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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in Dynasty Epic- 대진부(大秦賦):수정/추가

바람거사 2021. 3. 5. 15:31

(거사 첨언): 3월 4일, CCTV의 대하극,'대진부(大秦賦)' 시청을 시작하면서 중국의 역사 연대를 다시 펴봤다. 중국에는 쓰레기도 많지만, 장구한 역사의 유물도 많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규모의 토목공사, 군비확장, 미국을 따라잡을 정도의 우주과학의 발전도 과목할만 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대중 문화적인 면에서도 그 규모가 타국에서는 꿈도 꿔보지 못하는 대하 드라마로 엮은 심국지, 초한지 등 대작들이 많은데, 특히 '대진부'는 78부로, 처음부터 광활한 로케현장에서 엄청난 규모의 전투 씬을 벌리는 압도적인 풀롯도 인상적이었고 또한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영화제작하는 기술도 과히 수준급이다. 그리고 진국이 춘주전국시대를 끝지우고 중국 최초로 천하 통일하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2013년에 올렸던 중국 역사 연대표도 다시 끌어 올렸다.

 

물론 기원전 2~300년의 스토리를 천문학적인 거액을 들여서 국영방송국에서 제작한 저의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우수한 민족이라는 걸 과시하는 면도 있다. 반면에 신장과 티벳, 몽고를 무력으로 움켜쥐고 있고, 심지어 동북공정을 하여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 역사까지 자기네 것으로 만드려는 공공연한 저의를 보면 더욱이 그러하다.

 

그러나 '진대부'도 삼국지나 초한지와 같이 권력쟁취나 유지에 따른, 예견, 질투, 시기, 모함, 암살 등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서사시를 엮은 대하 드라마 자체로 그 의미를 다한다고 생각하며 즐감한다.

 

감독: 연예, 고기면, 강룡, 류영도

출연: 장로일, 단혁굉, 이내문, 주주, 신백청, 오군매 등---

집회: 78회

 

(줄거리)

전국시대 후기, 강력한 진국을 이룩한 소양왕 사후 뒤를 이은 효문왕도 즉위후 삼일만에 붕어하면서, 진국 조정은 적서의 논쟁에 휘말린다. 조국 출신인 대 상인 여불위는 극적으로 조국에 볼모로 가있던 영이인을 탈출시켜서 효문왕의 정실부인인 화양부인의 양자로 들이게 하여 결국 장공자 영혜가 함양을 떠나면서 적서 논쟁이 끝나고 태자가 된다. 

 

진국이 천하를 평정하기 위한 큰 걸림돌인 조국과 결전을 앞두고, 우여곡절끝에 여불귀가 맺여준 조희와 영정을 진국으로 소환케한 후에 여불위와 손을 잡고, 성교를 태자로 옹립하려하는 초국 출신의 화양부인과 대립한다. 그러나 효문왕의 대를 이어서 영이인이 장양왕이 되었으나 그도 몸이 허약하여 3년후 홍서하는 바람에 어린 영정은 이복 동생인 성교를 제치고 13살에 31대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태후가 된 조희는 여불위가 환관으로 위장한 예전의 수하였 노애와 더불어 은밀하게 지내면서 애 둘까지 낳는다. 노애는 조희의 권력을 등에 없고, 상방인 여불위와 맘먹는 권세를 누렸지만,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했고, 진왕이 성인이 함양을 잠시 비운 사이에 노애가 반란을 일으킨다. 진왕은 급히 군사를 보내어 진압을 하여 노애를 능지처참하고 조희를 감금한다. 결국 애까지 있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모두 참살하고, 기원전 237년에 여불위는 자결을 명한다. 그리고 시황제가 된 진왕은 이사와 더불어 6국을 멸하고 기원전 221년, 40세에 이르러 천하 통일을 이루는데-------.

고대 중국

주나라가 무너지고 춘추시대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쥔 패자가 등장하여 중원의 정치를 좌우했다. 춘추시대에만 해도    주왕실을 존중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좀 더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에는 주나라의 권위는 허울뿐이였다.

 

전국시대는 철기의 확산으로 제 2의 농경사회라고 불리울 수 있는 농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웠고, 춘추시대의 전쟁과는 달리 더 좋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전쟁은 날로 더 많은 병력을 필요로하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만큼 많은 사상가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타났다. 이를 제자백가라고 불리우는 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전국시대에 농경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끊임없는 전쟁탓에 엄청난 양의 군량과 군수물자를 부담해야하는 백성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상업도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전쟁을 중단해야한다는 여론이 퍼지게 되었다. 이런 통일에 대한 바람은 제자백가의 한사람인 추연의 주장에도 드러난다. 추연이 주장한 오덕종시설은 장차 주를 잇는 통일왕조가 반드시 도래할 것임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 시켰다고 하지만 현재의 중국의 영토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을 통일했다고 하면 현재의 중국의 영토만큼을 통일시킨 것은 결코 아녔다.

 

진시황은 기원전 230년 한나라의 정복을 시작으로 조, 위, 초, 연을 차례로 멸하고 마지막으로 제나라를 멸망시켰다. 가까운 나라부터 정복하였던 것이 아니라 한나라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제나라를 했던 것도 진나라 정복의 탁월한 전략을 잘 보여준다. 이는 원교근공책이라는 것으로써 거리가 멀거나 비교적 먼 나라인 초나라·제나라·연나라와는 친하게 지내고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삼진(三晋)인 한나라·위나라·조나라는 무력으로 제압한다는 외교 전략이었다. 이렇게 진나라가 마지막으로 제가 멸망할 때 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였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한 대표적인 일들로는화폐와 도량형의 통일과 봉건제의 폐지, 군현제의 전국적 실시를 하였다.

춘추시대에서부터 시작된 화폐가 전국시대에 널리 보급되었으나 각자의 나라마다 화폐와 도량형이 달라서 상업의 발달에 제약을 준다고 느꼈던 것일까?

 

진시황제는 이러한 제약을 없애기 위해서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시키고, 주나라가 멸망하게 된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지방집권에서 중앙집권의 통치를 하려고 하였다. 또한 도로망을 정비하고 수레의 규격을 일정하게 하여 물자유통을 원할히 하도록 했다. 문자도 단일하게 조정하여 문자행정의 효율을 높이고자 했다.

 

 

물론 분서갱유 사건은 유가입장에서는 비난의 표적이 되었지만, 진 제국의 실용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통일된 진국 지도

통일 진나라의 멸망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는 통일 이후 15년,  진시황 사후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도대체 왜 그토록 강대한 힘으로 천하를 통일한 제국이 그리도 짧은 시간에 그리도 무력하게 망했을까? 통일 진 제국을 세우는 데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나라를 연 진 양공, 기틀을 다진 진 목공,  국력을 크게 떨친 진 효공,  그리고 드디어 통일을 눈앞의 현실로 만든 진 소왕,  수많은 장수와 신하들 또한 제몫을 다했다. 백리해, 상앙, 장의, 백기, 몽오, 여불위 등등. 물론 여기에는 진나라 백성들과 통일을 갈망한 모든 백성들의 피와 땀, 희생, 염원도 있었다.

즉 진나라가 통일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진시황제의 업적은 사실 보잘것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는 거의 다 차려 놓은 식탁의 마무리를 한 것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전제, 독재, 강압, 폭압정치를 계속했다. 그 결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값진 통일중국을 그의 사후 3년 만에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통일 진나라가 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궁극적인 그 모든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진시황에게 있다. 어떤 이유는 진나라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대가를 치른 것도 있다. 세상 모든 일에서 처음이란 어려운 것이다. 시행착오도 생기고,  이것은 이후 중국을 통일한 모든 나라가 따라한 정책이다.

 

그러나 진나라의 경우 처음 하는 것이라서 백성들이 낯설기도 하고 저항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떤 것은 통일전과 후의 정책을 구분하지 못한 탓도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진시황과 집권층의 잘못이다. 분명 통일 이후에는 백성들을 편하게 해야 했는데도 전혀 고삐를 늦추지 않고 부려먹고 괴롭혔다. 또 통일국가를 위한 토목공사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토목공사는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국가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에서 해야 한다. 이 전철을 밟은 나라로 대표적인 게 수나라이다. 그리고 진시황 개인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 사직을 멸하다.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후사를 남기지 않고 말살하려하였다. 이전의 상(은)나라는 하나라를 멸하고 그 후손을 기나라에 봉해서 제사를 이어가게 했다. 주나라도 은나라 유민을 송나라에 모여 살게 했다. 그러나 진시황제는 이런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래서 망한 왕족들은 살해되거나 산속깊이 숨어야했다. 이런 무자비가 결국 민심을 동요시키고 진시황 사후 이들이 다시 들고일어나게 된 요인이다.

 

2. 기고만장, 과대망상, 안하무인의 극치

진시황제는 스스로 공은 오제보다 많고 땅은 삼왕보다 넓다하여 다른 임금들과 같이 취급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 사기 진시황본기 - 곧 그는 통일의 대업이 자신이 잘나서라고 단단히 착각했다.

