이 깔린 턱이 진 마루 끝에는 이제 선풍기 대신에 온풍기가 피곤스레 까닥거리며 열기를 보태고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조금 전에 건저 온 싱싱한 대하를 담은 바구니를 부탄가스용 화로 옆에 밀어놓으니, 연신 파닥거리며 힘차게 튀는 소리가 요란하다.

 

민석은 후라이팬에 이미 누렇게 탄 소금에다 새 소금을 더 깔고서 대하를 가득 부어 넣었다. 그 통에 몇 놈들이 튕겨서 비닐 바닥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솥뚜껑만 한 손으로 두 어 마리를 동시에 싸잡아서 얼른 뚜껑을 열고 넣고 닫아 버리니까, 그리 죽기는 싫다는 듯이 딱딱거리며 뚜껑을 세차게 갈겨댔다. 그리고 넣고 남은 바구니를 우석이 앉아있는 쪽으로 내밀었다.

- 날 것을 드셔봤는지 모르겠네유. 이렇게 두 손으로 껍질을 옆으로 벗겨서 초장에 드시면, 달짝지근하면서 고소하니 드실 만할 거예유. 영양도 참 좋다니께 많이 드셔보셔유.

 

우석은 난생 첨으로 대하를 날 것으로 먹어봤다. 산 채로 두꺼운 껍질을 잡아 뜯으니 잠시 거세게 요동을 쳤다. 순간 몬도가네 영화 생각이 들었지만, 밖에 나가서 구토를 할 지연 정  앞니로 남은 껍질을 벗겨가며 씹어봤다. 그런데, 좀 비릿하였지만, 초장 때문인지 구수한 육질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대하 비린내가 손가락에 깊숙이 박히는 게 께름칙하였지만, 연신 소주잔을 비우면서 까먹었다. 마침 소금에 구운 대하도 짙은 오렌지색으로 변하면서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다. 연신 잔을 튕기며 쭉 들 마셔대고선, 모두들 캬~캬~ 소리를 질러댔다.

 

민석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상기 되어있었다. 그는 잠시 잔을 비우다 말고, 이제 한숨이라기보다, 아예 바짝 타버린 속에서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같이 읊어댔다. 순간 소주 단내가 확 풍겨 나왔다.

- 아이고, 사람들이 말이유, 여기까지 오는데도 도시락을 싸들고 온단 말이예유. 미치고 팔짝 뛸 일이구먼유. 정부에서 발표하는 경제지표인지 뭔지는 올라갔다는 디, 서민경제는 바짝 얼어붙어 돈들을 안 쓴단말이유. 아니, 쓸 돈이 아예 없는 모양 이유. 증말로 햇갈린당게유. 이렇게 가만히 앉은 채로 복창 터져 죽을 쑬 수는 없어서 트럭 탱크에 가득 실고 직판으로 나세게 하였고만유. 이거 다 못 팔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어요. 이제 이 장사도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았는디, 내 참 그전에 무슨 짓이라 혀서라도 다 없애버려야 한당 게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의 전령사 전어구이도 기막히다는데, 건강에 더없이 좋다는 키토산 함유량이 많은 대하소금구이는 송이버섯과 함께 미식가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가을철 인기품목이란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부는 늦가을 오후에 낙조를 배경으로, 즉석 소금구이에 소주잔을 나누며 세상 근심 모두 잊고 색다른 추억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미식가들을 불러 모으는 최고 인기 코스라, 그곳에서 직접 잡아 올린 싱싱한 대하를 맛보기 위해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대하양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기도 저기도 염전을 갈아엎고 양식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돈벌이에만 눈독이 바짝 올라 속임수까지 쓴다는 거였다. 얘기 끝에 열이 바짝 오른 민석이가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열변을 연신 토해냈다.

- 근디 말유, 잘 되면 유, 우리 것 만한 양식장에서 9월에서 11월까지 석 달 동안, 1억 넘게 번다는 소문만 듣고, 어떤 놈들은 초장부터 손님들한테 속임수로 보여주려고 빈 수차만 돌리는 짝퉁 양식장도 생긴다는 거예유.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유. 저쪽 외포리에서도 터졌었잖아유. 여름내 잘 자라던 새우들이 무신 바이러스에 옮겨서 떼죽음을 해버리니께, 눈이 확 까뒤집혔겠지유. 그래서 즈네들도 빈 수차를 돌려놓고, 다른 데서 사온 대하를 풀어놓고 마치 방금 거둬 올린 것같이 속여 팔았다니 환장할 노릇이지유. 결국 일하다 잘린 언놈이 찔렀다고 그러더라고유. 이 세상에 어디 비밀이 있나유?

