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거사 내외가 북부 유럽 여행을 갔는데, 우리 내외와 일행 중에 같이 온 세 분과 같은 식탁에 앉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앨라배마에서 온 한 분이 목회를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보고 교회에 나가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그 세 분 모두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연유를 물었습니다. 종교 얘기가 나오면 길어질 게 뻔하여 여행의 분위기를 망칠 거 같아서, 몇 마디 나누다가, 전에 써놨던 게 생각나서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마을에서 전장에 아들을 보낸 두 집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기 아들이 주님의 가호로 모두 살아오길 빌었다. 그런데 한 아들은 살아서, 다른 아들은 죽어서 돌아왔다. 전자는 간절한 기도가 이뤄졌다고 감사했고, 후자는 첨에는 원망하다가 그것도 주님의 뜻이라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잠시 후에 앨라바마에서 온 분이 "믿고 안 믿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하였는데, 그게 결국 "이현령 비현령"인 거죠. 종교는 자신의 삶이 특히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종교의 발원에 대해서 모르는 처지에서 그저 만인이 오랫동안 믿어 온 어느 절대자에 의지 하고픈 때에 믿음이 생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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