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을 구수하게 불렀던 남상규는 1938. 10. 15. 생인데, 두 달 전인 2022. 7. 29. 에 향년 84세로 하세했다는 비보를 얼마 전에 접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추풍령과 권 하사]
1974년 초가을-. 내가 대구 공군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였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였다. 영내자들은 한편에서 수군거리고, 김 중사와 김 상사는 서로 맞담배를 피우며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한쪽에서 서성이던 선임 하사관인 이 상사를 잠시 불러서 얘길 들었다.
"아, 글쎄, 우리 분석실의 권 하사가 주말에 사고로 죽었다는군요."
마침, 정비 과장실에 갔던 분석실 실장인 조 대위가 침울하게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모두 들 가까이 모이라고 하였다.
"여러분도 이미 알다시피 우리실 권 하사가 사고로 사망하였다는 비보가 오늘 아침에 전달되었는데, 모두 자세한 경위가 밝혀질 때까지 말조심하기 바란다."
잠시 후에 실장은 나를 부르더니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김 중위, 오늘 중으로 말이야. 김 상사하고 같이 권 하사의 본가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게-."
나는 개인신상카드를 살펴보니, 그의 본가는 안동에서 좀 더 들어간 귀미면이라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가족관계를 보니, 권 하사는 홀어머니 슬하에 장남으로 돼 있었다. 순간 이거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둘러서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안동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김 상사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놈아는 말이죠. 놀기 좋아하고 게다가 술을 억수로 좋아한 게 탈이었습니더. 그러니 동기생들은 중사가 다 됐는데 진급도 누락이 되어서, 영내 선임으로 있으니, 일과 끝나면 내무반에서 애맨 졸다구들만 후려잡고 말입니더. 그라니, 평이 억수로 안 좋았다고 합디다."
권 하사는 토요일 오후에 외출을 나갔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도 안 가고, 대구시내 자갈마당 같은 색주가로 가는 대신에 엉뚱하게 여럿이 대전까지 원정 갔다는 거였다. 모두들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부산행 야간열차를 탔다는데, 동대구역에 가까워지면서 그가 보이지 않자, 같이 갔던 전우들이 다른 칸이며 화장실까지 다 뒤졌는데도 그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권 하사는 다음 날 일요일 저녁때가 되어 귀대해야 하는 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일요일 아침에 공군 하사관 복장을 한 군인의 처참하게 망가진 시신이 추풍령 근처 철길 옆에서 발견되어 신고가 들어왔다는 거였다. 추풍령은 충청북도에 있기에 대구기지에 연락이 안 되고 대전 기지로 일단 시신이 이송되어 신원 조예를 해보니, 대구기지 소속의 권 하사로 밝혀져 일요일 한밤중에 대구기지 병원 영안실로 다시 옮겨졌다고 하였다.
우리는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당시 안동군 소재지의 외곽에 있는 귀미면 면사무소를 먼저 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권 하사의 홀어머니한테 이 비보를 전해주면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에 간접적인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면사무소에 들어서니, 방위병 두 명이 식사하고 있다가 기겁을 하고 일어서서, 부동자세를 하더니 밥알이 튀어나갈 정도로 '필승'을 외쳐 댔다.
나는 권 하사의 주민등록부를 뒤지면서, 그곳에서 멀리 않은 곳에 그의 작은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얼마 후에 그 집 대문으로 표정이 별로 밝지 않은 두 군인이 들어서니, 식구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모두가 안방으로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나는 그의 작은 아버지한테 전말을 들려줬다. 작은아버지는 놀란 표정에 심각한 얼굴을 하면서, 권 하사가 고등학교 때나 군에 들어가서도 놀기 좋아하고 술까지 즐기다 보니,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내어서 아예 내놓은 조카였다고 부언하였다.
나는 권하사 노모한테 이 비보를 전해주면 또 한 사람이 어찌 될까 우려가 되어, 작은아버지가, 내일 아침이라도 적절하게 알려드리게 하고 우리는 일단 본가에 들러서 노모를 만나보겠다며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개울을 건너고,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그리고 감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이 돌담 곁으로 빼곡히 들어선 아담한 동네로 들어섰고, 두 어차례 물어서 깔끔하게 쓸어놓은 마당이 보이는 열린 싸리문에 들어섰다. 마침 쇠죽을 끓이는지, 외양간 옆에서 연기와 수증기가 꾸역꾸역 새어 나고 있었다. 인기척을 듣고서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초로의 여인네가 허리를 펴면서 나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그녀의 피곤한 얼굴은 금세 어두워지는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권 하사 어머님 됩니까?"
"네, 그렇소만-. 근데, 부대에서 오셨습니껴? 그 애가 무슨 일이라도 또 저질렀는기요?"
"아, 아녜요-. 권 하사가 부대에서 근무 중에 좀 다쳐서 기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니, 얼마나 많이 다쳤기에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오셨응기요?"
"아, 아닙니다. 어머님께서 혼자서 부대로 오시기가 어려우시니, 안동에 있는 작은 아버지한테 연락하셔서 같이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거길 먼저 들러서 자세한 얘긴 이미 드렸습니다."
"아이고, 정말 별일 아니지예? 그놈이 하도 별종이라 항시 불안합니더-."
그리곤 얼마 후에 식사라도 대접하겠다는 간절한 청을 물리치고, 어둡기 전에 부대에 들어가야 한다며 무거운 발길을 옮기면서 뒤를 여러 차례 돌아봤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무렵, 그 한적한 동네의 이곳저곳에서 저녁을 짓는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겨운 산골마을이 그림같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내일이면 알게 될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감내해야 할 권 하사의 모친이 너무 안 되게 보여 나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삼손과 딜라일라'와 "한니발"에 나왔던 '빅터 머추어' 같이 이국적으로 잘생긴 권 하사는 평소 부대 회식 때도 여전히 노랠 잘 불렀다. 지난 연말 회식 때 술이 거나해지면서, '김 중위님, 김 중위님, 노래 한 곡조 뽑아 보시소-.' 하면서 짓궂게 엉기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너무도 우연하게도 그는 남상규가 불렀던 '추풍령'을 그의 18번으로 즐겨 불렀는데, 그런 그가 어찌 되어서 추풍령 근처에서 추락하였는지 그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술이 거나하게 취한 그는 화장실에 자주 갔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에 갔다가 누가 안에 있으니까, 좌우로 유난히 흔들리는 승강장에 서서 소변을 보다가 그만 추락한 게 아닌가 생각해봤다. 하필 그 추풍령 고개에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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