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mynews -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미국이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이유
"모든 아마존 직원들과 아마존 고객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비용을 여러분들이 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자신의 우주탐사선 시험 비행을 마치고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이 천문학적인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이들은 129만 8000여 명의 아마존 직원들과 전 세계 1억 5천만 이용자들이었다.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열렸다며 공중파에서 생중계까지 해준 억만장자의 '우주 도전'에 여론은 의외로 냉랭하다. 팬데믹이란 인류의 재앙 속에 수백 배 불어난 빅테크(big tech)들의 자산 규모와 간호사보다 낮은 그들의 실질 세율이 다시금 재조명되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보통 사람들을 대신해 그 불편함을 말했다.
"제프 베이조스의 레크리에이션 우주여행 비용은 분당 1억 4000만 원입니다. 그런데 우린 여전히 억만장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쟁 중이네요."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작가 브래드 스톤이 아마존에 관해 쓴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The Everything Store)란 책엔 쿼드시(Quidsi)라는 육아용품 전문 스타트업이 어떻게 문을 닫게 됐는지 나온다.
이 신생 회사가 아마존 육아부분을 위협하며 시장을 확장하자 베이조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며 회사를 팔 것을 종용한다. 제안을 거부하자 아마존은 쿼드시 사이트와 같은 제품인 기저귀 가격을 30%까지 할인해 라이벌의 입지를 좁힌다. 아마존의 헐값정책만큼 쿼드시의 매출은 줄었고 투자자들은 더 이상의 투자를 중단했다.
그 사이 아마존은 '아마존 맘'이라는 아마존 내 육아전문 섹션을 열어 엄청난 할인 혜택과 무료 배송의 공격적 마케팅을 벌인다. 결국 쿼드시 이사회는 아마존에 회사를 매각한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은 약 1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는데, 경쟁업체 인수 후엔 아마존맘 서비스를 닫았다. 그리고 인수한 쿼드시 사이트도 몇년 후 폐쇄된다. 시장을 블랙홀 아마존이 독점하게 된 것이다.
▲ 아마존 등장으로 100년 넘은 로컬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한 잡지 <복스>(Vox)는 애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애플은 개발자들로부터 자사 앱스토어 정책에 대한 불만을 계속 듣는다. 그러나 개발자들은 애플과 같은 시장 지배적인 대형 플랫폼에 참여하는 것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미국 정보기술산업에서 가장 크고 지배적인 5개 회사를 빅테크라 일컫는다. 7월 29일자 <뉴욕타임스>는 '지구보다 더 커진 빅테크'라는 칼럼에서 이들이 지금 얼마나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는지 나열한다.
- 애플의 지난 3개월 이익은 팬데믹 이전 미국 5대 항공사 연간 이익의 두 배
- 구글의 4, 5, 6월 광고 수익은 모든 미국인들의 한 달 자동차 기름값
- 마이크로소프트 자회사 중 하나인 링크드인(LinkedIn) 연간 매출은 팬데믹 수혜기업인 줌(Zoom) 연간 매출의 4배.
- 지난 1년간 아마존의 전자 상거래 수익은 1090억 달러 증가했는데 이는 월마트가 9년 만에 달성한 수치
7월 말 이들 5개 회사가 발표한 2분기 실적도 천문학적이다. 이들 빅5 기업의 총매출은 3316억 달러,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5% 증가한 825억 달러다. 그중 최고인 애플은 241억 달러의 영업 이익을 냈고, 구글은 194억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섰다. 엄청난 이익에 표정 관리중인 이들은 3분기엔 회의적일 것이라 전망한다. 반도체 칩 부족과 코로나 수혜 등이 줄어들며 성장세가 주춤해 질 것이라며 말이다.
민주주의 위협하는 빅테크
"이제 자율 규제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자율 규제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상원의 초당적인 찬성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 위원장이 된 리나 칸(Lina Khan)의 청문회장에서 소위원장이 말했다. 우리의 공정거래위원장 격인 리나 칸은 '반독점 선구자'란 별명처럼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미국의 반독점법을 재해석해 새로운 형식인 빅테크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견제하는 법에 관한 논문으로 유명하다.
'망 중립성'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반 독점법 전문가 팀 우 교수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자문으로 영입한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30대의 리나 칸을 지명한 후, 지난달 말 법무부 반독점국장으로 조너선 캔터(Jonathan Kanter)를 임명했다. 연방거래위원회 출신으로 구글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서 구글을 저격하던 이다.
