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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고 이런 숙소에-" 이주노동자 주거권 외면의 비극

바람거사 2021. 1. 2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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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 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설거지 거리와 생활쓰레기들이 뒤섞여 있는 한 이주노동자 숙소 . 검은 차양막이 쳐진 비닐하우스 안쪽에숙소가 있다.           포천=서재훈 기자

 

지난 20일 오후 경기 포천시.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65)대표와 함께 시설채소 농장들이 밀집한 OO면을 찾았다. 꼭 한달 전 이곳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안 가건물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포천 지역 농장주들의 외부인 경계가 부쩍 심해졌다고 한다.

 

얼갈이, 열무, 시금치 등 대도시에 공급할 채소들을 재배하는 농로 양편의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을 붙일 새도 없이 농장주로 보이는 이가 뒤를 바짝 쫓아왔다. 김 대표는 “이 지역 농장주들이 폐쇄회로(CC) TV 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낯선 이가 나타나면 바로 연락을 취한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간이화장실 설치 비용 아까워 ‘뒷간’ 만든 숙소도

 

조심스럽게 돌아본 이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사망사건이 났는데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숙소로 쓰이는 컨테이너ㆍ조립식 패널건물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비닐하우스 내부에 있는 것도 외부에 가건물로 세워진 것도 있었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한달 15~20만원 정도 숙박비를 내가며 거주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숙소마다 위성 TV 안테나, 에어컨 등은 설치돼 있었지만 상당수 숙소는 겉으로만 봐도 환기, 단열, 채광, 위생상태 등이 불량했다.

 

태국인 노동자가 묵고 있는 한 숙소는 갑자기 쥐들이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비닐하우스 안쪽에 블록으로 만들어진 방 2개짜리 가건물인데 창문은 한 개 나있었지만 차양막으로 가려져 바깥을 내다볼 수 없었다. 실내에 주방과 샤워장은 있었지만 앞서 며칠간 영하 10도 아래까지 떨어진 혹한으로 수도가 동파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설거지거리가 주방이 아닌 비닐하우스 바깥 양지 바른 곳에 생활쓰레기들과 함께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김 대표는 “이 숙소에는 보일러가 없어 전기장판, 온풍기를 쓰는데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은 겨울이면 고생을 한다”며 “겨울엔 바람이 들고 여름이면 비가 새는 돼지우리 같은 곳에 사람이 살도록해선 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곳은 한 번 당국으로부터 시정조치명령을 받은 곳이고 앞서 두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숙소가 지저분하다며 떠나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숙소로 쓰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태국노동자는 잠깐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왔다가 기자 일행을 보자 겁을 먹은듯 숙소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김 대표는 “올해 취업 첫번째 기한(4 10개월)을 다 채우는 노동자인데 이후 재입국이 가능한 ‘성실 근로자’ 자격 획득 여부가 오로지 농장주 손에 달려 있다”며 “그래서 이런 숙소에서도 군말 없이 지내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김 대표는 최근 자신이 둘러본 한 경기 북부 지역 한 채소재배 농장에는 20~30만원짜리 간이화장실도 설치하기 싫어 검은 차양막과 비닐로 엉성하게 엮어 놓은 ‘뒷간’을 길가에 설치해 놓은 숙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여성노동자들 숙소인데 기숙사비로 15만원 받는다고 한다.

 

물론 인근 한 대형농장의 숙소를 둘러본 결과 비록 가건물이긴 하지만 기숙사로 손색이 없는 곳도 있었다. 내부에 고급스런 타일이 깔린 실내 샤워장과 조리용 인덕션이 설치돼 있고 개인생활이 철저히 보장됐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이고 정부 통계에서도 농ㆍ어촌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집이라고 부를만한 곳에서 살고 있지 않다. 정부가 지난해 9~11월 농ㆍ어촌 496개 사업장, 3,850명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 중 69.6%가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내 가설건축물에 살고 있었다. () 속헹씨처럼 비닐하우스 내부 가설물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도 12.7%에 달했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화장실조차 없는 곳도 많았고 화재도 자주 발생했는데 그나마 인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해서 고용노동부가 기숙사 최저기준 리스트라도 만들었다”며 “하지만 이 리스트 기준을 충족한다 해도 고용허가제에 따른 이주노동자 배정을 받는데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업종별 기숙사 유형

