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세기하고 7년전인 1967년 어머니와 함께한 장항에서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머니와 같이한 옛일이 생각나서, 2010년 6월 초에 올렸던 걸 재등록했습니다. *
1967년 여름,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어머니와 더불어 전주에서 기차를 타고 군산에 가서, 다시 연락선을 타고 난생 첨으로 장항으로 건너갔다. 그날따라 희뿌연 구름이 꽉 낀 날, 어머니는 시집오기까지 6년 동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양조장의 부엌일을 도맡아 곤두박질을 하며 지냈던 장항엘 근 20년 만에 들리셨다. 천애의 고아로 자라면서 길가의 잡초같이 질긴 삶을 살아온 어머니로 봐서, 이제 허우대가 멀쩡하게 잘 자란 장남인 나를 꼭 그 양조장 안주인인 고 씨 할머니에게 당당히 보여 드리고 싶으셨나 보다.
어머니는 꿈 많던 소녀시절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방년 19살이 되는 1948년, 30살 노총각인 선친과 내쫓기듯 혼례를 치른 후에 장항 부둣가를 떠났다던 그 한을 되새기며 장항읍 외곽에 있었던 화천 양조장엘 갔다. 어머니는 근 2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양조장으로 가는 길가 논밭이며 집들이 별로 변한 게 없다고 하셨다.
길가에 양조장이 있고 왼편으로 나있는 큰 대문을 지나 넓은 마당 바른 편에 왜정 때 건물인 단층 건물이 길게 서있었고 그 건물 뒤로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 그곳엔 수십 년 묵은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그 언덕에 올라서니, 서편 저 멀리 바다 쪽으로 제련소의 높은 굴뚝이 성큼 가까이 보였다.
어머니는 나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소개를 하며 신바람이 나셨고, 그 옛날 지내던 방이며 부엌 그리고 한 여름에도 얼음물같이 차가운 우물도 보여주셨다. 또한 아직까지도 윤기가 번질번질하게 나는 무쇠 가마솥이 걸린 큰 부엌에서, 바지런스럽게 불길을 다루며 부산하게 뛰는 어머니의 모습을 잠시 그려봤다.
다음날, 오늘이 장항 갑부인 화천 양조장집에서 읍내에 극장을 개관하는 날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먼 친척들이 많이 모였기에 어머니는 날 또 모두에게 소개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에 그 극장엘 우르르 몰려갔다. 극장에는 아직 관객들이 앉는 의자를 놓기 전이라 거적때기를 깔아놨고, 또 유지들을 위해서 등받이도 없는 벤치 같은 긴 의자 여러 갤 옆으로 붙이고 댓 줄 중간에 놔뒀다.
그날 개관기념으로 상영된 흑백영화가 바로 김석훈, 이예춘, 그리고 엄앵란이 주연한 '열풍'였는데, 18살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 생겼다. 여러 손님들 중에는 어제 잠시 양조장에서 잠시 본 나보다 두 어살 정도 나이가 든 아가씨도 와있었다. 그녀는 미색은 아녔지만, 영화 속의 엄앵란처럼, 통통한 몸집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잉어 뱃살 같은 굵직한 장딴지에 가운데 줄이 난 스타킹을 끼고 검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연신 힐끗 쳐다보면서 야릇한 기분에 젖으며 괜스레 얼굴이 벌게졌다. 그녀도 나를 보고 생글생글 잘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왠지 그녀가 좋아졌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걸 보니, 눈으로 들어온 성숙한 여인네의 자태가 햇병아리 사내에게 짜릿한 자극을 준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나면서, 어쩌다가 '울어라 열풍아'를 들으면, 거적때기 깔린 극장에서 보던 그 흑백영화가 뇌수에서 소리 없이 돌아가고, 또 짧은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그 아가씨에게 느꼈던 색정을 떠올리며 머쓱하게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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