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맞은 시카고
1/12인가? 이곳 시카고는 3인치 정도로 눈을 내리게하고 지나간 습한 구름띠가 보스톤이나 뉴욕 근처에 이르러
엄청난 폭설을 퍼부었다. 그 땐 그만하기 참 다행이다고 생각했지만, 언제 우리도 당할 지 모르니 내심 불안하였다.
그런데, 1/31 밤 늦게 부터 폭설주의보가 내려졌는데, 2/1(일) 아침 6시반쯤 일어나보니 이미 4인치 정도 눈이 내렸다.
떡가루 뿌리는 거 같이 쉬지않고 내리는 눈이 왼종일 내린다고 하였다. 모친 이동용 장애인 밴으로 제설기를
싣고 가야하는데, 차 바닥이 매우 낮아서 눈이 더 쌓이면 움직일 수가 없어서, 먼저 우리집 진입로를 제설기로
대충 치우고, 모친집에 주야간 간병인들이 7시 무렵에 업무 교대가 있어서 모친집으로 서둘러갔다.
일요일이라서 타운의 제설 차량들이 별로 다니지 않은 거 같아도, 샛길이나 큰 길은 그런대로 치워져
있어서 차로 5분 거리인 무사히 모친집에 갈 수 있었다. 30여분동안 치우고서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와서
모친집 보다 2배 반이 긴 진입로를 한1시간도 넘게 치웠지만, 눈은 시간당 2인치 이상 계속해서 내렸다.
아침 8시20분쯤 뒷뜰 페디오 테이블위에 꽂아 놓은 자의 눈끔이 5인치가 넘어갔다.
그리고 12시반에는 22.5cm(근 9인치)가 내렸다.
오후 3시반쯤에는 12인치 스케일이 1인치 정도만 남고 묻혀버렸다.
오후 4시반쯤 오전에 치운 거 보다 더 많이 왔기에 우리집 진입로를 먼저 치우는데, 눈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리고 저녁 7시에
근무교대를 하는 간병인들이 오가는 진입로를 치우려고 우리집을 나서서 집 앞길로 들어서는데, 1 미터도 못가서 제설기를 실은
밴이 헛바퀴질을 하고 말았다. 후진을 하여 겨우 우리집 진입로 들어왔고, 대신에 4륜구동 SUV차로 제설기없이 눈가래만 싣고서
모친집으로 갔다. 차고앞은 바람에 날려 온 눈이 무릎을 넘었다. 1시간 반도 넘게 차가 들락거릴 정도만 치우는데, 힘이 다 빠져버렸다.
그런데, 7시가 넘어서 야간근무를 하는 오 여사한테 전화가 왔다. 큰 길에서 모친집으로 들어 오는 길 목에서 차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서 큰 일이라 하였다. 전화를 받으면서 그 쪽을 쳐다보니, 아마 20분도 넘게 몸부림 쳤다던 그녀의 차가 보였다.
퇴근하려던 주간 간병인보고, 집앞은 치웠지만, 큰 길이고 어디고 제대로 치워지지 않아서 승용차들이 곳곳에 서있다고 하며,
오늘 저녁에는 여기서 주무시고 아침에 가시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고, 저기 오다가 빠진 오 여사를구출하러 간다고 하였다.
30분에 걸쳐서 수 없이 밀고 넘어지고 뒤 따라 오던 동네 남정네들 도움을 얻어서 겨우 모친집 진입로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집에 돌아와보니 8시반이 넘었다. 뒷뜰에 있는 12인치 스케일이 아예 묻혀 버렸다. 돌풍까지 불어서 어지러히 떡가루
같은 눈이 사정없이 날렸다. 오늘 저녁 밤 12까지 눈은 계속해서 온다고 하였는데, 맘이 초조하다. 시내 아파트의 입구를 치우러
갈 생각은 못하였다. 그래서 작년부터 한인 입주자한테 렌트비를 삼동에 일부를 공제해주고 대충이라도 치워달라고 부탁하였다.
물론 소금이며 눈가래를 아파트 앞문과 뒷문쪽에 준비해뒀지만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내가 가서 다시 깔끔하게 치우고 소금도
많이 뿌려놨었다. 이번에도 그리 할 수 밖에 없을 일이다. 또 폭설을 당하고 보니, '오탁번의 폭설'이 생각나서 비스게 웃었다.
다음날 아침 10시쯤 뒷뜰을 보니 어제 왼 종일 퍼붓던 악몽같은 눈보라는 온데간데 없고,
푸른 하늘에 눈부신 백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그져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야말로 天地不忍이다.
