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년전인 2004년 9월 방한때 일이다.
저녁 8시에 온 다는 친구가 길이 막혀서 9시가 넘어서 부평에 왔다. 근 3년만에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매제와 마침 방한 중인 남동생과 같이 넷이서 근처 곱창전골을 원조로 잘 한다는 식당에 들러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주도 곁들였다. 전에 강원도에 가니까 원조 소릴 자주 쓰더니만, 요새는 어딜가나 모두 다 원조라는 말을 쓴다. 원조격인 사람의 사진까지 곁들여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간판은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4, 5층 건물에 수십개가 붙어있지만, 그나마 예전에 비해서 화려하고 깨끗하게 보이기는 하였다.
11시무렵 일차 식사가 끝날 때에는 딱 기분이 좋을 정도로 취기가 올랐지만, 그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매제와 동생은 들어가고 우리는 부천의 먹자판, 놀자판 골목이 있는 상동으로 갔다. 전에도 그러했듯이 노래방에 들러서 실컷 불러대는데는 둘 다 이의가 없었다. 그리고 도우미가 있는 곳을 찾아 어느 업소엘 들어갔다. 요새는 단란주점이라는 간판을 부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성인 노래방’ 이라나? 그냥 노래방에서는 손님들이 와서 노래만 부르고 가는 곳이고, 또 ‘룸’자가 들어가면 예전의 ‘룸 싸롱’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3년만에 그런 변화가 있다는 걸 몰랐다.
입구에 들어서서 그 친구가 뭐라 얘길하고 방에 들어 오니, 잠시 후에 화장기도 없는 피곤하게 보이는 중년 아주머니가 맥주 너 댓 병을 들고 왔고 잠시 후에 두 도우미 아가씨인지 아줌마가 들어왔다. 아마도 우리들같이 나이가 좀 든듯한 손님이 오면, 30대 초중반 정도의 도우미를 맞춰서 들여 보내는 모양이다. 자연스레 이리앉고 저리 앉았다. 나는 ‘철 지난 옛 노래를 주로 하는데, 잘 할 수 있겠어요? ’라고 물었더니, 문제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친구는 게슴츠레 자기 곁에 앉은 아가씨의 얼굴을 쳐다보고 다시 내곁에 있는 아가씨를 쳐다보더니만,
“거기 앉은 아가씨가 니 스타일이 아닌 거 같은데, 서로 바꿔줄까?”
하였다. 동시에 나도 그쪽 아가씨를 쳐다보니, 아주 오래 전에 좋아했던 두툼한 입술에 매력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내 곁에 이미 팔짱을 끼고 정겹게 붙어 앉은 아가씨를 내려봤다. 날씬한 몸매에 치아가 좀 덧니로 나와있었지만, 눈이 크고 예쁜 탓에,
“아니야, 이 아가씨가 내 스타일이야.”
하며 손사래를 쳤다. 딱히 내 맘에 안 들어도 물릴 수는 없을 일이었다. 기본적인 예의차원에서라도 말이다. 무슨 대단한 사람을 위한 짝짓기 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 사는 배우자 고르는 것도 아닌데 이 친구 오늘 따라 주책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 방한동안에 전화를 할까말까하는 여인네들이 둘 있었지만, 모두 다 정인이라고 할 것도 없는 사이가 이미 돼버린 사람들이다. 전남 광양에 내려가서 만나 보려고 생각하였던 사람은 무려 35년 전의 첫 정을 준 여학생이었고, 수년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고문한 끝에 결국 인터넷을 통하여 작년 가을 기적적으로 찾아 내었다. 반가운 맘에 두 달 반 동안 스무 여 차례가 넘게 그 동안의 소식을 묻고 답했는데, 올 초에 전자 연하장을 주고 받고는 그만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 더 이상 가다가는 다 늦게 큰 일이 날 성 싶었나보다. 그 후로 나는 두 어 차례 무슨 일이 있느냐라는 식의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도 그녀를 이해해 주기로 하였다. ‘그래, 싫으면 싫은 거지. 지금에 이르러 뭘 더 바라겠는가? 지금 잘 살고 있으면 될 일인데.’ 하며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다. 허지만, 그녀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가 호주머니에서 심하게 구겨지고 있었다.