"짐은 시황제가 되고 후세에는 대수를 헤아려서 2세, 3세, 만세에 이르기까지 제위를 무궁하게 전하겠다." - 이 말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진나라가 영원히 황제를 해먹겠다는 오만함이 보이지 않는가? 일찍이 이런 발언을 한 사람이 또 있을까? 통일의 위업이 순전히 자신이 잘나서라고 생각하는 진시황제는 결국 자아도취에 빠지게 되는데 후에 그는 영생불사를 꿈꾸기도 한다.

그는 월나라 왕 구천과 성격이 비슷하여 어려울 때 괴로움을 함께 할 수는 있어도 부귀를 함께 누릴 수는 없는 사람이다.

 

3 楮衣半道(저의반도) 道路以目(도로이목)

저의는 죄수가 입는 붉은 옷이다. 곧 길거리에 반이 죄수라는 말이다. 도로이목이란 학정에 대한 비판을 말하지 못하고 서로 길에서 눈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말이다.

전 국민의 10%가 중정요원이었던 시절. 술 먹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감옥에 끌려가던 시절이 생각난다. 통일 이후에 법을 단순화시키고 형벌도 줄여야했는데 오히려 더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결국 진시황제는 백성들의 지지를 스스로 차버렸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진나라는 오행에서 수덕에 해당하는데 수는 법이다. 그래서 유난히 엄격한 형벌, 잔혹한 법을 시행했다고도 말한다.

 

진승, 오광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엄한 진나라 법 때문이었다. 진나라 관리로 인부들을 모집해 이송하던 이들은 큰비로 정해진 기일에 도착할 수 없게 되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진나라 법에 이 경우 무조건 사형이었기 때문에 이판사판식으로 일어난 것이다.

 

4. 중앙집권제, 군현제 실시(정치적 통일)

승상 왕관은 자제를 왕으로 세워서 각국을 다스리게 하자고 건의한 반면,  정위 이사는 봉건제는 주나라의 낡은 제도로 관리를 직접 파견하는 군현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진시황 26년에 36군,  나중에 47개 군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은 총수가 9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중앙집권체제, 군현제는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형식이 약간씩 바뀌기는 하지만. 이런 혁명적인 제도는 결국 그때까지 봉건제에 익숙했던 백성들에게 약간 낯선 면이 있었다.

 

5. 도로건설(지리적 통일)

가. 치도 : 황제 전용도로로 진시황 27년(220년)에 건설되었다. 동로는 연, 제나라 방면으로,  남로는 오, 초나라 방면으로 통했다.

나. 직도 : 수도 함양 부근의 운양에서 구원으로 연결되는 직통도로로 길이가 1800리에 달하는 군사용 도로다. 진시황 35년에서 37에 걸쳐 완공되었다.

다. 오척도 : 파, 촉 지역에서 운귀 고원으로 통하는 도로. 도로 폭이 5척이어서 오척도라 하였다. 현재의 사천성 의빈시에서 운남성 곡정에 이르는 길

라. 신도 : 남부지방에 건설한 도로로 네 개의 주요 도로가 있다. 대부분 지금의 강서성, 광동성, 호남성 지역에 걸쳐있다. 원래는 군사용 도로였지만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마. 영거 : 군량미 수송을 위해 판 수로로 총 길이가 34km로 남북 두개의 수로가 있다. 이 두개의 수로가 장강과 주강을 연결해서 중원과 영남지역을 관통한다. 관개수로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도로건설은 물론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있지만 이런 노역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6. 만리장성(지리적 통일)

기존의 연, 조, 진나라의 장성을 연결하고 개보수하였다. 만리장성으로 인해 이민족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였고 이후에 '장성의 남쪽은 모두 중국이다'라는 관념이 생겼다고 한다. 이 만리장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점과 의견이 있지만 여기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겠다. 만리장성의 건설에 대해 호(胡)가 결국 나라를 망친다는 말에 따라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부터,  장성 건설 과정에서 죽은 남편과 이를 그리는 여인의 에피소드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리장성이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구조물이라는 황당한 상식도 있다.(지금도 이걸 믿는 사람도 있고) 내가 볼 때 만리장성이 중국을 지리적으로 통일했다는 것은 일견 맞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을 쌓아서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켜버렸고 이것이 후대에 서양에 뒤지게 되고 반식민지가 된 원인은 아니었을까? 고립은 결코 최선이 아니다. 물론 당장은 외적의 침입으로 부터 안전하게 되었겠지만.

 

어쨌든 만리장성 건설로 희생된 백성들의 피가 결국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물론 만리장성이 진 제국을 붕괴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지만 이것은 아방궁과 더불어 너무 강조된 면도 있다. 만리장성 건설에 30만,  남쪽 오령 수비에 50만,  아방궁과 여산의 묘를 건설하는데 70만, 그밖에 도로, 교량, 수로 건설에 투입된 인원을 합하면 총 2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그 당시 전체 인구 2000만의 1/10에 달하는 엄청난 인력이었다.

 

7. 도량형, 문자, 화폐 통일

통일 직후에 진시황제는 도량형을 통일하고 전국에 통일된 도량형 기구를 보급했다. '말은 소리가 다르고,  문자는 모양이 다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문자 통일을 추진하였다. 진나라 소전을 통일서체로 정했다. 통일 이전에 포폐, 도폐, 원전, 의비전 등이 여러 나라에서 쓰였다. 진시황 37년에 화폐 개혁 령을 공포해서 진 반량으로 통일하였다. 위 세 가지 통일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도량형, 문자, 화폐 통일에도 반발한 세력은 있었을 것이지만, 도량형이 가장 먼저 쉽게 통일되었다. 이거야 단순한 규격통일이니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의 통일은 어느 정도 진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서로 다른 문자, 말을 쓰던 사람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없어지는 문자, 말을 쓰던 타국인들은 적지 않게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화폐의 통일은 오늘날로 치면 환율을 재조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무래도 진에 흡수된 6국의 상인, 재산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재산평가액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화폐통일이 진시황제가 죽기 한해 전인 37년에 이루어진 것만 보아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8. 사상 통일

분서(33년, 214년) : 진시황제의 생일맞이 연회에서 순우월과 이사가 논쟁을 벌였다. 거기서 이사는 이제 더 이상의 비판은 필요 없다며 몇 가지 실용서적을 제외한 방대한 서적에 대한 분서를 건의한다. 그는 분서를 통해 각국의 역사를 말살하려했다. 제자백가의 서적을 태워서 정책비판의 이론적 근거를 없애고자 하였다. 곧 체제에 대한 비판이 공개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그리고 역사 자체를 부정한 것이기도 한다.

 

갱유(35년, 212년) 진시황제를 섬기던 술사(術士) 후생과 노생이 진시황을 비판하고 도망쳤다. 이에 진시황제는 수도 함양 내의 모든 유생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여 조금이라도 금기를 어긴 460여 명의 유생을 생매장해버렸다. 진시황제의 큰아들 부소가 이에 대해 간언하다가 분노를 사서 몽념이 주둔하는 군감 땅으로 유배되었다.

 

이 두 가지는 그야말로 전제정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로 진나라가 망한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유학자들이 이런 견해를 중시했다. 분서를 주도적으로 시행한 이사는 큰 죄를 지었다고 봐야한다.

 

9. 진시황제의 죽음

진시황제 38년 7월 천하를 순수하던 진시황제는 회계(지금의 상해 부근)까지 갔다가 낭야를 거쳐 평원진에 이르러 드디어 병에 걸렸다. 서둘러 수도 함양으로 향했지만 2천리나 떨어진 사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진시황제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도 한 임금의 죽음도 아니었다. 그는 그 자체로 진 제국을 상징했다. 그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중국에서 그때까지 억눌렸던 모든 저항들이 뚫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시황제의 죽음 자체가 진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만일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일찌감치 죽고(개인의 성격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진시황제가 백성들을 위하는 어진 정치를 펼칠 수는 없다고 본다) 부소가 제위를 이어받았다면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정책을 펼쳐서 진나라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10. 후계자의 부재, 혼선

죽음에 이르러 진시황제는 큰아들 부소에게 편지를 써서 함양으로 돌아와 장례를 주관하라고 명한다(곧 제위계승권을 준 것이다).  시황제의 죽음은 그를 호종하던 아들 호해, 환관 조고,  대신 이사 등 몇몇만이 알고 있었다. 이미 시황제가 죽은 마당에 권력의 단맛을 실컷 본 환관 조고는 진시황제의 유지를 어기고 제위를 바꿀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문서를 위조하기로 마음먹고 호해를 설득하고 다시 이사를 설득한다. 이사는 결국 '하늘을 향해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쉬며' 복잡한 심경으로 음모에 참여한다. 조고는 마침내 위조된 유언을 부소에게 보낸다.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소는 아들 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고 효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칼을 내리니 자결하라.'

