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요즘의 안젤리나 졸리같이 입술이 두툼하고 섹시한 줄리 크리스티( 83세)가 주연한 Darling(연인)이라는 흑백 영화속에서도 비가 왔고, 밖에 나오니 역시 비가 오고 있었다. 한 10여분 동안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그 영화에 대한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서 끝없이 감동의 열변을 나눴던 이 친구는 나보다 1년 먼저인 1978년에 시카고로 이민 온 후로 몇 년 후에 이 친구는 나름대로 뜻한 바가 있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모든 인연을 정리한려고 했는지 택사스인가, 아리조나인가 어딘가로 홀연히 떠난 후에 연락을 아예 끊어버렸다. 그런데 20여 년 전에 방한을 하여 몇 대학동기들과 만나면서, 지금은 세탁소를 하고 있지만, 목사가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가, 대학 때부터 입바른 소릴 잘 하는 한 동기가,
"야, 씹헐, 니가 목사가 된다면 이 세상에 목사가 안될 놈이 하나도 없겠다. !” 라고 빈정거리는 바람에 한바탕, 서로 목을 조르고 난리를 폈다는 후문을 들었다. 왕년의 코메디언도 범법자도 회계하여 목회자도 되는데 말이 좀 앞섰나보다. 그렇다고 발끈하여 목을 조르는 녀석도 그렇고. 그리 인내심이 없어서야 원--. "음, 그래. 니 말도 맞다. 허지만 세월이 흐르는데도 너처럼, 사람이 변치 않는다면, 그게 인간이겠는가?" 라고 대응했으면, 빛이 날 터였는데, 그때 이 친구는 아직도 세월이 더 필요했던 게다.
나도 그런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대학 때 일등 졸업한 동기녀석은 , 나는 3등을 하여 장관상도 못타고 학장상도 못탔지만, 나는 콧대가 셌다. 나는 인생의 폭을 넓게 사느라고 연애를 하고 실연을 하면서 술도 엄청마시며 학점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걸로 자위를 하였지만, 1, 2등하는 짜슥들은 시험때 컨닝을 하는데도 뻔뻔하기 그지 없었다. 학점 잘 받으려고 눈이 뒤집힌 부도덕한 짜쓱들이었다. 이 두녀석들은 가증스럽게도 컨닝을 한다고 서로 비방하였다.
졸업시즌이 되어서 나는 하도 열이 나서 어머니에게 대학졸업식은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 제대로 널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장남 대학 졸업식엔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하며 눈시울을 적시던 어머니를 손을 꼭 잡으며 이리 달래드렸 "나중에 미국유학가면 석,박사 끝날 때 꼭 참석하게 해줄 거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대학 졸업후 무려 17년만에 어머니를 일리노이 공대 대학원 석사학위 졸업식장에 모셨고, 까운을 걸치고 모자를 씨워드리는 눈물겨운 졸업식을 치렀다. 그때 어머니는 "한 번 더해야지--" 하셨다.
그런데 대학 졸업후 10년도 더 지나서 어느해 방한하여 일등으로 졸업한 동기를 여럿이 함께 만났는데, 나는 물었다. "그 동안 너도 사회물 좀 먹었는데, 아직도 꽁생원이냐? "
"야, 나도 그 동안에 많이 변했다. 예전의 나로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지 마라-." 하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바로 미안한다고 사과를 하였고, 그날 저녁에 우리들은 술도 많이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엄청 많이 불렀다. 근데, 이 친구는 대학시절과는 달리 노래를 잘 불러서 감탄 하였다. 이 친구도 1976년 공군전역후에 내가 H건설에 입사 하였을 때, H 중공업 기관차사업부에 들어갔는데, 나는 입사 2년만에 미국으로 떠났고, 그는 이미 부장이 되어있다. 그 동안에 산전수전 다 겪고 이미 어였한 사회인이 되어있었기에, 사람이 변하는 건 오로지 시간적인 차이 밖에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여튼, 1968년 우리가 입학을 할 때, 당시 한국항공대학은 국립특차로 나이 제한이 있었다. 명동지하도를 빠져나오면서 열변을 토하던 그 녀석은 고등학교때 휴학을 하고 검정고시를 치르고도 재수하여, 나이 제한 상한선에 간신히 걸려서 입학하여 우리들 보다 두 살 연배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공부보단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면에 관심이 더 많아 별명이 철학교수였다. 우리 몇 명은 사회 돌아가는 꼴이나, 기성종교에 비판적이었고, 개똥철학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해대며, 술도 어지간치 마시며 묻어 다녔다. 우리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였어도 항시 용돈이 넉넉치 못하여 때로는 학생증이나 교과서를 맡기고 세칭 색시가 있는 '니나노집'에 가서 노래부르고 마시며 통행금지 시간이 넘도록 청춘고민을 나눴었는데, 한복 곱게 입은 아가씨들도 순정이 많아, 돈 없는 대학생들하고 노는 것도 영광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아, 그런데, 어떤 친구는 학생증이나 교과서맡기고도 결국 술 값을 차일피일 지불하지 못하고 졸업 시즌이 되었는데, 그 색시집 주인 아주매가 꽃다발들고 학교 강의실에 찾아 온 모습도 봤다. 그 친구, 멀리서 미리보고 기겁하여 꽁무니를 빼는 걸 보고 모두 웃었다. 아, 그 시절이 무척 그립고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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