 

사실, 석모도는 사람들이 찾아오기에는 좀 불편한 곳에 있기도 하지만, 외포리 쪽 소문난 곳은 하루 많게는 수백여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양식장에서는 도매판매를 해야 하지만, 애써 찾아 온 손님들이 자꾸 졸라대면, 즉석 소금구이도 해주면서 소주도 팔고 또 몇 킬로씩 포장판매도 하는데, 사실은 그게 불법이란다. 그렇다고 그런 걸 못한다고 하면 손님들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고, 더 한 건 그 수입도 짭짤한지라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인근 횟집이나 대하 판매점은 장사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며 관할 군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후속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우석이 민석의 잔을 채우자마자 꾸벅 목례를 하더니, 그는 단숨에 마셔대고서, 누런 새우를 와지직 껍질째 씹어댔다. 그 막간에 민석과의 시골 동네에서 형같이 따르던 선길은 민석의 말을 가로챘다. 그는 작년 이맘때 민석을 따라 올라와서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이젠 그도 새우 비린내다 진흙으로 절여져 있었다. 

- 성님, 그런데 말이유, 가짜를 그렇게 파는 놈들도 있는 디, 지난 주말에는, 진짜를 가지고 갔어도요, 일산 거쳐서 의정부까지 한 바퀴 돌면서 가게 코앞에 대고 별 지랄을 다해도, 안 사는 거유. 무신 대하가 반 토막이냐고 염장을 지르면서유. 그래도 안 간데 없이 다 다녔어유. 어떤 때는 반값도 주고 덤도 주고 해서 지는 다 팔고 왔잖아유.

 

한쪽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여 있던 민석의 사촌 형인 창섭이 게슴츠레한 눈을 슬며시 치켜뜨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작년 가을에 그런대로 장사가 잘 되는 걸 집적 눈으로 봤기에, 지금의 양식장을 민석이가 인수하도록 중간다리를 놓아줬다. 그래서 매번 술판만 벌어지면,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침을 튀기며 강론을 펼쳐왔는데, 결국 그도 그놈의 날씨와 경기 탓을 하며 속을 끓이고 있었다. 

- 동상, 나는 수원 쪽으로 나갔었제. 자네 말대로 식당에서는 자기네한테 물건 받는 데가 있응게, 말도 못 붙이게 허고, 시장 어귀에서 별 지랄을 다 했었구먼. 아, 왜 이리 돼버렸는가, 열불이 확 나불었어.

- 여름 내내 처자식 얼굴도 못보고 고생해서 건져 논 게, 죄다 반토막짜리가 돼버렸는디, 지도 열불이 엄청 나지유. 보람도 없고 말이유.

- 이보게, 선길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아무리 바빠도 시골집에는 자주 가보아-. 절대적으로 믿었던 여편네 그리 혼자 오래도록 내버려 두면 사고 난다 게.

- 아니유, 지는 진짜로 믿는 당게요. 우리가 어떻게 혀서 맺어진 사이였는디요. 몇 년을 안 봐도 절대로, 암요, 맹세코, 그럴 리가 없지유.

- 아따, 인생선배가 얘기 허면 깊이 들어둬. 여잔 그게 아니여. 십중팔구가 언놈이 꼬이면, 빵구나게 돼있어. 자 당장 이번 주말에 댕겨 와. 내가 지금 여비를 당장 줄게-.

- 그려, 이번 주말에 댕겨 와. 다음 주 지나면 잔 새우 처리 헐려면 바쁠 거 야녀?

민석이도 거들었다.

 

선길은 큰 덩치를 움칫거리며 애꿎게 머리만 벅벅 긁더니만, 남아 있는 소주잔을 쭉 들이켜면서 멋쩍게 비시게 웃으면서 창섭의 속을 슬쩍 휘저었다.

