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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해후 - 2003

바람거사 2020. 7. 24. 05:52

 

설악산 신흥사-1999

성필은 창건 법회를 봉행(奉行)한다는 신문광고에 난 불인(不忍)이란 스님의 사진을 보고, 대학친구 종길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극적인 해후를 하였고 그가 이곳에 와서 도반사(道伴寺)를 세운지도 두 달이 되어갔다. 그러나 이곳은 300개가 넘는 한인 교회에 비해서 불교 사찰은 겨우 세 군데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큰 도시를 놔두고 이런 곳으로 오게 된 데는 이런 불모지에 불심을 뿌릴 좋은 밭을 일궈보겠다는 큰 뜻이 있다고 하였다.

 

종길은 그 동안 성필을 두어 번 잠시 만나면서 그가 불사를 도울 거라는 생각은 접어 버렸다. 첨 만나는 한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대부분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을 정도로 대개가 교회에 다니지만, 성필은 인간도 어쩌다 진화가 잘된 하나의 생물체로 간주하고 있을 뿐, 죽은 뒤의 영생이나 윤회 따위에 대해서 믿지도 않고, 더욱이 근본적인 믿음도 없이 단지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종교를 가질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도 모처럼 수 십 년 동안 밀린 얘길 하려면, 아무래도 성필이네 집에서 자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날을 잡았는데, 그날 주방에서 어설픈 솜씨로 이런 저런 안줏감을 챙겨 나오는 모습을 보고 종길이 물었다.

  “헌데, 집사람은 어디 갔냐?”

  “아니, 우린 지금 별거중이야.”

  “언제부터 그리됐나?”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가네. 그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자, 먼저 한 잔 하게.”  “이거, 같이 잔을 퉁겨 보는 게 정말 얼마만 인가?”  “아마 30년 가까이 되었을 걸? 그런데 말이야, 여름방학이 끝나고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오랜만에 술 마시다 화장실에 갔던 한 친구가 감쪽같이 없어진 얘기 들어봤나? 같이 간 친구들이 근처를 한참 찾다가 결국 포기를 했다며? 다음 날 그 친구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강의실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여기저기서 어딜 갔었느냐고 물으니까, 비시게 웃으며 설레설레 손사래만 치면서 밖으로 나갔다더군.”

 “사람 참, 별 걸 다 기억하고 있네.” 

 “아침나절 주위가 소란해서 눈을 떠보니 독립문 근처 어느 골목길이었다는데, 그래 화장실은 찾았었는가?”  “예끼 이사람. 이제, 그 얘긴 좀 잊어버리게.” 성필은 모처럼 딸꾹질이 나도록 웃었다. 불인도 멋쩍게 따라 웃다말고 잔을 재차 퉁기면서 말꼬리를 돌렸다.  “자, 자, 술이나 들게. 헌데, 자넨 여기가 그리 좋아서 뿌리를 내리고 눌러 앉아 버렸나?”  “어? 어찌하다보니 그리 됐어. 사실 여긴 겨울이 반년도 넘을 거야. 겨울에 추운 건 그렇다 해도 무릎이 넘는 눈이 며칠 내로 오고 또 오면, 망할 놈의 눈이 웬 지랄이냐고 투덜대도 별 도리가 없었지. 헌데, 이제는 일 년 내내 기후가 좋다는 곳을 가 봐도 일주일만 지나면, 지루해져버리니 말이야. 긴 겨울이 지나고 잠시 봄이 오지만, 연분홍, 진분홍 또 백설 같은 꽃사과 꽃 흐드러진 꽃물결이 치는 모습은 무릉도원의 경지 다네. 여름이야 덥긴 하지만, 천둥번개 요란스럽게 반주 삼아 작달비도 자주 내리지. 가을엔 캐나다 단풍나무의 누렇고 붉은 잎이 온 천지에 가득하고―.”  “어쨌든, 이젠 정이 들어 그냥 눌러 앉겠다는 얘기 아닌가?”  “헌데 그 놈의 정 얘기하면 옛날 우리 동네 할머니가 키우던 누렁이란 늙은 개가 생각나네. 데리고 있어봤자 잘 먹이질 못하여 팔려갔다는데, 밤새 200리 길을 달려와서 새벽녘 방문을 밀치고 나온 할머니를 반기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엉덩이가 빠져나가도록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조아렸다는 얘기일세. 미물도 그렇게 깊은 정을 쌓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고의로 정을 안 준다? 하긴, 깊은 정이란 말기 암과 같지. 종내는 떼어버릴 수도 없겠고. 자네를 포함해서 득도를 하였다는 승려들을 보면 되게 이기적인 데가 있어. 걸핏하면 입으로는 억겁의 인연을 운운해도, 아예 세속적인 애증의 고리에 얽매지 않으려고 미리 발뺌을 한단 말이야.”