더불어 수십만 대군을 지휘하던 몽염에게도 자결을 명한다. 몽염은 자결하려는 부소에게 황제의 뜻을 확인하고 결정하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착한 아들 부소는 자결해버린다. 부소의 죽음으로 저항할 명분이 사라진 몽염은 사로잡히고 만다. 함양에 돌아와 시황제의 죽음을 발표한 호해는 2세 황제가 되었다. 이때가 진나라가 멸망 직전에 다다른 때이고, 만일 이때 부소가 황제가 되었다면 진나라가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백성들의 저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이미 통일 진국의 기운이 쇠퇴해져있었다. 역사의 흐름은 미국의 상 또라이 트럼프가 득세했던 걸로 봐서도, 꼭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을 일이다. (-)

 

진국을 멸망시키고 한국을 세운 유방

 

 

중국의 역사 연대표

 

연 대

하(夏)

약 BC 21세기 - 약 BC 16세기

상(商)

약 BC 16세기 - 약 BC 1066년

 

 

 

주(周) 

 

서주(西周)

약 BC 1066년 - 약 BC 771년

동주(東周)

BC 770년 - BC 256년

 

춘추(春秋) 

 

BC 770년 - BC 476년

 

전국(戰國) 

 

BC 475년 - BC 221년

 

 

진(秦) 

 

BC 221년 - BC 206년

 

한(漢) 

 

 

서한(西漢) 

 

BC 206년 - AD 23년

 

동한(東漢) 

 

AD 25년 - 220년

 

 

삼국(三國) 

 

위(魏)

220년 - 265년

 

촉(蜀) 

 

221년 - 263년

 

오(吳) 

 

222년 - 280년

 

 

진(晋) 

16국(十六國) 

 

 

서진(西晋) 

 

265년 - 316년

 

동진(東晋) 

 

317년 - 420년

 

16국(十六國) 

 

304년 - 439년

남북조(南北朝)

남조(南朝)

송(宋)

420년 - 479년

제(齊)

479년 - 502년

양(梁)

502년 - 557년

진(陳)

557년 - 589년

북조(北朝)

북위(北魏)

386년 - 534년

동위(東魏)

534년 - 550년

북제(北齊)

550년 - 577년

서위(西魏)

535년 - 557년

북주(北周)

557년 - 581년

 

 

수(隋) 

 

581년 - 618년

당(唐)

618년 - 907년

 

 

 

 

 

오대십국(五代十國) 

 

 

후양(后梁) 

 

907년 - 923년

 

후당(后唐) 

 

923년 - 936년

후진(后晉)

936년 - 946년

 

후한(后漢) 

 

947년 - 950년

 

후주(后周) 

 

951년 - 960년

 

십국(十國) 

 

902년 - 979년

 

송(宋) 

 

 

북송(北宋) 

 

960년 - 1127년

 

남송(南宋) 

 

1127년 - 1279년

 

 

요(遼) 

 

907년 - 1125년

 

 

서하(西夏) 

 

1032년 - 1227년

 

 

금(金) 

 

1115년 - 1234년

 

 

원(元) 

 

1279년 - 1368년

 

 

명(明) 

 

1368년 - 1644년

청(淸)

1644년 - 1911년

중화민국(中華民國)

1912년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1949년 10월 1일 성립

 

 

 

은·주 나라

 

현재 중국 역사의 시작으로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왕조는 기원전 약 1600년경의 은왕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은왕조의

두 서울과 10여곳의 왕릉이 이미 발굴되었으며, 문자도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춘추 전국 시대

 

주나라 평왕이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의 시대를 서주시대라 하고, 도읍을 옮겨 동쪽으로 낙양을 수도로 삼았을 때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를 동주시대 혹은 춘추전국시대라 한다.

 

 

진나라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룩한 진의 시황제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는 승상 이사에게 명하여 문자를 통일하고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통일국가에 걸맞게 모든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한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한을 세운 한 고조 유방은 봉건제의 장점과 군현제의 장점을 살린 군국제로 한왕조의 기틀을 잡았다.

유방은 왕조 초기에 한신, 팽월 등 한왕조 창업의 일등 공신들을 차례차례 숙청하여 황제권을 강화했다.

 

 

위진남북조 시대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각지에서 군옹이 할거하게 되었는데, 이들 할거 세력들은 동탁의 제거를 계기로 그들의

세력 확장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가운데서 천하를 삼분하여 대치하고 있었던 촉한, 위, 오의시기를 삼국시대라 한다.

 

그리고 나서 천하를 삼분하여 대치해 왔던 삼국은 결국 위의 뒤를 이은 진나라에 의해 멸망된다. 보통 이시기를

위진남북조 시대라 한다.

 

 

수나라

 

수나라를 세운 문제 양견은 그 때까지의 악정을 과감히 개혁하고 정치에 정진하는 한편 북쪽으로 호족들을 물리치고

남쪽으로 남조 최후의 진 왕조르 멸망시켜 근 4백 년 동안 이어오던 대분열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당나라

 

서기 618년 이연은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세웠다. 당나라는 수나라의 멸망을 교훈 삼아 안으로는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영토를 확장하여 당왕조 3백년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송나라

 

송의 태조 조광윤은 혼란한 오대십국 시대를 마감하고 송왕조를 세웠다. 조광윤은 제위에 오르자 문치주의로 무인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집권 체제의 확립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중앙을 위주로 한 여러 가지 제도의 개혁은 관제와 군제 및

그 운영에 많은 문제와 모순을 드러내었다.

 

 

원나라

 

몽고 초원의 영웅 칭기즈칸은 무력을 앞세워 유럽과 아시아를 석권함으로써 역사상 유례없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 뒤를 이은 세조 쿠빌라이는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하여 킨의 자리에 오른 후 나라 이름을 원나라로 고치고 수도를

연경(북경)으로 옮겨 대도라 칭하였다.

 

 

명나라

 

명의 태조 주원장은 원나라의 정치가 문란하고 국력이 쇠진한 틈을 타 한족국가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1368년 명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감세와

면세를 실시하고 수리사업과 개간사업을 추진하여 생산촉진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원나라 지배 아래 만연된 여러 가지

몽고풍의 제도와 풍습등을 씻어내고 한족의 문화를 재건하기에 힘썼다.

 

 

청나라

 

청은 이자성을 몰아내고 청왕조야말로 명나라의 뒤를 승계한 중국의 전통 왕조임을 선언하였다. 1644년 제 4대 강희제 때에

이르면 오삼계등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중국을 완전히 통일하면서 중국에의 지배를 공공히 하였다.

 

 

근현대시대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은 중국 역사상 일대전환점이자 중국 근대사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변한 중국은 점점 목을 조여오는 외세의 위협에 대처하고 효과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온 힘을 기울였다. 중국은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의 실패 이후 마침내 전제군주제인 청조를 타도하고

신해혁명을 성공시켜 중화민국을 탄생시켰다. 중국의 근현대사는 바로 우리나라가 걸었던 역사와 비슷한 경로를

밟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갔던 중국의 행로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연대표

1. 기원전

 

7500경 배리강문화.

7000경 자산문화, 대지만 1기 문화.

6000경 하모도문화.

5000경 앙소문화(반파유형).

3500경 대문구문화

2500경 용산문화

2000경 하문화(?)

1650경 상왕조 시작. 박에 도읍. - 이리두 후기.

          중정, 오(하남성 정주 ?)로 천도.

1400경 반경, 은으로 천도.

1070경 무왕이 주왕조 창건. 호경에 도읍을 정함 - 종주.

          성왕, 주공이 소공의 보좌로 삼감의 난 평정. 낙양에 성주를 건설, 제후 봉건.

          의왕, 주왕조의 세력이 약화.

841 여왕이 추방되어 체로 망명. 14년간의 공위시대. 중국사상 최초의 실년대.

827 선왕이 주왕조를 중흥시킴.

771 신후가 북방의 견융과 함께 수도를 공격, 서주왕조 멸망.

770 유왕이 죽고, 태자 의구가 즉위하여 도읍을 성주로 옮김. 동주 시작.

722 노 은공 원년, ≪춘추≫의 기술 시작( - B.C. 481).

685 제 환공, 즉위하여 관중을 상으로 삼아 정치개혁 시작.

679 제 환공, 송·진·위·정의 제후와 견에서 회합하여 최초의 패자가 됨.

651 제 환공, 제후를 규구에서 회합하여 패업을 완성.

632 진 문공, 송·제와 함께 城복에서 초군을 격파. 천토에서 제후를 회합하여 패자.

606 초 장왕이 육혼의 융을 정벌하고, 낙양에 이르러 정의 경중을 물음.

597 초가 필에서 진군을 격파 - 필의 전투.

552 공자 출생.

536 정에서 성문법을 鼎에 주조함 - 형정.

496 오왕 합려, 월에 패해 죽고, 아들 부차가 뒤를 이음.

494 오왕 부차, 월왕 구천을 격파.

479 공자가 죽고, 묵자가 이 무렵 출생.

473 월왕 구천, 오를 멸망시킴.

453 진의 3대부 한·위·조가 지백을 멸망시키고 진을 삼분하여 독립.

445 위 문후 즉위. 이회·오기 등을 임명하여 개혁 시행.

403 한·위·조가 제후로서 주왕실에게 인정.

 

386 제의 대부, 전화가 국을 탈취하여 제후로 인정.

359 진 효공, 상앙을 등용 - 제1차 상앙변법.

350 제2차 상앙변법. 진, 함양으로 천도.

333 소진, 합종책 성립. 소진이 6국의 재상을 겸임.

 

299 초 회왕이 진에 포로가 됨(296년 진에서 객사).