- 날씨가 스산해진께, 성님도 요새 좀 적적하신 모양이네유? 저그 허벌지게 생긴 삼거리식당 진주 댁이 생각나는 모양이네유? 그 인왕산만한 엉덩이로 성님 한 번 깔아뭉개면 광어가 될 판 인디, 그래도 뭐 가 그리 좋았남요?

- 아니, 이 사람이 뭘 잘 못 먹었나? 왜 화살을 나한테 쏘는 거여? 나야 이제 힘도 없어 건사도 못허고, 그나마 돈도 없으니 어느 여자가 뭘 보고 달라붙겠나?

- 아따, 여기 성님 친구 분까지 계시니께, 오리발을 내미시네유. 그 뚱땡이 과부한티 이거 꽤나 털어준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네유. 성님 맴이 형수님 땜에 썩어 무너져 버린 건 잘 알지만, 하도 이거 마시는 걸 좋아하니께, 몸 조심허란 얘기예유. 정말, 여기 키우는 몸짱이나 얼짱보다도 못하는 인간들이 참 많지라우.

그리 불쑥 말해놓고 너무 했나싶어 두툼한 어깨를 움츠리며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검게 탄 얼굴에 왕눈을 껌벅거리는 모습이 순진하고 귀엽게 보였다.

- 자네, 왜 또 개 얘길 끌어다 붙여서 염장을 지르는가? 그, 그 연놈들만 생각 허면, 지금도 피가 확 거꾸로 솟는단 말이여. 정말 개만도 못한 것들이지. 아니, 그 꼬드긴 자식도 때려죽일 놈이지만, 그 개만도 못한 년이 더 죽일 년이지-.

 

아까 이쪽으로 오는 길에 거짓말 조금 보태여서 송아지만한 검은 개들이 우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배가 훌쭉하게 들어가고 다리가 긴 그런 개같이 생겼지만, 귀엽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 않고, 섬뜩한 맘이 먼저 들었다. 그레이하운드 같은 사냥개같이 생겼는데, 덩치가 훨씬 커 보였다. 그 암수는 작년에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가 무녀리가 되어 항시 밀려나는 바람에 따로 밥을 먹이고 격리를 시켜 놨다고 하였다.

 

녀석들은 충성심도 강하여, 민석이가 며칠 어딜 간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밥을 주면, 곧 잘 따르다가도, 주인만 나타나면, 언제 봤느냐는 식으로 안면몰수를 한다는 거였다. 항시 암수 두 마리가 좌우에서 용호가 호송하듯 붙어 다니다가, 낯선 사람들이 들이 닥치면, 공격태세를 취하여 겁을 주는 바람에 그나마 없는 손님들이 혼비백산을 해버린다고 하였다. 한 번은 인천에서 조폭 같은 사람들 여럿이 검은 양복을 입고 왔는데, 몸짱한테 발길질을 한 번 했다가 달려드는 바람에 혼쭐이 났었다고 했다. 다행히 민석이가 멀리서 보고 급히 부르는 바람에 화를 면했는데, 그리곤 다음번에 올 때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오더라는 얘길 하며 웃었다. 

 

갑자기 창섭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혼자 낄낄거리더니만,

- 아니, 우석 씨. 개도 질투를 한다는 얘길 들어봤소?

- 아니요. 저야 어려서부터 덩치가 큰 토종 누렁이하고 잘 놀던 기억이 있지만, 암수를 같이 키우는 집은 좀처럼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 글쎄, 얼짱이가 새끼를 가졌을 때 말이요. 그 막간에 몸짱이 이리저리 다니면서 동네 암캐 하고 좀 놀다가 들어왔던 모양이요. 얼짱이 무슨 냄새를 맡았던지, 글쎄, 녀석이 가까이 오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난리 법석을 치는 거요. 심지어는 같이 쓰던 밥통에 다가오는 것도 생 발광을 하며 얼씬도 못하게 으르렁 거리고요. 근데, 더 웃기는 건, 그놈이 어느 날 양식장 끄트머리에 있는 갈대숲에서 꿩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물고 와 얼짱한테 갖다 주니까, 아예 본체만체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결국 그걸 물어서 요란스럽게 흔들더니만, 멀리 패대기를 치더랑께요.

 

민석이도 도저히 참질 못하고 끼어들었다.