 

종길은 시종 눈을 지그시 감고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술기운이 오른 성필은 시비조로 연신 말을 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우리들 군대 간 사이에 안양 어디에서 수년을 주색에 절이다가, 어느 날 확 없어지더니, 골통에 술찌끼밖에 없는 자네가 입산을 해버렸다며?” 

종길은 고개를 반쯤 떨어뜨린 체 잠시 두어 번 끄덕거리더니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보게, 입산을 하는데 파란만장을 꼭 겪어야하고, 수레로 다 운반하지도 못할 만큼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자격 조건이라도 있다던가? 다 착각 속에서 한 세상 사는 게 아냐? 내가 쌀로 밥을 해먹던지, 죽을 쑤어서 개를 주던지 남들이 알 바 아니지. 골 빈 내가 가는 길도 나의 길이고, 남의 사상으로 도배한 자네가 유식한 체 사는 길도 한 세상 가는 길이야. 그리고 깊은 정이고 뭐고 운운하지만, 그게 다 감정노름에 빠진 허상일 뿐이지.”

 “자넨 여전히 확 뒤엎는 소릴 잘하는군.”

 “그래, 내가 참을성이 눈곱만치도 없다하여 불명도 불인이 되었다네.” 

 “말 잘했어. 그러했던 자네가 어떻게 불제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구먼.”  “무턱대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뭔가가 항시 부족해서 안달이거든. 밑 빠진 독같이 말이야. 중독이 되는 거지. 노자나 공자, 예수가 살던 시대에는 책이 얼마나 있었겠어? 만해도 공부를 별로 못 했고, 장서도 별로 없었다고 하였네. 지식을 위한 책은 필요에 따라 읽으면 되겠지만, 사람 되게 하고 깨달음을 바로 주는 책이라는 게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석가모니나 예수가 책 많이 읽었다는 얘긴 들어보지도 못했네 그려. 잡독만 해봤자, 머리만 복잡해지는 거 아니겠어?”  “그 동안 아집만 더 늘어났구먼. 안 봤어도 눈에 선하네. 되게 고집 피우고 싸웠겠군.”

 “사실이네만, 책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지나지 않은걸. 불경을 외우면 얼마나 외우겠는가? 자넨 컴퓨터 도사이니 잘 알겠구먼, 필요하면 찾아보면 될게 아닌가? 그런 걸 백날 아니 백년을 외운다고 세상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겠는가? 그런데 말일세, 부탁이 있네. 내가 인터넷은 물론 컴퓨터 다루는 게 영 부실하니, 그거나 좀 가르쳐주게나.”