288 제가 동제, 진이 서제라 칭하며 동서의 대립 격화.

278 진의 장군 백기, 초의 수도 영을 점령. 초는 진으로 천도.

260 백기, 조를 공격 - 장평의 전투.

259 진왕 정(후일의 진시황) 출생.

221 진이 제를 멸망시키고 천하통일. 처음으로 황제 칭호 사용.

      전국을 군현으로 편성하고, 화폐·도량형·문자를 통일.

214 장군 몽념, 오르도스 지역의 흉노를 제압하고 만리장성 건설 시작.

213 분서령을 반포하여 사상통제 단행. 다음 해에는 坑儒사건이 발생.

210 시황제가 5차 순행 중 사망. 이세황제(호해)가 즉위.

     시황제를 여산에 장사지냄.

209 7월, 진승·오광이 거병하여 장초를 칭함. 9월, 항우·유방 거병.

203 12월, 항우가 오강에서 전사.

202 2월, 유방이 황제 지위에 오름.

201 10월, 고조가 흉노를 공격하다 평성에서 포위.

 

196 한신·팽월·경포 등이 살해되고, 유씨 일족이 제후황에 분봉.

195 4월, 고조가 죽고 혜제 즉위. 여후의 전제 시작.

188 8월, 혜제 사망. 다음해부터 여후의 임조칭제 시작.

180 7월, 여후 죽고, 여씨 일족 살해. 문제 즉위.

168 전조를 감면. 다음 해에는 모두 폐지.

157 6월, 문제가 죽고 경제 즉위.

156 전조 부활시켜 세율을 1/30으로 정함.

154 오초칠국의 난 발생, 평정.

141 1월, 경제 사망, 무제 즉위.

140 연호 시작. 이 무렵 장건이 서역으로 출발.

136 오경박사 설치.

133 마읍의 전투 - 흉노 군신단우 암살 실패, 대흉노관계 악화.

129 위청, 제1차 대흉노전투에 출격.

127 위청, 제2차 대흉노전투에 출격. 오르도스지방 제압. 삭방·오원군 설치.

126 장건, 서역에서 귀환.

121 곽거병, 흉노에게 2회 출격. 흉노의 혼사왕 투항. 하서지역에 4개군 설치.

119 위청·곽거병, 흉노에 출격. 장건, 재차 서역으로 출발.

      염철 전매정책 등 신재정정책 시작.

112 南越에 출병.

110 무제, 태산에서 봉선 거행. 평준법 실시.

108 한사군 설치.

106 처음으로 주 자사를 설치.

104 태초력을 채용. 관제 개혁.

      이광리, 제1차 대완 원정에 실패.

101 이광리, 제2차 대완 원정. 한혈마를 획득하여 귀환.

 

99 이광리, 흉노에 출격, 이릉, 흉노에 투항.

91 7월, 무고의 난이 발생. 황태자 거와 처자가 살해.

87 2월, 무제 사망. 소제 즉위. 곽광·상홍양 등이 보좌.

81 염철회의 개최 - ≪염철론≫.

80 연왕 단 모반사건으로 상홍양·상관걸 등 살해. 곽광정권 확립.

74 4월, 소제 사망. 7월, 선제 즉위.

68 곽광 사망. 선제의 친정 시작.

60 처음으로 서역도호 설치.

51 1월, 흉노의 호한사선우가 한에 내조. 유자들이 석거각에서 경전 교정.

49 12월, 선제 사망. 원제 즉위.

33 5월, 원제 사망. 성제 즉위. 왕봉이 대사마대장군이 되어 외척이 권력 장악.

8 왕망이 대사마가 됨.

7 2월, 성제 사망. 애제의 즉위와 동시에 왕씨 권력 상실. 왕망도 하야.

1 6월, 애제 사망. 평제 즉위와 동시에 왕망이 재차 대사마에 취임.

 

2. 기원후

 

5 12월, 왕망, 평제를 독살. 유자 영을 황태자로 삼고, 자신을 가황제라 칭함.

8 12월, 왕망 황제의 지위에 오름.

9 국호를 '신'으로 정하고, 한의 제도를 변경.

18 번숭 등(후일의 적미군)의 반란 발생.

22 왕망군이 각지에서 패퇴. 10월, 유수 등이 거병.

23 2월, 유현, 갱시제로 즉위. 다음해 장안으로 천도. 10월, 왕망 살해되고 '신' 멸망.

25 6월, 유수, 광무제로 즉위. 9월, 적미, 장안에서 경시제군을 격파.

12월, 경시제를 살해. 광무제가 낙양에 도읍을 둠.

27 1월, 적미, 광무제에 항복.

36 광무제, 공손술을 토벌하고 촉을 평정하여 천하통일.

39 경지·호적의 조사 시작.

48 흉노, 남·북으로 분열.

57 2월, 광무제 사망. 명제 즉위.

73 두고, 북흉노를 공격. 반초를 서역에 파견.

79 백호관에서 오경의 이동을 논의. 이 무렵 ≪漢書≫ 완성.

88 1월, 장제 사망. 화제 즉위. 두태후 임조. 외척 두씨의 전횡 시작.

91 반초, 서역도호가 됨.

92 두헌의 살해와 함께 환관의 전횡 시작.

 

105 채륜이 종이를 만들어 헌상. 12월, 화제 사망. 상제 즉위.

106 8월, 상제 사망. 안제 즉위.

107 강족의 반란. 서역으로의 길이 단절. 서역도호 폐지.

121 허신의 ≪설문해자≫ 완성.

125 3월, 안제 사망. 소제 즉위하자마자 죽음. 환관들이 순제를 옹립.

142 양자강 하류의 구강·광릉에서 반란. 146년까지 빈번히 발생.

144 8월, 순제 사망. 충제 즉위. 양기가 대장군이 되어, 양씨의 전횡 심각.

145 1월, 충제 사망. 질제 즉위.

146 양기, 질제를 살해. 환제 즉위.

159 양기, 환관에게 살해. 환관 단초 등이 열후에 봉해지고, 환관의 전횡 극심.

166 12월, 제1차 당고사건 발생. 서주에서 반란 발생.

167 12월, 환제 사망. 영제 즉위. 여강에서 반란 발생.

175 석경을 태학문외에 건립 - 희평석경.

184 2월, 황건의 난 발생. 3월, 당인의 금고를 해제.

189 4월, 영제 사망. 소제 즉위. 8월, 원소가 환관을 모두 살해.

      9월, 동탁이 폐위시키고 헌제를 세움.

190 1월, 동방의 군웅이 동탁토벌군 일으킴. 동탁이 수도를 장안으로 옮김.

     요동태수 공손탁, 교지태수사섭 등이 독립정권 수립.

192 동탁 암살.

195 조조가 연주목이 됨.

196 조조, 헌제를 허로 맞이하고, 사공에 임명됨. 조조, 둔전을 실시.

 

200 조조, 원소를 관도에서 격파. 손권 자립.

208 적벽 전투 - 유비·손권 연합군, 조조를 격파.

220 1월, 조조 사망. 아들 조비가 헌제를 폐위시키고, 위를 건국(문제). 후한 멸망.

            문제, 구품관인법 제정.

221 유비, 촉을 건국(소열제).

222 손권, 오를 건국(대제). 위·오·촉의 삼국이 정립( - 265).

227 촉의 제갈공명 출사표를 올리고 위를 공격.

234 촉의 제갈공명 오장원의 진중에서 사망.

238 위의 사마의, 요동의 공손씨를 멸망.

249 사마의, 승상이 되어 위의 실권을 장악. 하안·왕필 사망.

263 위, 촉을 멸망. 죽림칠현 중 완적 사망(전년 ?강 사망).

265 사마염, 위를 멸망시키고, 진을 건국(무제).

280 진, 오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 점전·과전법을 발포.

297 진수 사망(233 - ) - ≪삼국지≫의 찬자.

 

300 八王의 난 시작( - 306).

304 흉노의 유연, 한왕을 자칭.

311 한의 유요, 낙양을 함락. 진제를 포로로 잡음 - 영가의 난

316 유요, 장안을 함락하고 진을 멸망.

317 사마예, 건업에서 즉위 - 동진 성립.

318 유요 즉위. 이듬해 한에서 조라 개칭 - 전조.

319 갈족의 석륵, 조왕이라 칭함 - 후조.

328 후조의 석륵, 전조의 유요를 암살하고 전조의 땅을 병합.

337 선비족 모용황, 연왕을 자칭 - 전연.

348 불도징, 사망.

351 저족 부견 진천왕이라 칭하다 - 전진.

353 왕희지 등, 난정에서 모임을 개최.

      이 무렵 돈황천불동이 개착( - 14세기).

364 동진, 토단법을 시행. 건강에 와관사를 건립하고 고개지가 벽화를 그림.

370 전진 부견, 전연을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

383 비수의 전투 - 전진의 부견 남정을 시도, 동진군에 패배.

384 선비족 모용수 연왕을 자칭 - 후연. 강족 요장 진왕을 자칭 - 후진.

      서연 건국.

385 도안·사안 사망.

386 선비족 척발규 국호를 위라 고침 -북위. 후량, 건국.

398 북위 탁발규(도무제), 평성으로 천도.

