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Rome(9/12~14):
이번 서유럽 여행의 마지막으로 들린 로마. 9월 5일 아침에 런던을 시발점으로 이탈리아 피렌체까지 하루내지는 하루 반 정도의 일정으로 움직였고, 한 호텔에서 하루 이상 지낸 곳도 없었다. 피렌체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로마 근교의 쉐라톤 호텔에 여장을 풀고 폼베이와 카프리 그리고 나폴리를 경유해서 돌아 온 후에는 같은 호텔에서 출국전까지 이틀 밤을 머물었기 때문에 짐을 싸서 이동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나폴리를 출발한 버스가 3시간만에 로마 근교에 있는 어느 젊은 한국인 부부가 경영하는 식당에 도착하였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예년같이 않아서, 한꺼번에 백명 이상이 식사를 할 수 있게끔 이토록 크게 꾸민 거같은데 이젠 운영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식당같은 긴 식탁에서 된장찌게를 별미로 저녁식사를 끝내고나니 9시반 무렵이었이었는데, 폭우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10미터 남직한 거리에 주차한 버스까지 폭우로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뛰어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식당에 있는 두 어개의 우산을 이용하여 런던에서 끝까지 동행을 한 이번 투어의 책임자인 정만기씨와 이탈리아 가이드인 민동수씨가 번갈라서 우산을 받혀가며 30여명이 버스에 올랐다.
9월 12일 이른 아침 아침, 가벼운 옷차림으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로마 투어에 올랐다. 아침에도 여전히 비는 내렸지만 다행히 어제 저녁같이 폭우로 쏟지는 않았다. 긴 줄을 따라서 30여분간 이동하여 바티칸의 정문을 통과한 후에 젤 먼저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인 이곳 박물관 입구에서 이태리 가이드 민동수씨의 미켈렌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진 배경을 자세히 들었다.그의 명강의에 모두 감격하여 박수를 쳤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거대한 규모의 성 베드로 성당을 거쳐서 밖으로 나오니 광장이었다. 실내에서는 정숙을 요하기 때문에 큰 소리로 설명을 할 수가 없고 또 한 곳에서 오래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사전에 볼 거리며 먹을 거리에 대한 철저한 예비지식이 필요하다. 적을 알아야 이긴다라는 말도 있지만, 알고 보는 거하고, 그냥 스쳐 지나는 거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번에 필자는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느꼈노라'를 얘기하였었는데, 끝으로 무엇을 느꼈는가라는 얘길 하고 싶다. 세계의 문화 유산을 살펴보면 유구한 세월속에 남는 건 돌로된 유적들이었다.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스핑크스를 비롯하여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의 꽃을 핀 유적도 다 돌의 문화이며 물론 로마의 유적도 그러하다. 또한 중국의 만리장성, 캄보디아의 앙크로와트나 태국의 방콕 사원이나 왕국도, 또 멕시코의 마야, 페루 잉카의 유적도 다 돌의 유적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지리적인 특성탓에 이 모든 유적들에 비해서 돌의 유적이 사실 미미하다. 우리가 자랑하는 석굴암은 그 역사나 규모를 비할 때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한국인이 좀 더 잘산다하여 하시를 하는 캄보디아의 앙크로왓트와는 비교를 할 대상도 못된다. 그렇다고 한국의 유적을 깔보는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에서는 목조문화가 발달했었기에 오랜 세월동안에 대부분 주춧돌만 남기고 그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석조 건물은 목조 건물에 비해서 채취하고 운반하여 가공하는 데까지 훨씬 더 많은 인력과 비용 그리고 시간이 요구된다. 규모가 큰 궁궐이나 사찰같은 목조건물을 완성하는데 5, 10년이 걸렸다면, 규모적으로 봐서 더욱 큰 석조건물을 완성하는데는 20, 50년도 더 걸렸으니 말이다.
기원전 753년에 로마제국이 세워졌고, 그리스 고대문화를 고스란히 이어서 그리스가 만든 신에 대한 숭배가 엄청나게 많은 미신숭배까지 뿌리깊게 믿었던 로마제국이 250년동안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태양신을 믿었던 콘스타티누스 황제가313년에 밀나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승인하였고, 데오도시우스 1세(재위 379∼395)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선포했다. 그로부터 기독교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됨으로써 로마문명은 그리스 신의 문명에서 크리스찬 문명으로 바꿔지면서 건축 등 생활 깊이파고들었다. 그 후로 유럽전역으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르렀기에 필연적인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 줄 수밖에 없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유적들은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설계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진 건축물들이 대부분 이다. 벽화나 천정화도 마찬가지다. 바티칸 박물관의 천정에 그린 '천지창조(1508-1512)’만해도 그러하다. 미켈렌젤로가 4년이나 걸려서 그린 역작이며, '최후의 심판(1534-1541)'은 나이 60살에 시작하여 7년이나 걸렸고, 물론 그 규모가 엄천난데도 놀랄 일이지만, 그 끈기와 열정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르지 않을 수 없을 수가 없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자가 열성을 가지고 끈기있게 몰두를 하였기에 그런 큰 업적을 남겼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물론,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수 많은 노예를 부렸고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위해서 혈세를 짜내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지금의 모습만을 남기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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