이주노동자 주거권 보장 정부 지원 뒤따라야

 

정부는 속헹씨 사망을 계기로 지난 6일 이주노동자 주거권 대책을 발표하고 농장주가 비닐하우스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이주노동자의 신규, 재고용, 재입국특례시 고용을 불허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 농업경영자 양측 모두 여기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지원단체 측은 열악한 숙소에 살고 있는 기존 노동자들의 주거권을 개선할 대책이 없다는 점, 비닐하우스 ‘밖’ 가설건물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실제로 정부 실태조사에서 농축산업의 비닐하우스 외부 가설건축물은 61.2%에 달했다. 지원단체들은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활용하는 것을 아예 금지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건축법상 가설건축물은 임시사무실ㆍ임시숙소로만 사용돼야 하는데 최근 국토교통부에 질의했더니 이주노동자 숙소처럼 주거용도일 경우 가설건축물이 아닌, 기준에 적합한 건축물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회신이 왔다”며 “근로기준법의 기숙사 설치조항에 건축법상 적합한 건축물만 가능하도록 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농업경영자들은 이들의 숙소가 가건물이라 해도 열악한 숙소는 극히 일부라는 점,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을 나가 당장 원룸 등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이 조치의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이번 대책 철회 요구 글을 올린 경남 밀양시의 주보정(37)씨는 “외국인 2명을 고용해 컨테이너 숙소에서 묵게 하는데 수세식 화장실, 냉온수기, 에어컨 설치는 물론이고 밥솥까지 다 넣어줬다”면서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으며 일손 부족으로 이주노동자의 협상력이 높아져 오히려 고용주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요즘의 농촌 상황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성산(58) 경기 포천시 시설채소연합회 홍보국장은 “정부가 앞으로 아파트, 빌라, 원룸에 이주노동자들을 묵도록 하라는 것 같다”며 “출퇴근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할지 문제도 복잡하고 노동자들도 숙소비용 증가로 이런 조치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물재배업의 경우 전체 고용자 중 최대 47%(시설 특용약용)가 외국인, 농축산업의 경우 최대 57%(젖소 암컷, 이상 상용근로자 기준,2015)가 외국인이다. 농축산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대략 22,000(미등록 노동자 제외)으로 추산된다.

 

이번 사태는 이주노동자들을 경제적 수단으로만 보고 주거권, 건강권 등 기본적 인권문제를 외면했던 정부 정책의 실패의 결과라는 점에서 정부의 전향적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영섭 민주노총 미조직전략국장은 “수익이 많은 농장주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농장주들은 이번 조치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면서 “농촌 빈집 개량, 기존 숙소 리모델링 사업 등에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엄진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개선을 위한 정부의 방향은 맞다"면서도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최소 주거기준을 만들 때 농업경영인,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정책당국 등이 참여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농림부는 올해 농어촌의 빈집을 외국인여성을 위한 주거시설로 리모델링할 경우 1곳당 1,500만원을 지원하는 시범사업 등을 시작했는데 올해 지원대상은 10곳이다.

 

비닐하우스 내부에 마련된 한 이주노동자 숙소- 서재훈 기자

                              

숙소 열악한 경우 사업장 옮길 수 있게 해야

 

속헹씨 사건이 열악한 기숙사 사정 때문에 발생한 만큼 기숙사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횟수가 3번으로 제한돼 있고, 특히 한번이라도 자신의 귀책사유로 옮길 경우엔 재입국이 불가능하다.

 

고용부의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에 따르면 비닐하우스가 숙소로 제공돼 당국에서 개선명령을 받았으나 사업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사업장 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엔 사업장 변경 횟수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용부에 따르면 2015~2018년 이주노동자가 귀책사유 없이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가 매해 8,000~9,000건이 되지만 그 중 기숙사 상태가 나빠 변경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속헹씨 사건 이후 고용부는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사업장 옮기기를 희망할 경우 이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게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전언이다.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발을 묶는 ‘족쇄’로 오랫동안 인권단체들로부터 비판 받아온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을 현장 감독관들이 여전히 경직되게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윤구 경기대 법학과 교수는 “고용허가제 등을 통해 최소한 합법적으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에겐 일부 국민들의 정서적인 반대가 있다해도 국제인권기준에 맞는 대우는 필수적”이라며 “적어도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제한을 풀어주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천 이주노동자 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권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포천서재훈 기자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