 

402 환현, 반란을 일으켜 동진의 제위를 찬탈( - 404).

404 유유, 환현을 토벌.

405 고개지, 사망.

412 법현, 인도에서 귀국(399년 출발) - ≪불국기≫의 저자.

413 구마나십 사망(344 - ).

414 호태왕비(광개토대왕) 건립.

417 유유, 후진을 공격해, 잠시 장안을 탈환.

420 유유, 동진을 멸망시키고, 송을 건국(무제).

427 도연명, 사망(365 - ).

433 사령운, 刑死(385 - ).

439 북위 태무제, 화북을 통일(남북조시대 - 589)

446 태무제, 폐불을 단행.

448 구겸지, 사망(363 - ) - 도교 확립.

460 담요, 사문통이 되어 운강석굴의 조영을 시작( - 494).

471 북위 효문제, 5세에 즉위, 풍태후가 섭정.

479 소도성, 송을 멸망시키고, 제를 건국(고제).

485 북위, 균전제를 실시.

486 북위, 삼장제를 제정.

493 북위 효문제, 평성에서 낙양으로 천도.

      이후 선비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호속을 버리고 한화정책을 단행.

494 용문석굴의 조영을 시작( - 당 중기까지)

495 북위 효문제, 성족상정의 조칙을 반포.

 

502 소연, 제를 멸망시키고, 양을 건국(무제).

518 송운·혜생등, 서역에서 불경을 구함.

524 북위, 육진의 난 발발.

527 역도원, 사망 - ≪수경주≫ 찬자.

531 소명태자 사망(501 - , 양무제 장子) - ≪문선≫의 찬자.

534 고환, 효정제를 옹립 - 동위.

535 우문태, 문제를 옹립 - 서위.

548 동위의 후경, 양에 귀순. 다음해 반란을 일으켜 건강을 함락( - 552).

550 고양, 동위를 멸망시키고 북제를 건국(문선제).

      이 무렵 서위, 이십사군을 조직하고, 부병제를 반포.

557 우문각, 서위를 멸망시키고 북주를 건국(효민제).

      진패선, 양을 멸망시키고 진을 건국(무제).

574 북주 무제, 폐불을 단행.

577 북주, 북제를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

581 양견, 북주를 멸망시키고 수를 건국(문제).

583 수, 대흥성으로 천도.

587 수, 과거제를 실시.

589 수, 진을 멸망시켜 남북을 통일.

595 안지추. 사망(531 - ) - ≪안씨가훈≫의 저자.

 

604 태자 양광, 부 문제를 살해(?)하고 즉위(양제).

605 양제, 대운하의 공사를 시작(610, 천진-항주 개통). 임읍을 토벌.

611 양제, 고구려를 친정. 이후 2차(613·614)의 원정도 실패, 각지에서 반란 발생.

613 양현감, 거병.

617 이연, 태원에서 거병. 이밀 등 군웅이 각지에서 할거.

618 양제, 살해되고 이연, 제위에 오름(고조) - 당의 건국

621 두건덕, 왕세충 등, 이세민에 패해 군웅 평정.

 

624 신율령을 반포, 균전, 조용조의 법을 제정.

626 현무문의 변 - 이세민, 형 건성(태자), 동생 원길을 살해.

     고조가 퇴위하고, 이세민이 즉위(태종).

630 동돌궐, 붕괴. 제부족의 장은 당으로 투항, 태종에게 천가한의 칭호를 줌.

635 페르시아 승려 아라본, 경교의 교전을 장안으로 가져옴.

638 씨족지를 반포.

645 현장, 인도에서 범경을 가지고 귀국(629년 출발).

      태종, 고구려를 친정. 이후 원정을 도모하나 성공하지 못함.

646 설연타 항복, 다음해 연연도호부(안북도호부)를 설치.

      현장, ≪대당서역기≫ 완성.

650 단우도호부를 설치해 돌궐 제부족을 통할케 함.

653 ≪오경정의≫ 완성(공영달 등 찬).

668 고구려 멸망. 안동도호부를 평양에 설치.

690 칙천무후. 예종을 폐위하고 국호를 주로 고침(무주혁명).

      제주에 대운사를 설립.

695 의정, 인도에서 해로로 귀국(671년 출발) - ≪남해기귀내법전≫의 저자.

698 대조영 자립 - 발해의 건국.

 

705 중종이 복위, 국호를 당으로 회복. 칙천무후 사망(623-). 제주에 중흥사를 설립.

710 위후, 중종을 독살. 평왕 융기, 위후를 죽이고 예종을 옹립.

711 하서절도사를 설치(최초의 절도사, 이후 십절도사로 증가).

712 예종, 위를 태자 융기(현종)에게 양위.

721 유지기 사망(661 - ) - ≪사통≫의 저자. 우문융의 괄호정책 시작.

722 처음으로 용병을 장안의 수비에 충당 - 부병제의 붕괴.

732 ≪개원례≫ 완성.

742 안록산, 평로절도사가 됨. 그 후 범양(744)·하동(751) 3개절도사를 겸임.

745 양태진을 귀비로 삼음.

751 탈라스 강가의 전투 - 안서절도사 고선지, 압바스 왕조군에 대패

      포로가 된 당병에 의해 제지술이 서역으로 전해짐.

752 양국충, 재상이 됨.

755 안사의 난 발발(~ 763).

756 안록산, 대연황제를 칭함. 현종, 성도로 피난. 양국충·양귀비 등은 살해.

      태자, 영무에서 즉위(숙종).

757 안경서, 부친 안녹산을 살해. 당군, 장안·낙양을 탈환.

758 제오기, 염철사가 되어, 소금 전매제도를 시행.

759 사사명, 안경서를 죽이고 대연황제를 칭함.

761 사조의, 부친 사사명을 죽임. 왕유 사망(701 - ).

762 이백 사망(701~ ).

763 사조의, 패사. 안사의 난 종결(755~ ). 토번이 침입, 장안을 일시 점령.

770 두보 사망(712 ~ ).

775 위박절도사 전승사, 반란.

      그 후에도 하북삼진(위박·노룡·성덕) 등 당조에 반기.

780 재상 양염의 건의로 양세법을 시행.

781 대진경교류행중국비가 장안에 건립. 양염 살해.

783 회서 이희열, 반란. 안진경(709-785)의 설득으로 임지로 가다가 살해. 주체 독립.

794 운남의 이모심을 남조왕으로 봉함.

 

801 두우, ≪통전≫을 완성.

804 유종원 사망(773 - ).

819 헌종, 환관에게 살해. 목종 즉위.

820 토번과 화친, 다음해 라싸에 당번회맹비를 건립.

822 목종 사망. 경종 즉위. 한유 사망(768 - ).

824 이종민·우승유가 재상이 되어 이덕유의 당을 배척 - 우이의 당쟁.

838 엔인, 최후의 견당사선을 타고 입당 - ≪입당구법순례행기≫.

845 회창 폐불을 단행, 제종교가 탄압.

846 무종 사망, 선종 즉위. 백거이 사망(772 - ).

868 방훈의 반란을 발생.

875 왕선지의 난을 발생, 황소가 호응 - 황소의 난( - 884).

880 황소, 장안에 입성해 대제황제라 칭함.

882 황소군 장수 주온, 당에 항복해 전충이란 이름을 하사.

883 이극용, 황소를 격파하고 장안을 회복. 주전충을 선무절도사로 임명.

 

907 주전충, 당을 무너뜨리고 후량을 건국.

916 야율아보기, 황제를 칭함(요 태조).

920 요 태조, 계단문자(대자)를 창제.

923 이존욱(장종), 후당을 세워 후량을 멸망.

926 장종이 살해되고 양자 이사원(명종)이 즉위.

      야율아보기가 죽고 자식 덕광(요태종)이 즉위.

936 석경당(태조), 거란의 원조를 받아 후당을 멸망시키고 후진을 건국.

      이 때 연운십육주를 거란에 할양.

946 거란, 후진을 멸망시키고 화북으로 진출.

947 유지원(고조), 후한을 건국.

951 곽위(태조), 황제를 칭하고 후주를 건국. 유숭, 자립하여 북한을 건국.

954 곽위가 죽고 시영이 즉위(世宗). 풍도 사망(882 ~ ).

955 후주 세종 폐불을 단행.

958 후주, 남당을 토벌해 양자강 이북의 땅을 합병.

959 후주, 요를 토벌해 연운십육주 중 2개 주를 탈환.

960 조광윤, 즉위하여 송을 건국(태조).

963 형남, 송에 항복(925 ~ ).

965 후촉, 송에 항복(934 ~ ). 금군을 개편하고 강화.

971 남한, 송에 항복(917 ~ ).

975 전시의 제도를 창설. 남당, 송에 항복(925 ~ ).

976 태조가 급사하고 동생 광의가 태종으로 즉위.

978 오월, 영토를 송에 헌납(907~ ). ≪태평광기≫ 완성.

979 북한, 송에 항복해 연운십육주만 남기고 대략 중국의 통일 완성.

     요를 토벌했으나 고량하에서 패배.

982 이계봉, 송에 내부. 이계천, 이에 따르지 않고 자립.

983 ≪태평어람≫ 완성.