 “한인들 위주로 포교를 할 셈이 아녔나?”  “자네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왕 여기까지 어려운 발걸음을 한 거니, 오염된 이 세상을 닦아내는 걸레가 되려하네. 글로벌 시대인데, 어찌 한인만 상대를 해야 하겠는가?”  “그거야 얼마든지 해주겠네. 사실, 자기만의 깨우침을 위해서 구도(求道)를 하는 이들은 대단한 이기주의자들이지. 적막이 겹으로 쌓인 산골에 앉아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만을 읊조리면 뭐 하느냐고. 너도나도 하산하여 중생구제를 해야지? 만해는 그런 면에서 명성을 얻기도 하였지만, 출산 앞둔 마누라 먹일 미역 사러 나간 길로 출가 해버린 파렴치한 면도 보여주지 않았었는가? 자네야 결혼이고 뭐고 애초부터 하지 않았으니 그래도 나은 편이군.”

 

불인은 알았으니 이제 그만 두라는 식으로 고갤 끄덕이면서, 벽에 줄줄이 붙은 사진을 연신 훑어보며 물었다.

 “애가 둘인가? 이제 다들 컸겠구먼. 헌데, 제수씨는 대단한 미인이고.”

 “미인이면, 뭐하나? 이제 이렇게 생홀아비가 되어 사는데―.”

 “아니, 자네도 사고를 쳤나?”

 “사고는 무슨 사고. 돈도 제대로 못 버는 내 주제에 그런 데 쓸 돈이 어디 있기나 하나?”

 “그럼, 돈 못 번다고?”

 “그러기도하고. 이젠 내가 메스꺼울 정도로 싫다는 데 무슨 변명이 있겠어? 무슨 얘기만 나오면 결국은 싸우게 되는 걸. 조만간 서류 정리가 되면 이 집하고도 인연이 끝나나보네. 이 나이에 나도 알거지가 될 명운을 지녔나보네.”

 “거 참, 자세히 얘길 해봐.”  

 “글쎄, 다 끝난 얘기라니까.”   

사 반세기나 지난 옛이야기다. 성필의 집사람은 결혼하기 전 부모한테 최소한의 보답을 하려고, 간호사 취업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날 저녁식사 모임에서 술기운이 올라 모두와 헤어지기 싫다고 몸부림치던 그녀는 다음날 푸석푸석한 얼굴에 또 눈물을 적시며 떠나갔다. 그도 이태 후에 상관의 눈치나 보는 평생 봉급쟁이가 싫다면서 중동특수로 잘 나가던 건설 회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공부를 하겠다며 떠나왔는데, 친구들은 마누라 치맛자락 잡고 날라 갔다고 떠들었다. 마치 쫓기는 사람 마냥, 출국장을 빠져나간 뒤, 일 년이지나 고생을 하드라도 같이 하자는 효심의 발로로 먼저 어머니를 방문초청으로 불러들이고, 또 일 년 후에 별 탈 없이 아버지를 모셨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도 못했던 고부지간의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져 속이 바싹 타 버리고, 정수리 머리가 허옇게 세어 버렸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힘들게 대학원 공부를 끝내고 오십이 넘어 공학 박사학위도 따냈다.

 

만학도가 이뤄낸 성취감에 잠시 도취된 자신 외에 사회에서는 그렇게 알아주지도 않았다. 얼치기 이민 1세로가 당하는 서러움과 좌절을 이기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거라 별러왔지만, 이 희망의 나라에서 입신양명하리라는 처음 입지와는 달리, 근무 연륜이 쌓여도 언어소통의 문제를 걸어 매니저 노릇 한 번 못해보고 회사를 옮겨갔다. 회사를 옮기고 이번엔 겨우 중견 간부까지 승진이 되었을 무렵, 구릉을 수없이 넘었더니 험 하디 험한 준령이 나타나고 말았다.