- 아, 글씨, 그렇게 한 달 이상을 가더라고유. 이런 얘긴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하여튼, 사람보다 정말 낫고만유. 지 새끼 생각허는 것만 봐도 웃긴 당게요. 다른 새끼들헌테 치여서 잘 먹질 못해서 따로 놔둔 무녀리 새끼를 항시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유. 어느 날 비닐로 여러 겹 두텁게 쳐놓은 문짝을 뚫고 들어가서 젖을 먹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랬당게요. 지 새끼를 정성으로 키우는 것도, 사람보다도 더 질투 부리는 것도, 또 조강지처 달래주려고 알랑거리는 몸짱이 주눅이 들어, 근처에 얼씬도 않는 걸 보면서 얼마나 배꼽을 잡았는지 몰러유. 이런저런 소문이 나면서 개사돈 맺자고 김포나 인천에서 까지 사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암놈을 데리고 오는데, 아이고, 얼짱의 눈이 또 뒤집어지게유?   

 

모두다 한바탕 또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섭이가 갑자기 뒤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 시늉을 하였다.

- 이봐, 선길이, 이번 주말에, 돈 없으면 내가 줄 터이니, 어쨌든 집에 좀 다녀와.

- 아따, 성님도 참. 지도 돈 있어유.

선길의 순박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창섭은 60이 좀 넘었는데, 20년이 넘도록 홀아비로 지내고 있었다. 젊어 이래로 전국을 쏘다니며 고깃배를 타거나 양식장에서만 굴러온지라 시골집을 자연히 자주 들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평생 자기를 믿고 그렇게 살고 있으려니 했던 마누라가 어떤 나이도 어린놈하고 배가 맞아 놀아나면서 어린 남매를 내팽개치고 무단가출을 해버렸다는 거다. 그래서 술만 들어가면, 끝을 보려 하고, 말 수도 많아지면서 치근거리는 주벽을 부리는 바람에 그 걸 아는 사람들은 같이 술판을 벌리는 걸 싫어한다고 하였다. 그는 술이 좀 오르면, 여자들은 도대체 믿을 만한 동물이 절대 아니라는 얘길 18번같이 읊어댔는데, 오늘은 멀리서 온 우석이가 있어서 그 정도로 일절만 해댔다.

 

그는 이 바닥에서 평생을 구른 베테랑이다. 민석이 지금의 양식장을 인수하기 전까지 이곳에서도 두해 동안 일을 했었기에, 이걸 하면 그동안 다 까먹은 돈을 만회할 거라 굳게 믿고서, 절대로 놓치지 말고 인수하라고 부추겼었다. 결국 민석은 마지막으로 여기저기에 손을 벌려 푼돈을 긁어모아 올 인을 하고 대박의 꿈에 부풀었는데, 재수에 옴이 붙어버렸는지, 경기도 경기지만, 올여름 날씨까지 받쳐주지 못했다. 민석이 또 열불 나게 토해냈다.

- 아니, 지구 온난화다 뭐다하여 올여름 날씨는 더웠잖아요. 근디, 일조량이 여름 내내 일정하게 받쳐주지 못하니까, 수온이 충분하게 오르지 않아서 대하가 그만 소하가 돼버렸잖아유. 도매업자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다 오리발을 내밀어 버리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유. 자, 봐유. 이건 이렇게 반 토막이고. 어, 이놈만큼은 커야 되는 디 말에유. 지 손바닥 길이만 하잖아유. 그런디, 이거 좀 봐유. 이게 뭔지 알아유? 이렇게 큰 망둥이를 본 적이 없지유. 아니, 창섭이 성님도 좀 확실하게 했어야지유. 망둥이는 절대로 없다고 혀서 신경도 안 쓰고 놔 뒀는디, 이놈들이 이렇게 클 때까지 금쪽같은 새우를 얼마나 잡아 먹었겠어유. 참 네.

 

민석은 팔뚝만한 망둥이 몇 마리를 화풀이라도 하듯 쫙쫙 찢어 후라이팬에 처넣었다. 창섭은 때를 놓칠세라 금방 말을 이었다.