칸, 캔터, 우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는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져 가는 빅테크 기업들을 규제해야 한다는 미국 사회의 강한 의지를 표현한다. 이로써 연방정부와 테크업체 간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독점 금지와 시장 경쟁 같은 문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이를 안이하게 생각했던 과거 정부와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의회도 입법으로 규제에 힘을 싣고 있다. 6월 24일 하원 법사위는 이들 빅테크를 겨냥한 5개의 독점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빅테크 기업들의 잠재적 경쟁사 인수를 금지하는 내용과 플랫폼 사용자의 개인정보 사용에 관한 내용 등이다. '플랫폼 독점 종결법'의 경우 아마존과 구글 같은 플랫폼 업체의 특정 사업을 막을 수 있다. 이 밖에 자사 서비스 우선 노출을 막는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과 플랫폼 경쟁 및 기회법, 호환성 및 경쟁 증진법, 합병 수수료 현대화법이 모두 상임위를 통과한 상태다.
법사위 반독점 소위원회 의장은 민주당이지만 공화당과의 공조를 강화했다. 덕분에 법안은 초당적인 협조로 무사히 통과됐다. 그러나 테크 기업들의 조직적 반발도 만만치 않다.
"윤리 기준을 강화해야 할 당신들이 오히려 규제 기관을 괴롭히고 공정위를 해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보입니다. 당장 중단하십시오."
8월 4일 엘리자베스 워런을 포함한 네 명의 민주당 상원의원은 아마존과 페이스북 CEO에게 서한을 보냈다. 6월 초당적인 상원 표결로 인준된 FTC 위원장에 대한 빅테크 회사들의 압박을 중단하라는 경고 편지다. 아마존과 페이스북은 칸 FTC 위원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제출한 상태다.
빅테크 기업들에겐 저승사자와 같은 칸 위원장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상원의원들이 칸 위원장 엄호에 직접 나선 것이다. 칸 위원장의 전문성과 연방 독점 금지법에 대한 해석이 두려운 거냐고 콕 집으면서 말이다.
다음 100년의 미국
"중국과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하는 빅테크 기업을 옭아매는 게 과연 미국에 옳은가?"
빅테크 규제에 대한 반론으로 항상 나오는 논리다. 많은 미국인의 대답은 '예스'다.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한 보스턴 티파티 사건은 차를 독점 공급하던 영국에 대한 항의였다. 미국 헌법에 반독점 옹호 조항이 생긴 기원이다.
바이든 정부 자문인 팀 우는 저서 <빅니스, 거대 기업에 지배당하는 세계>(The Curse of Bigness)에서 독일 나치 정권과 일본 군국주의 배경에 독점 기업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브라질의 트럼프라 불리는 현 보우소나루 정권 등장에도 독점 기업의 역할이 있던 것에 주목했다. 브라질 은행의 적극적 대출로 전 세계 육가공업체들을 사들인 브라질 JBS사다. 지난 6월 해킹으로도 큰 곤란을 겪었던 이 세계 최대 육가공업체는 비윤리적 농장 운영 등이 문제가 돼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육류 소비가 줄어들면서 브라질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중이다. 국가 독점 통신 기업 NTT를 보호하다 인터넷 혁명 과정에서 퇴출당한 일본의 사례와 미국과 유럽 시장을 독점하는 안경 브랜드 룩소티카의 5000% 마진 사례들도 나온다.
이에 반해 반독점법이 적극적으로 시행됐던 미국에서는 아이비엠(IBM)과 인텔, MS, 엡손(Epson) 등이 성장할 수 있었고, 구글과 애플이 출현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MS 끼워팔기에 제동을 걸었던 클린턴 정부의 규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지난 100여 년간 미국 경제를 얘기하며 기억해야 할 사람으로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라는 판사를 얘기한다. 그는 당시 정유 산업을 독점하던 스탠더드오일을 여러 개로 쪼갰고 JP 모건의 미국 철도 통합과 맞서 싸웠다. 그는 국가의 역할을 자유방임도 사회주의·파시스트도 아닌 '정원사'라 했다.
그 정원사로서 팀 우와 리나 칸, 조너선 캔터가 지금 거대 공룡 기업들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의 미국은 이들 싸움의 결과일 것이다.
"현재 규제되지 않은 기술 독점회사들이 우리 경제에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승자와 패자를 선택하고, 중소기업을 파괴하고, 소비자에게 가격을 올리고, 서민들을 실직자로 만드는 독특한 지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의제는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고, 최고 부자들과 가장 강력한 기술 독점 기업들이 공정한 규정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빅테크를 겨냥한 5개의 법안들을 주도한 데이비드 시실리니(David Cicilline) 반독점소위 위원장의 성명이다. 미국의 경제가 세계 최고였던 이유, 여기에 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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