 

폭설이 내렸던 날 저녁은 강추위로 낮에 잠시 녹아서 질펀하던 물이 얼어붙어 버렸다. 어머니는 손에 풀기가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번다는 욕심으로 주방일을 하러 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중추신경을 크게 다치면서 그도 어머니의 운명과 더불어 필연의 흐름을 타고 말았다. 모든 일들이 어머니에 맞춰서 흘러가게 되면서,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하여 풀타임 직장을 그만두고, 컨설팅을 시작하였는데, 목 좋은데다 가게를 차려 놓고 손님 오길 기다리는 장사와는 달리, 그 한계가 일찍 온 거다. 돈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동포들이 별 기술 없이 적은 자본으로 죽으나 사나, 몸으로 때우는 돈벌이에 매달리고 있는 게 부러웠지만, 처음부터 장사를 하여 세금포탈하며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 아예 관심도 없었다. 허지만, 이젠 그네들이 돈 버는 재미로 사는 걸 보니, 가끔은 자신이 비참해보였다.

 

갈증이 몹시 난 성필은 맥주잔에서 뽀복 소리가 나도록 단숨에 비웠다.

 “어머니는 다시 예전과 같이 걷고, 못 다한 일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네 발 지팡이에 의지하여 곧 쓰러 질 것 같은 발걸음을 떼면서 피나는 재활 운동을 하셨지. 헌데, 처음 기대와는 달리, 10년이 지나도 거동이 부실하여 실망의 골은 깊어만 갔네. 물론 낮에는 파출부가 모든 일을 도맡고, 밤에는 아버지가 뒷바라지를 하셨고. 주말에는 우리 부부가 번 갈아서 하루 종일 보살펴 드렸어.”

 “정신없었겠구먼. 제수씨가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하였겠고.”  “그런데, 어느 날 새벽 2시 무렵에 급히 화장실에 가시다가 넘어져 대퇴골의 목 부위가 으스러지는 바람에 대체 수술을 받았는데, 그 날 부터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지고 퇴원하였지만 불평이 더 느셨지. 이제 그 다리가 휘청거려서 그나마 걸음을 못 걷겠다는 거야. 설상가상으로 80이 다 된 아버지가 오랜 간병 끝에 심신이 극도로 소모되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이 지내다가 폐렴까지 걸려 두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구사일생 하셨고. 병원에서는 집에서 두 사람 뒷바라지를 하기엔 힘들 터이니 양로원으로 모시는 게 좋겠다고 하였지. 우선 이곳저곳 시설이 괜찮다는 곳을 들려 봤는데, 훗날 자식들은 자기네들이 바쁘고 형편이 닿지 않는다고 연로한 부모들을 이렇듯 합법적으로 팽개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럴 바에는 아예 완전히 노망이 들어 자신이 누구 다는 것도 모르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지만, 혼동이 심한 노인들이라도 때로 멀쩡한 의식이 들면, 덜렁 혼자 버려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더라고.”

 “생로병사가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이 이어가는 업보가 아니겠나?”

 “방 하나를 병실같이 꾸미고 집으로 모셨네. 아버지는 위장에 꽂아 둔 고무호스를 통해서 농축된 음식물을 넣어줘야 하는데 고충이 말이 아녔어. 그래도 우리 내외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두 달 만에 기력이 회복되어 다시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건강을 되찾게 되었지만, 식사시간과 전후 5분 동안 거동하는 걸 제외하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누어서 지내셨지. 그런 구차한 삶을 유지하면서 무심한 세월을 재촉하고 있어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식구 모두에게 큰 의미를 주었네.”

 “아직 부친은 살아 계시는가?  “작년 6월말 새벽에 저혈당쇼크로 혼절하신 후, 바로 911 응급조치를 하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회복을 못하고 2주 만에 하세하셨지. 맨 날 잠만 주무시는 부친이셨지만, 이제는 그나마 안 계신다는 사실이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금 모친은 좀 어떠하신가?"  