어제 저녁에 폭설로 발이 묶인 주간 간병인 강 여사한테 전화를 하였더니, 천천히 오라고 한다. 야간 간병인 오 여사가 밤을 새고,
지금 자고 있어서, 근무를 반나절씩 나눠서 자기가 1시까지 모친을 봐주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도 어제 치우다 만 눈도 치우려고
11시쯤 갔다. 눈은 어제 밤 자정 무렵에 그쳤고 월요일 새벽부터 제설차량을 총 동원했는지, 큰길과 샛길 모두 깔끔하게 치어놨다.
그리고 나도 제설기로 진입로는 물론 사이드 웤(보행자가 다니는 길)까지 치어놓고, 두 간병인들의 차를 바꿔서 주차를 해놨다.
그리고 우리집에 와서 덜 치워진 잔설을 치고서 오후 1시 반쯤, 긴 스케일로 재어보니, 13인치(33cm)의 눈이 하루 동안에 내렸다.
그런데, 새벽 2시에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와서 기겁을 하고 일어나서 갔다. 오늘 새로 시작하는 야간 간병인은 60대 중반에
간병을 해본 경험이 많다하여 모친과 오 여사가 만나보고 결정을 하였는데, 휠체어에서 모친의 양 다리를 얹어 놓는 지지대를
분리하지 못하여 30분이상을 씨름하고 있었다. 오늘 보니, 그녀는 왜소하고 70살은 족히 넘게 보였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여,
오늘 일하기 전에 1시간 정도 일찍와서, 오 여사가 휠체어와 수동 호이스트(기중기)작동을 수차례 설명해줘서 연습을 해봤다는데,
그녀는 모친을 돌 볼 준비가 전혀 돼있지 못하였다. 휠체어 지지대 장탈하는 걸 여러차례 설명해주고 다시 해보게하면,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어머니를 침대로 들어 올리는 호이스트 조작도 도와주면서, "첫 날이 좀 힘들지만, 다 그렇게 시작해서
1, 2년 넘게 일들을 하고 있으니 넘 초조하게 생각치 마세요." 하며 위로를 해줬다. 잠시후에 다시 키친으로 모시고 나왔고
집으로 가려고 밖에 나오니, 긴 한숨이 절로 터져나왔다. 집 차고 앞에 와서 시간을 보니 3시 5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나절에 그녀한테서 더 이상 못하겠는 전화가 왔다. 나는 "구인을 할 때까지는 나오셔야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당장 오늘 저녁부터 안나오시면 않되죠. 그건 일하는 분들의 윤리에도 벗어나고, 여태컷 이런 경우는 없었던 일입니다." 라고
반박하였지만, 그녀는 결코 나오지 않았다. 간혹 가다가 이런 일이 생기지만, 올 해들어 두 번째 생긴 일이다.
당장 2/3 밤에 일할 간병인을 이리저리 수소문하였지만, 그렇게 급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2년전에, 일은 잘 했지만,
모친과 부디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서 석 달을 채우지못하고 그만 두게 하였던 오여사 지인을 오 여사를 통해서 오늘 저녁부터
다시 나오게 하였다. 모친은 그 사람을 오게 하면, 죽어도 밤에 혼자 있겠다고 하였지만, 그게 자식인 내가 그렇게 놔 둘 수 없는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나는, 그 여자분한테 "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마시고, 그져, 네, 네하며 지내는 게 서로 스트레스가 안 쌓일 거
같은데, 이번에는 그리 하시고, 오래 계시길 부탁해요." 라고 하였는데, 며칠이 지나고나니,
전과는 달리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오 여사가 귀뜸을 해줬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이틀동안 기온이 섭씨로 영상 5도 정도로 올라가면서 알게 모르게 30cm나 되는 적설이 13cm까지 녹아
내렸지만, 다시 기온이 떨어지면서 잔설이 천지에 가득하다. 기록에 의하면 2년마다 이런 폭설이, 또 대충 10년 주기로 폭설
대란이 일어 난다는데, 정확한 기억이 없어서 시카고 폭설기록을 찾아보니, 1999년 정월 초였다. 그땐 밀어 부친 눈이 현관앞에
가슴까지 닿았는데, 장난삼아서 현관으로 들어 오는 입구에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그 때 적설량이 21.6 인치가 넘어서 시카고
역사상 두 번째 그록을 세웠다. 첫 번째 기록은 1967년 1월말에 내린 23 인치였다. 그런데 애들이 피차를 오더하여 얼마 후에
현관 도어 벨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그 터널은 이미 가운데가 폭삭 뭉게져 있었다. 이 친구가, '누구든지 이 터널을
뭉게지 말고 아래 터널을 이용하라!' 라고 쓴 경고문을 걸어 놨는데도, 그걸 어둬서 봤는지 못봤는지 모르지만, 피차 대금을
주면서,"저기 써 붙힌 거 못봤냐?" 하며 물었더니, 멋적게 씩~ 웃면서 양손을 벌리고 어께를 치겨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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