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무종교와 종교

크리스챤들의 아전인수

바람거사 2020. 8. 29. 08:38

2018년 4월에 올렸었는데, 다시 올린 글입니다.

 

그해 10월에 북구 투어를 갔을 때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배를 타고 헬싱키로 이동 중에 배안에서

식사는 물론 드링크까지 모두 배싻에 포함이 되어서 일행 몇 명과 더불어서 얘길 하면서 와인을 즐겼다.

그러다가 남자분 3명이 이구동성으로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었다. 한 분은 앨라배마의 버밍햄에서 온 장로인데,

믿음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길 하길레,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대충 들어주다가, 자리에서 뜰 무렵에 여기에 올린,

"어느 한 마을에서 기독교를 열심히 숭배하는 두 가정---" 얘길 해줬더니, 모두들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케빈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이 정말로 기막힌 비유라며 손뼉을 쳤다.

 

 

세계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나라가 대부분이지만, 중국이나 북한 같은 일부 사회주의나 독재주의 국가 내지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들은 강력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동포들이 기독교를 주로 믿는 미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비기독교인들이 그들을 비방하거나 아예 허구를 믿지 마라고 할 수는 없다.

 

몇 년전부터 우리 동네에 있는 미용실에 대략 한 달마다 이발하러 간다. 인사치레로 이런저런 얘기 끝에 60대 후반의 여주인은 25여 년전에 지금 이곳에 스트립 몰이 첨 생기면서 이사를 왔는데, 그 땐 길 건너에 있는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 외에는 다른 건물들이 거의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도 이런 한적한 곳에 오게 된 데는 모두 주님의 뜻이라 믿었다고. 그 후로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대로 많은 가게들이 들어섰고, 손님들의 발길도 많아졌다면서, 그게 다 주님을 믿고 참은 결과라라고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여느 때같으면 장황하게 얘기 기하기가 싫어서, 다 나름대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되는 거죠 하면서 맞장구를 쳐줬을 터인데, 자기는 8남매 맏이고, 어려이래로 모두가 열심히 기독교를 믿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날 보고 왜 교회를 나가지 않느냐고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종교보다는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또 과학도가 되다 보니,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종교에 대한 게 단순히 믿음이지, 그게 근본적인 진실이 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기독교의 모태는, 대략 기원전 2,000년 전에 지금의 이란-인도 지역에 원시 신앙의 형태로 퍼져있는 것을 기원전 6세기경에 조르아스터가 재정립(reformed)한 조르아스터 교의 영향을 받은 유태교다. 그리고 로마제국에서는 다신교 내지는 미신이 난무해져서 제국의 일괄적인 통치 하는데 어려움이 있자, 콘스탄틴 1세의 명으로 복음서를 지금의 형태로 가감하여 정리한 후에 서기 313년에 밀나노 칙령을 포고하여 Bible이라고 칭했다는 걸 말해줬다. 역사적인 내용을 그리 얘기해줬더니, 더 이상 반론을 하지않았는데, 그때 내 머리 손질이 거의 다 끝내어져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를 해줬다.

"어느 한 마을에서 기독교를 열심히 숭배하는 두 가정이 있었는데, 전쟁이 나서 그 두 집의 아들들이 징집되어 전장에 나갔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한 집의 아들은 살아 돌아오고, 다른 집 아들은 전사를 했답니다. 살아 돌아온 아들의 부모는 이게 다 주님에게 열심히 기도를 한 탓이라고 하며 더욱더 감사기도를 하였고, 반면에 다른 한 집의 아들의 부모는 처음에는 주님을 을 원망하다가, 그래도 이게 당신의 뜻이라면 받아 드리겠다며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죠. 문제는 양쪽 집의 상황이 삶과 죽음의 극한에 있는데, 결국 주님의 뜻이라 간주한다면, 결국, 아무 신앙이 없는 한 운명론자의 입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죽고 사는 건 타고난 운명인데 어찌하겠는가 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거 아녜요?"

 

그랬더니, 그 여주인장은 당황한 안색이 드러났고, 마침 다른 손님이 들어와서 나는 요금을 건네주고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오는데, "많이 배우신 분들은 골치 아파요!" 하며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