- 동상, 매번 하는 말이지만, 뻘이 뒤집힌 물에 몇 마리 들어 간 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구먼. 속상한 건 나도 말도 못 혀. 환장 헐만 큼 미안 허기도하고 말이여. 그런디 김장용으로 쓰는 잔 새우도 같이 섞어 들어오는 바람에 올 겨울에는 그걸 내다 팔면 그래도 수입이 짭짤 헐 거 아닌감?

 

이미 수없이 들은 얘기인지 민석은 대꾸도 없이,

- 야, 선길아. 뭐 허냐. 새우가 다 떨어졌잖어. 가서 한 통 또 건저 오자.

 

민석과 선길이가 후다닥 일어섰다. 이미 술기운이 제법 오른 창섭은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드는지, 한 팔로 바닥을 짚고서는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가, 눈을 슬며시 치켜뜨면서, 조금 전 민석 앞에서 해줬어야 할 얘길 만규한테 건넸다. 

- 이봐, 만규.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난 말이여, 이번에는 꼭 민석이가 한 밑천 단단히 잡게 해주고 싶었다고.

 

술 마시고 왁자지껄 떠드는 분위기 좋아하는 만규는 그렇지 않아도 운전 때문에 딱 두 잔 마시고 나니, 기분이 영 찝찔한데, 창섭이 이양반이 그 흔한 아무개 교수라고 불러주면 좋으련만, 한참 후배 이름 부르듯이, ‘만규, 만규’ 부르는 게 처음부터 내내 못마땅하였다. 사실 창섭은 엄밀히 얘기해서 민석의 친형도 아니고 사촌 형도 아니다. 아주 어려서 바로 이웃에 살았는데, 조실부모하고 거의 민석이네 집에서 잔심부름하면서 잔뼈가 굵었고, 나이가 들자 자연스레 한 식구같이 지내게 된 처지이었지만, 만규보다 나이가 댓 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형님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리 객지에서 험하게 살았어도, ‘김 교수’라고 불러주면 훨씬 부드러운 관계가 되었을 일인데, 말할 때마다 그리 부르니 은근히 못마땅하여, 마지못해 공대를 하면서 말했다.

- 아, 그럼요. 형님이 모르고 한 건데요. 그리고 날씨 탓인데,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앞으로 김장용 새우나 잘 팔렸으면 쓰것네요. 물론 지금도 잘 보살펴 주시지만, 형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민석이가 이제 다시 일어 설 기회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 아닙니까?

 

계속 말대꾸를 하면 말꼬리가 길어 질 것 같아서 만규가 바람이나 쐬자고 눈치를 하며 먼저 일어나는 바람에 우석이도 덩달아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사실, 여기서 더 마셨다가는 꼼짝없이 이 컨테이너에서 날 밤을 새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시계를 얼른 들여다보니, 7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멀리 갯벌을 스치며 가속된 바닷바람이 을씨년스러웠지만,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우선은 시원스레 비벼줬다. 먼저 나간 민석과 선길은 그동안 참았던 담배를 굴뚝같이 피워대며 손전등을 들고 상판이 평평한 배에 올라섰다. 우석이가 둑에서 내려 보자, 민석은 같이 타겠느냐고 물으면서 줄을 두 어 차례 당겼다. 바로 시동이 걸어지자 엔진 소음에 귀가 멍해지는 바람에, 우석은 말 대신 손사래를 쳐보였다. 둘을 태운 배는 제법 멀리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멀리서 손전등 불빛이 한 동안 이리저리 비추이더니만, 잠시 후에 큰 플라스틱 통에 새우 하고, 잔챙이 가제를 가득 건저 왔다.

 

민석과 선길이가 컨테이너로 다시 들어가려고 할 때, 만규가 시계를 보는 척 하더니만, 이제 가봐야 한다고 하였더니, 민석은 펄쩍 뛰었다. 만규는 우석이가 오늘 부평에서 시동생 내외가 경영하는 카페에서 동생 식구 모두를 오랜만에 만나자는 약속을 해놔서 지금 못 가면, 페리를 놓친다고 설득하였다. 그때까지 컨테이너 장판 바닥에서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었던 창섭이도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왔다. 민석은 이렇게 가시면 언제 또 뵐 지도 모르는데, 너무 서운하다면서 연신 고개를 저어대며 새우와 가제를 따로따로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서 테이프로 뚜껑을 봉해서 만규 차에 실었다. 어두운 길을 잠시 빠져나오는데, 만규가 말했다.