987 ≪문원영화≫ 완성.

 

1004 송과 요 사이에 화의가 성립. - 전연의 맹

1013 ≪책부원구≫ 완성.

1023 성도에 교자무를 두고 交子를 지폐로 발행.

1028 이원호, 위구르를 깨뜨리고 감주를 점령.

1038 이원호, 즉위하여 대하라 칭함(서하). 이후 송과의 항쟁 지속.

1043 범중엄과 구양수 등을 등용하여 경력의 개혁을 시작.

1044 송과 서하 사이에 화의가 성립.

1065 복의 발생.

1067 신종이 즉위하여 왕안석을 한림학사에 임명.

1069 왕안석, 참지정사가 제치삼사조례사를 두고 신법을 입안.

       균수법, 청묘법을 실시. 모역법을 개봉에서 실시.

1070 보갑법을 개봉에서 실시.

1071 모역법을 전국적으로 실행.

1072 방전균세법, 시역법을 실시.

1073 보갑법을 전국에 확대. 보마법을 화북 제로에서 실시.

       주돈이 사망(1017 ~ ) - ≪태극도설≫.

1076 왕안석, 사직하고 금릉에서 은거.

1084 사마광, ≪자치통감≫을 저술해 신종에게 바침.

1085 신종 죽고 철종 즉위.

       선인태후가 섭정이 되어 사마광 등을 등용해 신법을 중지시키고 구법을 부활.

       정호 사망(1032 ~ ).

1086 사마광, 재상이 모역법, 청묘법 등을 중지.

       왕안석(1021~ ), 사마광(1019 ~ ) 사망.

1093 선인태후 죽고, 철종이 친정하면서 신법을 부활.

1100 철종이 죽고 휘종이 즉위.

1101 소식 사망(1036 ~ ).

1102 채경, 재상이 신구의 당쟁이 격화.

1107 정이 사망(1033 ~ ).

1115 여진의 완안아골타가 즉위하여 국호를 金이라 칭함(금태조).

1118 마정을 금에 보내, 요의 挾擊을 꾀함.

1119 금의 완안희윤, 여진대자를 창제.

1120 방랍의 난 발생.

1121 방랍의 난 진정되고, 양산박의 송강 항복.

1122 동관이 연경을 공격하였으나 실패. 금이 연경을 함락.

1123 송이 연경을 수복. 금 태조가 죽고 동생 오걸매가 즉위(태종).

1125 금, 요의 천조제를 사로잡고 요를 멸망. 송 휘종이 흠종에게 양위.

1126 금군이 개봉성을 공격해 함락.

1127 송의 휘종, 흠종이 체포되고 북송 멸망. - 정강의 변.

       금, 장방창을 내세워 초국 건립, 고종이 즉위하여 송 부흥- 南宋

       장방창, 고종에게 귀순.

1130 금, 유예를 내세워 제국을 건립. 진회, 금에서 귀국.

1132 야율대석, 카라키타이(서요)를 건국.

1137 금, 유예의 제국을 폐지.

1138 진회가 재상이 되어 금과의 화의를 추진.

       금의 희종, 여진소자를 창제.

1140 금군이 남진. 악비가 하남 각지에서 금군을 격파하고 개봉에 당도.

1141 진회가 악비를 체포해 옥중에서 죽임.

1142 송과 금의 제1차 화의 성립.

1149 금의 해릉왕, 희종을 살해하고 제위를 오름

1153 해릉왕, 연경으로 천도하여 중도라 칭함.

1160 남송에서 회자를 지폐로 발행.

1161 금의 남벌군, 채석기에서 패배. 해릉왕 살해되고 世宗이 즉위.

1165 금과 송의 제2차 화의 성립.

1170 왕중양 사망(1113 ~ ). - 전진교

1189 몽골의 테무진, 칸을 칭(제1차 즉위).

1192 육구연 사망(1139 ~ ).

1194 영종 즉위하고, 한탁주가 전권을 휘두름.

1195 한탁주, 정씨의 학파를 탄압해 다음해 주희가 면관 - 경원이학의 금.

 

1200 주희 사망(1130 ~ ).

1206 테무진, 몽골을 통일하고 칭기즈칸이라 칭함(제2차 즉위).

1208 송과 금의 제3차 화의 성립.

1209 몽골군, 서하를 물리치고 위구르를 복속.

1214 금이 몽골에 화의를 청해 화약이 성립. 금, 개봉으로 천도.

1219 칭기즈칸의 서정 시작( ~ 1224).

1227 칭기즈칸, 소허룰 멸망시킨 후 귀환 도중 병사.

1229 오고타이칸이 즉위(태종). 한지에서 세법을 정함.

1234 금, 몽골과 남송의 군대에 공격받아 멸망.

1235 몽골과 남송의 교전 시작.

1236 바투가 동유럽으로 원정 시작( ~ 1243).

1240 ≪몽고비사≫ 성립.

1246 로마교황의 사자인 카르피니, 카라코룸에 당도.

1251 몽케칸 즉위(헌종). 동생 쿠빌라이를 막남한지대총독에 임명.

1253 훌레귀, 서아시아에 원정하여 1258년 압바스왕조를 멸망.

1254 프랑스왕 루이 9세의 사신인 루브루크, 카라코룸에 당도.

1257 원호문 사망(1190 ~ ).

1259 몽케칸, 남송을 친정하던 도중에 사망.

1260 쿠빌라이와 아릭부카가 칸으로 즉위하여 몽골제국의 내분 시작.

       쿠빌라이칸, 최초로 연호를 만들고, 관제를 정비하고 중통교초를 발행.

       가사도, 몽골과의 전공으로 재상이 되고 이후 전권을 휘두름.

1262 한인세후 이단의 난 발생.

1264 아릭부카의 난을 평정. 연경(대도)로 도읍을 정함.

1266 하이두, 반란을 일으켜( - 1301), 몽골제국 분열로 접어듬.

1269 파스파문자 제정.

1271 국호를 元으로 바꿈.

1273 남송의 양양수장 여문환이 원군에 투항.

1274 바얀, 대거 남송을 공략.

        마르코 폴로, 쿠빌라이(세조)를 알현.

1275 문천상, 근왕군을 일으키다. 가사도 살해.

1276 바얀, 남송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들여, 수도 임안을 접수.

       육수부 등이 단종을 받들어 해상으로 도주.

1279 애산이 함락되어 남송이 완전히 멸망.

1280 곽수경, 수시력을 제작.

1282 문천상, 대도의 형장에서 살해.

1287 지원보초를 발행.

1290 마르코 폴로, 귀국길에 나섬. - ≪동방견문록≫

1292 세조, 자바에 원정하였으나 실패로 종결( ~ 1293).

1294 로마교황의 사신 코르비노가 대도에 와서 처음으로 중국에 크리스트교 포교.

1313 처음으로 과거를 시행.

1323 영종, 살해되고 태정제 옹립.

1328 태정제가 죽고, 천순제가 상도에서 즉위.

       대도에서 옹립된 문종이 천순제의 군대를 격파하고 즉위.

1329 문종, 형인 명종에게 양위. 명종 살해되어 다시 문종이 즉위.

1332 문종이 병사하고, 명종의 아들 영종이 즉위. 재위 2개월 만에 사망.

1333 순종이 상도에서 즉위.

1346 이븐 바투타, 대도에 당도.

1351 하남에서 홍건의 난이 발생. 이후 각지에 군웅이 할거.

1352 곽자흥 등이 병사를 일으키다. 주원장이 그 휘하에 들어감.

1353 장사성, 고우를 거점으로 성왕을 칭함.

1356 주원장, 금릉을 거점으로 오국공을 칭함.

1359 진우량, 강릉을 거점으로 한왕을 칭함.

1363 주원장, 진우량을 파양에서 격파하고, 멸망.

       장사성, 오왕을 칭함.

1364 주원장, 자립하여 오왕을 칭함.

1367 장사성, 주원장군에 체포되어 자살. 주원장, 북벌을 시작.

1368 주원장(태조)이 즉위하여 명을 건국(홍무제).

       원의 순제, 대도를 탈출하고, 원 멸망.

1369 회량친왕에게 왜구의 단속을 요구함.

1375 대명보초 발행.

1380 재상 호유용 일파를 모반죄로 처형 - 호유용의 옥.

       중서성을 폐지하고 육부를 황제 직속으로 함.

1381 이갑제를 실시. 부역황책 제작.

1390 이선장 등을 호유용의 옥에 연좌시켜 처형.

1393 남옥이 반역죄로 처형, 기타 많은 인원이 연좌됨 - 남옥의 옥.

1397 육유를 공포.

1398 홍무제 사망. 황태손 즉위(건문제).

1399 연왕 북평(북경)에서 거병 - 정난의 변.

1402 연왕 남경을 공략해 즉위(영락제). 영락제 내각을 편성.

1403 북평을 북경으로 개칭.

1405 정화, 제1차 남해원정(1407년 귀국).

       ≪영락대전≫의 편찬을 명함.

1406 베트남에 출병해 교지포정사를 설치.

1407 정화, 제2차 남해원정(1409년 귀국)

1408 ≪영락대전≫ 완성.

1409 정화, 제3차 남해원정(1411년 귀국).