“신경을 다치셨으니 온 몸은 쑤시고 절리고, 통변이나 체온 조절이 잘 안되어 아주 힘들어하시지. 문제는 간병인이 교대로 하루 종일 돌봐드려도 종종 넘어지는 일이 생기는 거라네. 몇 해 전에도 용변 후 휠체어가 있는 거로 잘못 알고 주저앉다가 의자 손잡이에 허리 뒤쪽을 크게 다친 후로는 온 몸이 꼬이고 더 쑤신다는 거야. 행복한 생을 사셔도 서러울 나이에, 고통에 괴로워하며 피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면, …….”

 

성필은 목이 맺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어려서 양부모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시집이라고 와서도 고생만 하였는데, 이역만리까지 와서 그리 다치셨으니 그 인생을 누가 보상해주겠나? 무슨 업보가 더 남아서 이런 고통을 겪느냐는 거지. 간간히 더 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지만,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죽음뿐인데, 정말 그 죽음이 축복할 일인가? 지난 20여 년 동안 그 모든 걸 지켜봐온 나도 허무라는 화두(話頭)가 뇌리에 깊게 각인 돼버렸다네.”

 

종길은 고뇌에 찬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지그시 눈을 감고선 연신 뭐라고 암송만을 할 뿐 잠시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어쩌다가 별거까지 하게 되었는가?”

 “작년 여름 둘째 딸아이마저 대학촌으로 떠나버리니, 그야말로 이 집은 빈 둥지가 되어 버렸네. 그 동안 잘 참아 왔던 집사람이 어느 날, 꿈만 먹고사는 인생의 낙오자니 뭐니 잔뜩 험담을 해대더니만, 젊은 년하고 잘 해보라며 주섬주섬 봇짐을 챙겨 나갔네. 그게 아니라고 수차 변명을 피력하였지만, 너무도 뚜렷한 증거가 있어서 결국 발목이 잡혀 버렸군. 조금만 기다리고 참아 달라는 말로 지금까지 수 없이 달래 왔었지 마는, 이제는 그 옛날에 열심히 쌓아 놓은 사랑의 흔적은 마르다 못해 얼굴만 봐도 지겨운 화상이 되었다는데, 더 붙들 명분이 없었어.”

 “허지만, 사랑이 다 말라도 미운 정 고은 정으로 산다던데.”

 “그렇게 말하는 건, 삼자가 방관적으로 얘기하는 상투적인 말일 뿐이지. 그래, 앞으로는 절대 성질도 안 부리고, 욕도 안하고, 금방 후려쳐서 잡아먹을 듯이 눈을 곱 뜨지도 않을 거며, 그 동안 고상하게 하이테크를 한다고 뜬구름만 잡고 있던 미련을 싹 버리고, 맥잡도 불사하고, 벼룩시장에 쭈그리고 앉아서 장사라도 하겠다는 각서를 내 보이며 싹싹 빌었어야 했었나?”

 

종길은 호기심이 가득 차서 연거푸 물어댔다.  

 “젊은 년? 결국 여자문제 때문이었나?”

  “인터넷에 문외한인 집사람이 우연히 서재에서 발견한 오륙 십 페이지나 되는 이메일 사연을 모아 논 카피를 발견하고서 발파용 도화선에 불길이 당겨졌지.”

  “요샌 그렇게 은밀하게 얼굴을 숨기고 음탕하게 메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사람 참, 대학 때 안타깝게 헤어진 첫 사랑을 다시 한 번이라도 만나서 때늦은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었네. 그래서 수 년 동안 노력 끝에 알아 낸 사실은 내가 이민을 오기 전에 이미 독일로 떠나 버렸다는 사실뿐, 그 후로는 더 이상 추적 할 수가 없어 포기를 하고 말았었지. 그런데, 한 5년 전 인터넷을 통하여 그 이름을 검색해봤네. 결혼을 했다면 성도 바꿔질 일이고, 안 했어도 한국이름으로 이메일주소를 갖고 있을 리가 만무하였지만, 유럽은 물론,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까지 뒤져서 댓 되는 동명을 찾아내고 희망 없는 메시지를 보냈었지. 그런데 뉴욕에 있는 그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고, 나는 허탈한 맘에 이것도 인연인데 종종 연락이나 하며 지내자는 뜻을 비쳤는데 흔쾌히 받아 주었다네. 그로부터 끊어질 듯 이어 질 듯 메일을 주고받아 왔었어.”