- 아까 지나친 개장에 가서 그 몸짱하고 얼짱 구경 좀 잠깐 할래? 진짜, 겁나게 생겼어. 나도 그렇게 험하게 생긴 놈들은 본 적이 없거든-.

- 좋지, 나도 어려서는 개를 참 좋아했었는데 말이야. 내가 서 너 살 꼬마 때 덩치가 크고 귀가 축 늘어진 누렁이라는 토종개 하고 잘 놀았었지. 그때 다른 기억은 별로 없는데, 먹이를 쥔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그놈이 글쎄, 내 배 위로 스치는 걸 낚아채려다가 아랫배를 길게 살짝 스치며 물어 버렸어. 피가 죽 흐르는 바람에 대판 울어댔던 기억이 나는구먼.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상처가 보였는데 말이야. 지금도 그리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전에 딸내미가 그렇게 사달라고 졸라댄 걸 끝내 사주지 않았었지.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어린애 하나 생긴 셈 쳐야 되잖아. 가장 큰 문제는 어디 나들이를 나갈 때도 그렇고 휴가라도 가게 되면 돈 주고 맡겨야 되고. 어떤 때는 스트레스받아서 죽기도 한다더라고.

 

 

잠시 후 철망이 길게 쳐진 우리 앞으로 다가갔다. 유독 가슴에만 엷은 불그스레한 색이 돋고, 온몸에는 짧은 검은색 털이 난 송아지만 한 몸짱이란 녀석이 어느새 철망 앞까지 나와 있었다. 덩치가 하도 커서 위압감을 주었지만, 녀석도 눈치를 슬슬 보며 두리번거리다가 어슬렁어슬렁 안으로 돌아갔고, 바로 옆 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새끼들이 낑낑대며 꼬리를 치면서 뺑뺑이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얼짱은 어디에 처박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민석이가 뭔 가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고 그동안 죄다 잡아낸 명태만한 망둥이를 말려서 줄줄이 엮어 놓은 큰 두름을 건네줬다.

- 이따가 부평에서 한 잔 하실 때 구어들 드세유.

- 어, 고맙네만, 뭐 하러 이렇게 가져왔나? 속상할 때 쫙쫙 찢어서 먹으면 화풀이도 되고 좋지 않나?

- 아이고 형님도. 지들 먹을 것도 많이 있어유. 워낙 번식력이 좋아서 엄청 잡아냈고만유.

한바탕 또 웃고서 다시 작별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차가 움직이면서 모두들 손을 흔들던 모습들이 금세 어둠에 묻혀버렸다. 수차가 치는 물소리를 연신 들으며 좁은 외길을 따라 나왔고, 다시 허름한 숙사 건물들이 쭉 늘어선 길을 따라 입구를 빠져나왔다.

 

인적도 없는 샛길을 잠시 지나 선착장 쪽으로 가는 큰길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그 식당 앞을 천천히 돌아가는데, 미닫이문 안으로 두어 군데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뭐라 떠들어대면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찌개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을 보니, 절로 침을 삼켰다. 우석은 그 막간에 두리번거리며 그 진주 댁을 찾아봤지만, 주방에 박혀있는지 허벌지게 생겼다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현듯 군에 있을 때 외지로 파견을 나갔던 동네 니나놋집 작부였던 옥란의 푸짐한 몸매를 떠올렸다. 아무 하고나 술과 돈으로 쉽게 엮어지는 동물왕국과도 같은 곳이지만, 당연히 책임지지도 못할 풋사랑도 일어 피차 맘만 짜릿하게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까마득한 옛일이 돼버렸다.

 

선착장에 갈 때까지 어둠만큼이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우석이 그 침묵을 먼저 깼다.

- 야, 참, 저리 사람들이 저리 순박한데. 지난겨울부터 수세미가 되도록 열심히 일했는데, 왜 돈을 벌지 못했을까? 왜 날씨까지 받쳐주지 못했을까? 어떤 놈들은 외지산을 사다가 곱으로 팔아서 떼돈을 벌었다는데 말이야. 만규 자네는 날 볼 때마다 침이 마르도록 기도의 힘을 믿는다고 했지? 매번 큰 은혜를 받았다면서, 처남 위해서 기도 좀 안 해줬나?

