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자가 1965년에 영화 주제곡으로 처음 불렀고, 그 후에 문주란도 불렀다.
1967년 여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어머니와 더불어 나는 전주에서 기차를 타고 군산에 가서, 다시 연락선을 타고 난생처음으로 장항으로 건너갔다. 그날따라 희뿌연 구름이 꽉 낀 날, 어머니는 시집오기까지 6년 동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양조장의 부엌일을 도맡아 곤두박질하며 지내셨던 장항을 근 20년 만에 들리셨다. 천애의 고아로 자라면서 길가의 잡초같이 질긴 삶을 살아온 어머니로 봐서, 이제 허우대가 멀쩡하게 잘 자란 장남인 나를 꼭 그 양조장 안주인인 먼 친척 되는 할머니에게 당당히 보여 드리고 싶으셨나 보다.
어머니는 꿈많던 소녀 시절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방년 19살이 되는 1947년, 30살 노총각인 선친과 내쫓기듯 혼례를 치른 후 장항 부둣가를 떠났다던 그 한을 되새기며 장항읍 외곽에 있었던 화천 양조장엘 갔다. 어머니는 2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양조장으로 가는 길가 논밭이며 집들이 별로 변한 게 없다고 하셨다.
큰 길가에 양조장이 있고 왼편으로 나 있는 큰 대문을 지나 넓은 마당 바른편에 왜정 때 건물인 단층건물이 길게 서 있었고 그 건물 뒤로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 그곳엔 수십 년 묵은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그 언덕에 올라서니, 서편 저 멀리 바다 쪽으로 제련소의 높은 굴뚝이 성큼 가까이 보였다.
어머니는 나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소개를 해드리면서 신바람이 나셨고, 그 옛날 지내시던 방이며 부엌 그리고 한여름에도 얼음물같이 차가운 우물도 보여주셨다. 또 아직도 윤기가 번질번질하게 나는 무쇠 가마솥이 걸린 큰 부엌에서, 바지런스럽게 불길을 다루며 부산하게 뛰는 어머니의 모습을 잠시 그려봤다.
다음날 오후, 오늘이 우연히 장항 갑부인 화천 양조장 집에서 읍내에 극장을 개관하는 날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먼 친척들이 많이 모였기에 어머니는 날 또 모두에게 소개하고, 점심 식사 후에 그 극장엘 우르르 몰려갔다. 극장에는 아직 관객들이 앉는 의자를 놓기 전이라 거적때기를 깔아놨고, 또 유지들을 위해서 등받이도 없는 벤치 같은 긴 의자를 중간에만 놔뒀다.
그날 개관기념으로 상영된 영화가 바로 김진규와 엄앵란이 주연한 ' 열풍'였는데, 18살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 생겼다. 개관기념으로 온 먼 친척 벌 되는 사람 중에는 나보다 두 어살 정도 나이가 든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미색은 아녔지만, 통통한 몸집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잉어 뱃살 같은 굵직한 장딴지에 가운데, 줄이 있는 스타킹을 끼고 검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통통한 다리를 자주 쳐다보면서 야릇한 기분에 젖으며 괜스레 얼굴이 벌게졌다. 그녀는 첨 소개를 받은 후로 연신 나를 보고 생글생글 잘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나도 왠지 그녀가 좋아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으로 뭐랄까 그녀의 통통한 다리를 보고 묘한 충동을 느꼈다고 할까?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걸 보니, 눈으로 들어온 성숙한 여인네의 스타킹을 신은 자태가 햇병아리 사내에게 짜릿한 자극을 준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울어라 열풍아"를 들으면, 거적때기 깔린 극장에서 보던 그 흑백영화가 뇌수에서 소리 없이 돌아가고, 짧은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그 이름 모를 아가씨에게 느꼈던 색정을 떠올리며 머쓱하게 웃어 본다.(-)
'음악의 창 > 추억의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로가수 안다성 타계-2023.1.11 (1) | 2023.01.14 |
---|---|
"울고 넘는 박달재"- 나까무라 (5) | 2022.11.06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패티 킴 (0) | 2022.10.21 |
"갈대의 순정"- Tenor Sax(장선희/이명수) (1) | 2022.10.06 |
"후회는 없다"- 에디뜨 삐아프(1960) (0) | 2022.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