  “그런데, 그게 별거하는 이유가 되었단 말인가?”  

  “그건 나도 되묻고 싶은 질문이네 만. 참으려면, 끝까지 참지. 어려운 고비는 다 넘기고서 이제 와서 어찌 하잔 건지. 메일이 오가면서 외로움에 쪄든 그녀를 사랑보다는 뭐랄까 연민이 앞선 정이 들었다면 믿을 수 있겠나?”

 

그녀는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세계 여러 곳을 다녔는데, 주로 스페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와서 대학을 나오고 마케팅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재작년에 대학원을 뒤늦게 끝낸 후에는 스페니쉬 방송국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었다. 물론 성필이 집사람 모르게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에 대해서 죄스럽게 생각을 하였지만, 서로 은밀히 만나서 놀아 난 적도 없고, 또 사랑한다느니, 보고 싶다느니 하는 감성적인 얘길 결코 나눈 적도 없었기에, 아내가 있는 남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적인 예의를 지켜왔다고 나름대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결혼 후 지금까지 자기를 뼈 빠지도록 일만 하게 해놓고도 수고한다는 말 대신에 신경질만 부리고 말 함부로 해대더니, 종내는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없이 한가하게 숨겨 논 여자와 정신적인 간음을 했다는 거였다.

 

  “음, 정신적 간음이라. 판결이 쉽지 않겠는데? 그래도 별거 이유론 충분치 않지만. 주먹질을 한 적도 없었고 말이야.”

  “안사람이 경제적으로 자립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더 참질 못하는 거지 뭐. 그러나 지금까지 돈으로 목욕을 시켜주지는 못했지만, 허름하여도 방이 넷 딸린 이 집에서 살아오면서, 학자금융자 받아 애들 대학공부를 시키는 것도 아녔지. 그리고 염병, 어떤 놈같이 제대로 벌지도 못하면서 카드 긁어대고 룸살롱에 가서 술 퍼 마시면서, 애 딸린 이혼녀 꼬여 살림 차려놓고, 생쥐같이 들락거린 것도 아녔는데, 은퇴 후 생활에 유난히도 집착을 하여 매번 돈 문제로 다투게 되니까, 좀 외롭더라고. 사실 그런 숨통 조이는 생활 속에서 저질러진 일이었는데. 지난 25년 동안 연륜의 손때가 덕지덕지 붙은 장롱 같은 아내를 배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네. 단지 집사람에 비해서 세상일에 밝은 그녀와의 은밀한 교신은 답답한 숨통을 조금이나마 터주는 조그만 공기구멍 같은 거라 생각하였지.”

  “숨통을 터주는 조그만 구멍? 그게 전부인가?”

  “별거를 한지 근 두 달이 되어 가는 어느 날 밤, 더 세월이 가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게 해 달라는 메일을 불쑥 보내놓고, 주말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 그리고 저녁 7시에 약속을 한 R호텔 로비에서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네. 전에 내 사진 몇 번 보내면서 초점이 좀 어긋난 거라도 보내 달라고 수차례 운을 띄웠는데도 결국 보내주지 않더군. 비 내리는 거리는 이미 어두워졌고, 수 없이 오가는 차량들의 불빛이 이리저리 비치면서 맘을 산란케 만드는데, 30분이 지나는데도 동양여자 같은 낌새도 보이지 않더라고. 헌데, 너무도 뜻밖에도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에, 후론트 데스크에 부탁을 하여 ‘1904호 아무개’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택하였어.”