 

- 왜, 안했겠어. 하지만, 운이라는 것도 있나 봐. 내가 막판에 총장 출마에서 물먹은 것도 그렇고. 우리가 이승에서나 죽어서나 모든 게 주님의 뜻대로 무조건 따른다고 믿고 있는 나지만, 그 노마는 운인지 뭔지 그렇게도 따르지 않는지 모르겠어. 심지어는 올여름 날씨까지 그렇게 돌아섰으니 말이야.

 

- 뭐, 너하고 다시 종교 얘길 하고 싶지 않지만, 나 같은 무신론자들은 그걸 무작위로 누구한테나 다가오는 멍에라고 생각하지. 이라크 전장에 갔어도 부상 없이 용감히 싸워서 훈장까지 받고 온 군인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어처구니없게 강도의 총에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걸 뭐라 설명하겠냐? 사람들은 최선의 노력도 안 하고 운세 타령을 한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했어도, 이건, 정말 너무 운이 없다고 해야겠지? 그나마 김장용 새우로 만회나 하여 내년 치어 살 밑천이나 벌면 좋겠다만. 그리고 11월까지 일 다 끝나면 내년 봄까지는 뭐 한다냐? 완전히 농번기네. 근데, 민석이네 식솔들은 보령에 있고?

 

- 아니지, 양식장근처 마을로 식구들 다 데려왔어. 자라 보고 놀란 뒤엔 솥뚜껑 보고 놀랜다고, 창섭이 그 사람이 부부란 죽으나 사나 같이 살아야 한다며 하도 부추기는 바람에, 처남댁은 물론 중학교 다니는 애들이 되게 불편해도 몇 년 만 버티자며 죄다 끌고 올라왔지. 여긴 고등학교도 없어서 내년에는 외포리에 있는 고등학교로 페리를 타고 다녀야 하니 말이야.

 

- 애들 교육이 젤 문제네. 돈 있는 사람들은 고등학교 좋은 델 보내려고 곤 백번이라도 이사를 가던지, 심지어는 위장전입까지 한다던데. 이건 그 반대이니, 참-. 그래도 애들이 이런 아빠를 이해하고 철이라도 나서 공부나 잘했으면 다행이겠지만.

 

- 니도 알다시피, 옛날하고는 많이 틀려졌지. 요샌 개천에서는 용 대신 미꾸라지 밖에 나올 수밖에 없는 거지. 다들, 돈의 힘이 세상을 제압한다고 믿는 판인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온 거니까. 이번만, 이번만 하면서 세월이 그리 간 게지 뭐. 겨울에도 내년 봄에 시작할 일들 준비하느라고 별로 쉬지도 못하고. 또 새우만 제대로 키운다고 해서 다 끝나는 일도 아니고, 누굴 통해서 잘 파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래서 사람 만나러 다니고, 추위에 강하고 잘 큰다는 치어며, 모이, 장비, 소모품 따위 등 살 게 많은 모양이야. 그러다 보니, 하루가 멀다고 인천으로 어디로 쏘다니고 노상 술에 찌들어 지내는 가봐. 지금은 그래도 건강이 받쳐주니까 다행이지만, 오래 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다시 외포리를 거쳐 어둠에 버무려진 산길을 넘어서 낮에 지나친 간석지 옆으로 나왔다. 우석은 칠흑같이 어두워진 양식장을 바라보며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깊게 빨았던 담배연기를 허~ 소리와 함께 토해내는 민석의 고뇌에 찬 얼굴을 떠올렸다. 지난 10년 동안 막판에 다 말아 먹을 때마다 만규는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제발 대박의 미련을 접고 다른 장사나 하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지만, 어떻게든지 한 밑천 단단히 거머쥐고 모두 다 나 보란 듯이 웃어댈 거라고 벼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 듯한 그 모습이 우석의 맘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말 많은 만규의 입도 굳게 닫친 채 묵묵히 운전을 하는 동안, 우석은 고개를 돌려 검은 바다를 초점 없이 바라봤다. 멀리 영종도 공항 쪽으로 길게 뻗은 고속도로와 다리 난간에 있는 가로등 불빛이 서늘한 바닷바람에 조는 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게 또 한편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게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