1410 영락제의 제1차 몽골 친정.

1411 이시하(역실합), 흑룡강 하구에 누르칸 도사를 설치하고 여진족을 진무.

1413 정화, 제4차 남해원정(1415년 귀국).

1414 제2차 몽골 친정.

1415 ≪사서대전≫, ≪오경정의≫ 간행. ≪성리대전≫ 완성.

1417 정화, 제5차 남해원정(1419년 귀국).

1421 정화, 제6차 남해원정(1422년 귀국).

1422 제3차 몽골 친정.

1423 제4차 몽골 친정.

1424 제5차 몽골 친정. 영락제, 원정에서 귀환 도중 유목천에서 사망.

1426 한왕 고후 반란. 선덕제 친정으로 진압.

1431 정화, 제7차 남해원정(1433년 귀국).

1433 강남지역, 전부의 일부를 은납으로 바꿈 - 금화은.

1438 대동에서 마시를 개설, 오이라트와 교역.

1449 토목보의 변 - 오이라트의 에선, 명에 침입하여 정통제를 사로잡음.

       우겸, 정통제의 동생(경태제)를 옹립해 북경을 사수.

1450 정통제 송환.

1457 탈문의 변 발생. 정통제가 복벽(천순제). 우겸 처형.

1464 형양의 난 발생( ~ 1471).

 

1502 ≪대명회전≫ 완성.

1505 정덕제 즉위. 환관 유근, 전권을 휘두름.

1510 안화왕 치번 반란. 유근 살해. 유육·유칠의 난 발생(~1512).

1517 포르투갈인 광주에 내왕.

1519 영왕 신호 반란. 왕수인이 반란 진압.

1521 정덕제 사망. 가정제 즉위. 대례의 논쟁 발생(~ 1524).

1528 왕수인 사망(1472 ~ ) - 양명학.

1533 대동에서 병졸들의 반란 발생.

1542 타타르부의 알탄, 산서 지방을 침공.

1547 절강순무 주환, 절강·복건 지방의 왜구를 토벌.

1550 알탄, 북경을 포위.

1557 호종헌, 왜구의 수령 왕직을 체포해 처형.

       포르투갈인 마카오 거주 허용.

1563 유대유·척계광 등이 복건에서 왜구의 주력을 격멸.

1567 명, 해금정책을 중단. 왜구 진압 거의 종식.

       장거정, 대학사가 됨.

1570 알탄과의 화의가 성립.

1571 알탄을 순의왕으로 봉하고 마시를 개설.

1572 만력제 즉위. 장거정 대학사의 수보가 됨.

       이 때 화중·화남에 일조편법을 보급.

1573 장거정의 개혁 시작.

1578 장거정의 토지장량 시작.

1582 장거정 사망(1525 ~ ). 마테오 리치, 마카오에 도착.

1588 여진(만주)족 누르하치, 건주에서 삼위를 통일.

1592 몽골인 보바이의 반란.

1593 고헌성, 파직되어 귀향. 이후 무석에서 동림서원을 재흥.

1596 이시진, ≪본초강목≫ 간행.

1597 양응룡의 난 발생( ~ 1600).

 

1601 마테오 리치, 북경에 도착. 누르하치 팔기제 창설.

1602 이지, 옥중에서 사망(1527 ~ ).

       마테오 리치, ≪곤여만국전도≫ 간행.

1616 누르하치, 후금을 건국.

1619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이 명군에 대승을 거두고 요동으로 진출.

1622 아담 샬 내항.

1623 환관 위충현, 실권 장악. 이후 동림당을 철저 탄압.

1626 누르하치 사망. 홍타이지 즉위.

1627 위충현 살해. 각지에서 농민반란 발생.

1629 이자성, 반란에 가담.

1633 서광계 사망(1562~ ). ≪농정전서≫·≪숭정역서≫.

1635 홍타이지, 몽골 차하르부를 평정.

1636 후금, 국호를 청으로 바꿈.

1637 송응성, ≪천공개물≫ 간행.

1641 이자성, 낙양을 점령하고, 명의 복왕 살해.

1643 홍타이지 사망. 순치제 즉위.

1644 이자성, 서안을 수도로 국호를 대순으로 정함.

       이자성, 북경을 점령하고 명을 멸망시킴.

       청, 오삼계와 힘을 합쳐 이자성군 격파, 북경 입성.

       남경에 복왕정권 성립.

1645 청, 남경 공략, 복왕정권 멸망. 복건에 당왕정권 성립. 이자성 살해됨.

1646 당왕정권 멸망. 계왕 영력제 옹립.

1650 정성공 아모이(하문)을 근거지로 함.

1657 오삼계, 평서대장군으로서 운남의 영력제를 공격.

1658 정성공, 강남에 진격하여 일시 남경을 포위.

1661 순치제 사망. 강희제 즉위. 영력제 체포되고, 남명정권 소멸.

       정성공, 대만 웅거. 청, 천계령 공포.

1662 정성공 사망(1624 ~ ).

1669 페르비스트(Verbiest), 흠천감정에 임명.

1673 오삼계, 운남에서 거병. 삼번의 난 발생.

1681 오삼계 자살. 반란 평정.

1682 顧炎武 사망(1613 ~ ).

1683 대만 평정, 정씨 세력 소멸.

1688 하르카부, 준가르부 갈단의 침략을 받아 청에 구원 요청.

1689 러시아와 네르친스크조약을 체결.

1690 강희제, 갈단 친정.

1692 왕부지 사망(1619 ~ ).

1695 황종희 사망(1620 ~ ).

1696 강희제, 갈단을 다시 친정. 다음해 청의 외몽골 지배 확정.

 

1706 강희제, 전례를 부인하는 천주교 선교회의 포교 금지.

1711 성세자생인정을 정함,≪패문운부≫ 완성.

1715 카스틸리오네, 북경에 도착.

1716 ≪강희자전≫ 완성.

1718 ≪황여전람도≫ 완성.

1720 청, 준가르부를 추격해 티베트를 지배.

       광주에 일시 공행 결성.

1722 강희제 사망. 옹정제 즉위.

1723 천주교 포교 전면 금지.

1725 ≪고금도서집성≫ 완성.

1727 러시아와 캬흐타조약 체결.

1728 양렴은제 제정. 이 시기 지정은제를 전국적으로 실시.

1732 군기처 설치.

1733 여유량의 저서를 금지하고 관계자 처형 - 문자옥.

1735 옹정제 사망. 건륭제 즉위.

1739 ≪명사≫ 간행.

1740 묘족의 난 발생.

1743 ≪대청일통지≫ 완성. 이후 2차에 걸쳐 증정.

1747 대금천·소금천의 난 발생( - 1749).

1750 티베트의 난 평정.

1755 준가르부 토벌.

1755 대외무역을 광주 하나의 항구로 한정.

       준가르부 다시 출병하여 토벌.

1759 회부를 평정하고 신강을 설치.

1765 미얀마 출병(~1769).

1772 ≪사고전서≫ 편찬 개시. 대진 사망(1723 ~ ).

1781 감숙에서 회교도의 난 발생.

1782 ≪사고전서≫ 완성.

1786 대만 임상문의 난 발생.

1788 베트남 출병( ~1789).

1793 영국사절 매카트니의 방문.

1796 건륭제 퇴위. 가경제 즉위, 백련교의 난 발생( ~1804).

 

1816 영국사절 암허스트 북경 방문.

1825 이 무렵부터 아편밀수에 의해 은유출 시작.

1833 영국 동인도회사의 대중국무역 독점권 폐지.

1838 6월, 황작자·임칙서 등 아편엄금책 상주.

1839 6월, 임측서가 몰수한 아편을 폐기.

10월, 아편전쟁 수행을 영국하원이 결의.

1840 6월, 영국군이 광주를 봉쇄.

1842 8월, 남경조약 조인.

1844 7월, 미국과 망하조약 10월, 프랑스와 황?조약 체결.

1851 1월, 배상제회, 금전에서 봉기해 태평천국이라 칭함.

1853 3월, 태평천국군, 남경을 점령하고 천경으로 개칭.

1856 10월, 애로우호사건 발생.

1858 5월, 러와 아이훈조약 체결. 6월, 영·미·프와 천진조약 체결.

1860 5월, 미국인 워드 등 태평천국군을 공격.

       10월, 영불연합군 북경 점령, 북경조약 체결.

             증국번, 안경군계소 건설. 양무운동 시작.

1864 7월, 천경 함락, 태평천국 멸망.

1866 3월, 신강 회민군 이리 점령.

1872 12월, 윤선초상국 설립.

1875 2월, 마가리사건 발생. 6월, 북양·남양함대 건설 시도.

1877 4월, 곽숭도가 주영공사가 되어 재외공관 시작.

1881 2월, 러시아와 이리조약 체결.

1882 8월, 조선으로 청·일 양국 출병. 7월, 조선에서 임오군란 발생.

1884 8월, 청불전쟁 시작.

1885 6월, 프랑스와 천진조약 체결.

1886 7월 영국과 버마조약 체결.

1888 10월, 강유위 제1차 상서.

1893 10월, 한양제철소 완성.

1894 8월, 청일전쟁 개시.