 

이 무렵 둘은 어지간히 마신 뒤라 눈은 게슴츠레해지고, 혀도 말려들었지만, 포도주 2병에 맥주 열댓 병이 죄다 떨어지자, 성필은 위스키 병을 가지러 무너질 듯 주방엘 다녀왔다. 얼음덩이 넣은 잔을 입에 대니, 이제는 혀의 맛 봉오리는 평소 쓰고 독한 맛을 아주 달짝지근하다고 신호를 보내줬다. 취기가 도를 넘어선다는 경고지만,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엘리베이터로 가기 전에 잠시 화장실에 들러서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이리저리 쳐다봤지. 혀도 내어보고 앞 이빨이 깔끔한지 확인하고 또 옆모습도 번갈아 비쳐 봤지만, 제기랄 내가 아무리 젊게 보인다 해도 30대로 보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애꿎은 머리만 쓸어 넘겼어. 그녀와는 아무리 따져도 20년 차이가 나더군. 얼굴이 좀 못 생겨도 젊은 애인 하나쯤 있으면 하는 것이 중년 남자들 대부분이 바라는 거라며? 젊은 친구들이 보면, ‘늙은 주제에 사내라고 계집 보는 눈은 있어서―’ 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자네도 늙긴 늙은 모양이네.”  

  “사실, 그게 젤 신경이 쓰이더군. 문 앞에 서서 다시 숨을 크게 몰아쉬고 천천히 노크를 하였는데, 잠시 후 내가 누구란 게 확인되었는지 문이 열렸네. 맨해튼의 야경이 시원스럽게 보이는 큰 창문을 뒤로하고 서 있던 그녀는 마치 뮤지컬의 디바같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서툰 한국말로 ‘첨 뵈어요.’ 라고 짧은 인사를 하더군. 나도 동시에 고개를 수그리며, 구시렁거리는 말로 대꾸를 하고, 잠시 어찌 할 줄 모르고 서 있었지.”

 

소파 옆에 쇼비뇽 블랑이라는 백포도주를 얼음에 채워둔 카트가 보였다. 그리고 목이 긴 화병에는 노란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그녀는 주춤거리는 그를 테이블 맞은편 소파로 안내하였고,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있었다. 눈동자가 약간 위로 뜬 성현아의 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말하는 입이 사뭇 한쪽으로 쏠리는 모습이 김청의 도톰한 입술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녀가 카트 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코르크를 따내어 잔을 채웠고 첫 잔을 퉁겼다. 성필이 잔을 조심스레 입술에 댈 때 그녀의 입술을 쳐다보는 순간, 그도 모르게 입술이 바르르 전율하였다.

 

성필은 처음부터 단지 성적인 충동만으로 젊은 그녀를 만나지는 않을 거라 별러 왔었다. 이메일 끝에 매번 몸조심하라는 형식적인 인사가 그렇게도 잔잔한 기쁨을 줬다고 하였다. 아내가 있고 다 큰 자식들이 있다는 선입관념이 항시 따라 다녔지만, 위해주고 싶고 아껴주고픈 생각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맘이 갈라진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며, 요즘 세상에 웬 사이버 순애보? 그렇게 비아냥거려도 좋다했다.

 

  “빗살이 세어지며 유리창을 얼룩지게 만들더니 불 밝은 야경이 흐려지고 색색의 모자이크가 되어 현란하게 빛이 나는 분위기 때문인지, 두 번째 병을 비워갈 무렵에는 채색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취기가 오르더군. 한국말을 잘 못하는 그녀와 영어로 하는 대화가 속 시원할 리는 없었지만, 바르르 떠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껴 앉는 순간 그녀의 온 몸에 저며진 외로움이 가슴에 젖어들었지.”

 

성필은 가슴이 터져 나가는 박동에 골수자체가 비어져 버렸는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단지 여기 한 고독한 여인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긴 손톱이 그의 등허리를 파고들었다.  

