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사색의 오솔길

친구란? --- Ep1

바람거사 2024. 12. 12. 09:51

[거사 주]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여자애들 얘기는 거사의 Factional Essay 책, "어느 남자의 사랑 이야기"에 소개되어 생략하였고, 이번에 연재되는 에피소드에 나오는 이들이 거사의 방에 찾아 올 확률은 전혀 없기도 하지만, 모든 이의 이름은 가명으로 올렸다.

[나이들면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워지는 가 보다]

<1961~1966>

* 이건웅: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 같은 금암동은 전주시라지만 끝자락 변두리에 있고, 그 동네에 있는 금암초등학교에서 6년 우등/정개근하였고 70명 반 수석을 했었다. 1961년에 6학년 전체 3반에서 대여섯 명이 명문인 전주 북중학교에 응시했는데, 전주 시내에 있는 두엇 명문 초등학교에서 100명 이상이 합격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인 우리는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여, 우리는 물론 담임선생님들이 톡톡히 망신을 당하였다. 졸업식도 참석 못 하고 개교한 지 1년밖에 안 된 가톨릭 재단의 후기인 전주 해성 중학교에 원서를 내러 쏘다녔다.

그런 학교에 다니기가 매우 싫었지만, 3학년 때 같은 반에 있었던 건웅을 알고 되어서 친하게 지냈는데, 우리보다 더 가난하였지만, 국어 담당이면서 담임이었던 박해근 선생님이 그가 어른스럽게 쓴 시를 극찬하였다. 또 학업 성적도 좋아서 최상위권에서  합격한 5(이건웅, 김남주, 김무영, 김용일, 홍성조)에 끼여서 호남의 명문 전주고엘 바로 들어갔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부터 정든 큰 초가를 빚 갚으려고 헐값에 내주고 냇물 건너 앞 동네로 6 식구가 한방에서 살아야 할 셋방살이 하러 떠났는데, 그야말로 잘 살던 도령이 노비로 전락한 처지가 되었다. 맘씨 좋은 아버지가 상습적인 노름꾼인지도 모르고 가까이 지내던 직장동료에게 빌려준 돈은 물론 여러 동료의 돈을 챙겨서 야반도주하여 빚보증해 준 사람이 아버지의 봉급을 압류하고 먹고 살 정도만 받아서 굶지는 않았지만, 수험료 같은 목돈이 필요한 때는 제 때에 마련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3년 동안 교과서를 제대로 산 적이 없고 같은 가톨릭 재단의 성심여중학교에 나보다 1년 앞서 다녔던 아버지의 직장동료 여식인 고유덕의 책을 물려받고 과외는커녕 변변한 참고서도 구경 못 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중학과정을 끝냈다. 그리고 재수할 때는 힘들게 마련한 몇 권의 참고서에 매달려 죽으라고 공부하여 다음 해에 극적으로 나 홀로 입성하였다.

그가 전주고 2학년 어느 여름날 우리 집에 와서 놀다가 놓고 간 파카 만년필을 혹시 우리 집에 놓고 갔나 물었지만, 없다고 하며, 그걸 갖고 싶어서 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짙게 나오는 촉을 건드려서 망가지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교실에 찾아갔더니 그는 정시 입학은 물론 보결로도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를 얼마 전에 자퇴하였다고 급우가 얘기해 줬다.. 그걸 알고서도 나는 차일피일하다가 그의 집을 찾아가지 못하였다. 중학교 때 한 번 같이 갔었던 완산동인지 평화동인지 고개 넘어 길가 산비탈에 있는 초가집인데, 안방에는 오랜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봤고, 어린 동생이 마당에서 놀고 어머니는 일하러 나갔고 큰 누이는 학교도 안 다니면서 무표정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늘진 누이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집엘 친구라는 녀석이 찾아가지 못한 게 매우 후회되는 일이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서 그의 이름을 여러 차례 검색해 봐도 찾을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세월이 좀 더 지나면서 개인정보 접근이 차단되어 아주 불가능해졌다.

<1961~1968>

- 서규석: 그는 해성중학교에 같이 다녔던 전주의 남쪽에 있는 모악산 자락에 사는 촌놈이다. 그의 누이가 우리 동네 도랑가집의 장님한테 시집와서 살기에 그곳에서 기거하여 거의 같이 등하교를 하였다. 그는 공부는 뒷전이었고 허풍을 잘 떨었지만, 순수하였다. 어느 여름날 주말에 그 친구 집엘 몇 시간 동안 걸어서 간 적이 있었다. 밤에 동네 형들이 여럿이 앉아서 귀신 얘길 하는 걸 듣고 고목나무 옆에 있는 서낭당을 지나서 그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매우 무서워서 오금이 저렸다. 이른 아침에 앞뜰에 나갔다가 풀숲에서 엄청나게 큰 두꺼비가 눈을 부라리며 날 째려보고 있어서 또 놀랐다.

그리고 그 후론 기억나는 일이 없는데, 3년이 지난 1968년 내가 서울로 유학 가서 마장동 고모 집에서 잠시 유숙할 때 한양대학교 앞 논밭 건너편 빈촌에서 시계 줄 공장에서 일한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었다. 매우 반가웠고 내가 이제 대학생이 된 걸 정말로 장하다고 하였다. 잠시 얘길 나누고 헤어지는데, 내 손아귀에 지폐 한 장을 쥐여줬다. 그때는 그 500원 지폐가 큰돈이라 놀랐는데, 내가 몇 달 후에 마장동을 떠난 후로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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