11월, 손문, 하와이에서 흥중회 결성.

1895 4월, 시모노세키조약 조인. 삼국 간섭.

       5월, 강유위 등 공차상서.

       6월, 일본군 대북 점령, 대만총독부 설치.

1898 3월, 러시아에게 여순·대련을, 독일에게 교주만을, 프랑스에게 광주만을 조차.

       6월, 광서제, 변법유신 선언.

       7월, 영국, 위해위 조차. 경사대학당 설립.

       9월, 무술정변 발생, 서태후가 탈권.

1899 4월, 산동성에서 의화단 활동. 9월, 미국 국무장관 존 헤이 문호개방 선언.

 

1900 6월, 의화단이 북경 열강 공사관 포위. 청조가 열강에 선전포고.

1901 9월, 신축조약 체결.

1902 8월, 학당장정 발포. 1월, 영일동맹 성립.

1903 동삼성에서 러시아군 철수 거부.

1904 2월 러일전쟁 발발. 중국은 중립 선언.

1905 5월, 화교배척에 항의하여, 상해총상회 등이 미국상품 배척운동 결의.

       8월, 동경에서 중국동맹회 결성. 9월 과거제 폐지.

1906 4월, 경한철도 개통. 6월, 일본이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설립.

1907 이 무렵 혁명파의 무장봉기가 빈발.

1908 각 성에서 의회개설운동 일어남.

1909 10월, 각 성에 자의국 개설.

1911 5월, 청조가 천한 등 간선철도 국유화 반포.

      10월, 무한에서 신군이 봉기해 신해혁명으로 발전.

1912 1월, 중화민국 남경임시정부 성립.

       4월, 원세개 북경에서 임시대총통에 취임.

1913 3월, 송교인이 상해에서 암살. 4월, 원세개, 선후차관 조인을 강행.

       9월, 제2혁명 패배, 손문 등은 일본으로 망명.

1914 7월, 손문, 동경에서 중화혁명당 결성.

       8월, 일본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 11월, 일본군이 청도 점령.

1915 1월, 일본이 중국에 대해 21개조 요구.

       9월, ≪청년잡지≫(후일의 ≪신청년≫) 창간.

      12월, 원세개가 황제추대를 수락. 반 원세개의 제3혁명 발발.

1916 6월, 원세개 사망. 군벌정치시대로 진입.

      12월, 채원배, 북경대학교장에 취임.

1917 국민정부, 대독일 선전포고.

       6월, 손문 등의 광동군정부 성립.

1918 6월, 노신, ≪광인일기≫ 발표.

1919 5월, 5·4운동 시작.

1920 7월, 안직전쟁에서 패해 단기서 하야.

1921 7월, 중국공산당 성립. 이 해에 상해에 방적공장 창업 활발.

1923 2월, 경한철도 파업, 탄압(2·7참안).

1924 1월, 광주에서 국민당 제1회 전국대표대회, 제1차 국공합작 정식 시작.

1925 3월, 손문이 북경에서 병사. 5·30사건 발생.

1926 7월, 북벌 개시.

1927 4월, 장개석, 상해에서 반공 쿠데타.

       8월, 8·7회의. 공산당 무장폭동노선으로 전환.

1928 6월, 장작림, 관동군에 의해 폭사. 7월, 국민정부, 불평등조약 철폐를 선언.

      12월, 동북지방 군벌 장학량이 국민정부에 귀순.

1930 4월, 중원대전 시작. 12월, 장개석이 소비에트구 포위공격 개시.

1931 9월, 9·18 만주사변 발생. 11월, 서금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 성립.

1932 1월, 상해사변 발생. 3월, 만주국 건국 선언.

1934 10월, 대장정 시작.

1935 1월, 준의회의 개최. 8월, 8·18 선언 발표. 11월, 국민정부 폐제개혁.

1936 12월, 서안사건 발생.

1937 7월 7일, 노구교 사건 발생, 中日전쟁 시작. 9월, 제2차 국공합작 시작

       11월, 일본군 남경대학살.

1940 1월, 모택동, 발표.

1941 12월, 국민정부, 일본·독일·이탈리아에 선전포고.

1942 2월, 연안 정풍운동 시작. 5월, 일본군, 팔로군 근거지에 삼광작전 전개.

1943 11월, 미국·영국·중국 카이로 회담.

1945 8월 15일, 일본 무조건 항복, 장개석과 모택동, 중경회담.

      12월, 민주연합정부를 요구하는 학생을 탄압.

1946 1월, 중경에서 정치협상회의 개시.

1947 2월, 대만에서 반정부폭동. 10월, 중공, 토지법대강 공포.

1948 삼대전투에서 인민해방군 승리.

1949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선언. 12월, 장개석, 대만으로 이주.

1950 2월, 중소우호동맹 상호원조조약 조인. 6월 한국전쟁 발발.

1951 12월, 인민해방군, 티베트 라사에 진주. 삼반운동 시작.

1953 제1차 5개년계획 개시.

1954 5월, 인도에서 주은래와 네루가 평화5원칙 발표.

       9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공포.

1955 4월,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회의 개회. 바르샤바조약 조인.

       5월, 모택동, 보고.

1956 6월, 육정일, 제창.

       9월, 중공 제8회 대회 개최.

1957 반우파투쟁 전개.

1958 11월, 중공8기 6전대회. 이후 인민공사가 급격히 형성.

1959 8월, 노산회의. 팽덕회가 '대약진'을 비판하여 국방장관에서 파면.

       이 해부터 다음 해까지 대규모의 기아 발생.

1960 11월, 인민공사의 삼급소유제로의 이행 결정.

       이 해에 중소대립이 공공연히 노출.

1961 1월, 중공 중앙 경제조정정책 결정.

1962 1월, 유소기, '대약진' 비판.

1964 10월, 중국 원폭실험.

1965 11월, 요문원, ≪해서파관≫ 비판. 문화대혁명 시작.

1966 8월, 천안문 광장에서 홍위병 100만명 집회.

1968 10월, 유소기 영구제명 처분.

1969 3월, 우수리강에서 중·소 양국군 충돌.

1971 9월, 임표 사건. 10월, 중국, 유엔대표권 획득.

1972 2월, 미국대통령 닉슨, 중국 방문.

       9월, 일본 수상, 다나카 중국 방문하고 중일국교 수립.

1973 '비림비공'운동 고조.

1975 4월, 장개석 사망.

1976 1월, 주은래 사망.

       4월, 천안문 광장에서 민중탄압(4·5 사건). 9월 모택동 사망.

10월, 사인방 체포. 문화대혁명 종결.

1977 7월, 등소평 복귀. 8월, 화국봉 취임. 12월, 통일대학 입시 재개.

1978 12월, 중공 11기 3중전회. 경제개방정책으로.

1979 2월, 베트남과 전쟁 발발.

       3월, 대자보·데모 규제를 통고하여 '북경의 봄' 마감.

       7월, 경제특구 설치.

1980 2월, 중공 11기 5중전회. 유소기의 명예회복, 호요방 총서기 선출.

1981 6월, 채택.

1982 9월, 호요방 취임.

1984 12월, 중·영 홍콩 공동성명. 1997년에 반환 결정.

1985 6월, 인민공사, 정식으로 해체되고 향정부 성립.

1986 9월, 부르조아민주화 비판. 12월 학생운동 고양.

1987 1월, 호요방 사임. 조자양 취임.

      10월, 중공 제13회 대회가 열려 '초급단계의 사회주의'라 규정.

1988 1월, 장경국 사망. 대만 출신의 이등휘 총통 승계.

1989 5월, 소련의 고르바초프 중국 방문.

       6월 4일, 천안문사건 발생. 민주화운동 탄압. 조자양 사임. 장쩌민(江澤民)취임.

1990 11월, 베를린장벽 붕괴.

1991 11월, 베트남 관계 정상화.

1992 1월, 등소평이 화남의 경제특구와 상해 등을 시찰. 가 공표되어 시장경제 가속화.

       8월 24일, 한중 수교.

       9월, 북경아시안게임 개최

       10월 12일, 중공 제14회 당대회에서 '사회주의시장경제'의 확립을 도모.

1993 9월, 민주화운동가 위경생 등 석방.

1997 1월 17일, 등소평 사망.

       7월 1일, 홍콩 반환.

1999년 12월 20일 : 마카오 반환, 마카오 특별행정구로 됨

 

2000년 3월 18일 : 대만, 진수편(陳水扁)은 제10대 중화민국 총통에, 여수련(呂秀蓮)은

          부총통에 각각 당선됨(5월20일 취임), 중화민국 헌정사상 최초

          평화적 정권교체

2002년 11월 14일 : 중공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11.7~14) 폐막, 장쩌민 국가주석,

          주용기 총리, 이붕 전인대 상무위원장 중앙위원회 위원 퇴진

 

2003년 3월 15일, 제10기 전인대 1차회의, 장쩌민 국가주석직 퇴진(중앙군사위원 주석직

          유지), 호금도 국가주석 선출, 오방국은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증경홍은 국가부주석에 선출

2004년 5월20일 : 대만, 진수편 제11대 중화민국 총통에 취임

2004년~2013년 : 후진타오 주석

2013년~ : 시진핑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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