다음날 그녀는 공항까지 따라 나왔다. 아득한 옛날 눈이 펑펑 오던 서울 교외선 어느 간이역에서 한 여학생을 보내던 것처럼, 오늘 동명이인의 여인이 손을 흔들며 그를 전송하고 있었다. 허지만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고는 예나 지금이나 깨닫지 못하였다. 그 후로 그녀는 그날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을 위하여 마치 긴 세월을 기다렸었다는 듯이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더 이상 연결을 할 수 없다는 에러 메시지만 연거푸 떴다. 순간, 가느다란 전화선이 이어줬던 사이버공간은 우주보다도 더 넓어 보였고, 그 신호가 단절이 되니 그는 사이버공간을 헤매는 미아가 되어버렸다.

 

성필은 뜨겁게 달궈진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되게 독한 거야. 어찌 하루저녁의 만남으로 그렇게 잘라 낼 수가 있는 건지.”

  “별거가 이혼으로 치닫는 확실한 이유가 다 있는 거군. 피차 넘으면 안 될 강을 그렇게  건너가니 말이야. 헌데, 이번엔 제수씨가 건너가기 전에 서둘러 싹싹 빌어봐라―.”   

둘은 끝없이 술잔을 날리더니만 언제 어떻게 꼬꾸라졌는지 기억도 없었다. 커튼 사이로 넘실대는 나뭇잎 그림자와 햇살이 눈시울 주위를 번갈아 비벼대어 겨우 눈이 떠졌으나, 몸을 바로 추스르기에는 아직도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성필은 겨우 운신을 하여 주방에 나갔다. 바짝 타버린 목과 비프 저키같이 말라버린 혀를 우선 축이고 나니, 쫑쫑 썰어 넣은 실파가 동동 뜬 얼큰한 콩나물국물이 간절하여 입에 군침이 돌았다. 별도리 없이 라면이나 끓이려고 냉장고 서랍을 빼어봤다. 파는 고사하고 언제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모를 말라비틀어진 양파와 감자 몇 알이 뎅그러니 굴렀다. 파 대신 양파라도 대충 사려 넣고 고춧가루를 담뿍 집어넣었다. 그리고 둘은 이마에 땀이 솟구치도록 얼큰한 국물을 다 마셔대고 뒤뜰로 나왔다.

 

기온이 뚝 떨어지니 약속이나 한 듯 그토록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멈춰 버렸다. 성필이 푸르디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한 여름 동안의 삶이 너무 허무하다고 말하지만, 10년 이상 애벌레로 지내면서 나무뿌리에 눌어붙어 무위도식하며 전성기를 보내다가, 잠깐 바깥 세상에 나와 나름대로 갈무리를 하고 찬바람이 나면 모두 다 스러져간 거겠지.” 종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은 잎이 무성한 보리수를 쳐다보다가, 나무 가지에 줄줄이 붙어 있는 매미의 허물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중 한 개를 조심스레 떼어 신비스러운 듯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주인이 빠져나간 빈집이라. 입적(入寂)한 선사(禪師)들의 헌 옷? 종족번식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치더니 이제 절규도 몸도 모두 버리고 그렇게 갈 길을 가버렸군.”   

 “자네다운 해설일세. 그래,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여름에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그렇게 시원하게 들리지는 않게 되더군.”

 

종길은 불현듯이 지금 몇 시냐고 묻더니만, 급한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승복 자락을 펄렁이면서 단풍나무를 감돌아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제 저녁 그는 눈물이 바짝 말라붙은 쾡 한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세상을 뜬 노모의 죽음도 지켜보지 못했던 통한을 토해 내었다. 관자놀이에 핏발이 바짝 선 까까머리가 격렬하게 흔들리던 모습을 되새기면서, 종길을 성큼 이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그를 몰아 부치겠는가를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치켜 봤다. 그 순간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성큼 날아들더니만, 잠시 묘한 날개 짓을 하며 뒤뜰을 한 차례 휘돌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