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세상사는 이야기

한국 문학사의 영원한 이야기꾼 박완서 작가

바람거사 2022. 5. 14. 07:48

<2012년에 올린 에피소드를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인데, 벌써 박완서 작가가 별세한지도 10년이 넘어가는군요.>                                                               

 

박완서 작가 (1931~ 2011)

 

2011년 6월 13일:  지난 1월 22일 담낭암으로 하세한 박 작가는, 남편과 자식을 먼저 보내고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노란색의 집에서 12년 기거하다가 작년 10월 크로시아 방문중 건강에 이상증세가 나타난 게 담낭암으로 판정되었었다. 고향이 황해도 개풍 박적골인 작가는 한국전쟁이 없었으면, 나는 작가 대신 선생이 되었을 거라고 하였다. 고삐 풀린 망아지같이 뛰놀던 어렸을 때 고향의 추억,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에서의 궁핍한 유학생활과 한국전쟁은 그로 하여금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이야기꾼을 만들었음에 틀림이 없다.  박완서는 1970년 40세에 화가 박수근과의 만남을 <여성동아>을 통해서 장편소설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슬하엔 두 딸이 있으며 장녀 호원숙(57세)은 월간 '샘터'에서 수필가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박완서는 고향인 황해도 개풍을 배경으로 집안 얘기를 주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을 여러 차례 집필하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장녀 호원숙은 1992년 어머니의 일대기인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을 폈고, 2006년에는 첫 산문집인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키가 커졌다>를 내었다. 지금은 어머니가 살았던 자택에서 집필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2012년 1월 31일: 거사네 응접실에서 겨우살이 하는 꽃나무들이 목이 빠지게 봄을 기다립니다-.

왼쪽에 빨간 그림은 고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의 책날개. 일 년뒤 2011년 1월에 먼길을 떠나셨는데, 그못 가본 저승길이 정말 아름다웠을까?

 

2022년에는 인조태양 아래서 겨우살이 하는 친구들이 아직도 실내에 있으니 내보내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커피나무는 밤에 60도 이상이 돼야 하기에 5월말까지는 놔둬야합니다. 작년에 좀 일찍 내놨다가 수 십개 꽃망울이 다 얼어 죽어버렸거든요. 그리고 작년 가을에 반 세기나 된 창문 교체를 하면서 가운데는 양쪽 개폐가 되는 크기의 두쪽 대신에 하나로 크게 만들었습니다. 때때로 자개상앞에 앉아서 독서도 하고 글도 씁니다.

 

막내 손녀가 4살 위인 언니와 같이 일 주에 두 번 우리 집에 오면 침실로 쓰고 또 기저귀 따위를 갈아입히는 낮은 장롱을 들여 놓는 바람에 두 개 책장은 없애버렵습니다. 이제 그 애도 9월이면 3살이 되는데, 한 달 전에 기저귀로부터 해방이 되었네요. 하여튼,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공책이나 기타 잘 안보는 책은 이참에 다 버렸습니다. 벽 장식도 별자리, 대학원 졸업식때 총장과 악수하는 사진, 금속부식 졸업장만 남기고 역시 없애버렸습니다. 책상위에는 10년도 더 된 데스크탑이 비상용으로 쓸 때가 종종 있어서 프린터옆에서 자리를 잡고있네요. 그리고 언니는 이 거사는 예전에 아들이 쓰던 방으로 쫒겨가고, 대신 집사람 옆에서 자고 막내 손녀는 아직은 유아용 안전 침대를 사용하여 반대편 벽쪽에 밀어놨답니다.

 

 

진분홍색의 영산홍이 매년 저리 곱게 핍니다. 영산홍은 5월 중순이 돼야 피길래, 철쭉과에 속하는 줄 알았는데, 철쭉과가 아닌 진달래과에 속합니다. 한국의 산야에 잎새가 나기 전에 피는 연분홍의 진달래처럼 꽃잎과 수술이 다섯개고 꽃송이 가운데 흰 머리를 한 건 암술입니다. 반면에 철쭉은 수술이 10개가 있고 꽃 아래 받침이 있고 꽃잎에 공충을 유인하기 위한 꿀이 있는 반점이 있지만 꽃잎 전체에는 독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