다음은 D신문사에 있는 중견기자인데, 뉴욕에 일 년 동안 파견 나왔다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만났다. 반년이 넘도록 깊은 정이든 듯 하였지만, 어느날 귀국을 할 즈음에서 모든 걸 다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던지 홀연히 고무신발을 돌려 신고 말았다. 나한테 남겨진 찌꺼기 정은 어찌 하라고.
이런 판에 이런 사람이면 어떻고 저런 사람이면 어떨까하는 맘이 지배적이었고, 하루저녁 나절 즐겁게 노래하고 얘기하고 춤추면 되었지, 뭘 더 바랠 수가 있을 일도 없었다. 첫 곡으로 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부르면서 부르스를 췄다. 그런 대로 그녀는 네 박자를 맞추는 정도로 흥을 돋아줬다. 그리고 모두 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고, 다시 한 시간을 연장하고서는 노래를 부르다 맥주를 마시며, 허접한 얘길 나누다가는 저쪽 팀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연신 같이 어울러 이런 저런 춤을 췄다. 지르박의 원조인 스윙이나 룸바를 알으켜주면서 재미있게 어울렸다. 두 손만을 잡고 추다가, 때로는 앞 뒤로 포개여 양손을 잡고 추고, 서로 마주보고 스텝을 밟다가 어느 순간 그녀의 머리에 내 얼굴이 깊이 묻혔다. 순간 엷은 향내가 코에 들어 오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포근함이 밀려왔다.
“샴푸 내음이 너무 좋다~. 그리고 거긴 눈이 참 예쁘고~.”
그녀는 대답대신 나즈막히 음~ 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왼 팔을 바짝 더 끌어 당겼다.
“오빤 참 젊게 보이는데, 저기 저 오빠가 친구 맞아? 훨씬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데?”
“음, 비슷해.”
“오빠가 한참 덜 먹었지? 오빤 너무 미남이고 노래도 잘하고 잘 놀고 얘기도 잘하네. 미국에서 오랜만에 왔다는데 오늘은 어디서 자?”
“응, 집에서 자야지.”
“에이구 참-. ”
“사실은 여기 증인이 있으니 외박도 못하고 동생네 아파트로 가야지.”
“그럼 자기 핸드폰 내봐. 내 번호 찍어줄께. 내가 먼저 전화를 할 수는 없잖아.”
“난, 여기선 핸드폰이 없지. 동생 핸드폰에 찍을 순 없고---.”
그녀는 잠시 밖에 나가더니만, 전화번호하고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살며시 넘겨줬다.
“언제 전화 할지도 모르겠는데. 몇 달, 아니 일 년이 될지도 말야.”
“좋아요. 언제고 기다릴게요.”
그리고 새벽 2시 반 무렵 노래방을 나왔다. 그녀의 아쉬운 눈빛이 내 눈에 가득히 어렸다.
“음 근데, 오빠 이름이 뭐야? 성은 알아도--.”
“Andy야.”
그녀는 몇 차례 뇌까리고 문까지 따라 나와서 마구 손을 흔들며, 꼭 전화를 해야한다고 연신 다짐을 하였다.
동생네 아파트에 와서 좀 씻고 들어 누우니 과음을 한 탓에 피곤함이 무겁게 엄습해왔다.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게슴츠레 눈을 내려 뜨고서, 그녀가 건네준 메모지를 잠시 펴 봤다.
‘이미소, 011-9968-XXXX’
그녀 나이는 35살이고 지금은 싱글이라고 하였다. 고향은 전남이다고 하여 나는 전북이라 말했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한 전 지식이다. 아, 노래부르기를 좋아해서 한 때 가수지망을 꿈꿨다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투는 유난히 달콤하였다. 그때그때 적절하고도 가벼운 스킨십도 곁들인. 옛날 군대시절 '고향집'의 옥란이 생각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하루밤 욕정을 채우려고 기를 쓰고 꼬이려 하지도 않았다. 서로 부담 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재미있게 얘기하며 몇 시간을 같이 하였을 따름인데, 그녀는 나한테 뭘 바랬을까? 혹 돈보다 객지에서 뜨내기 정이나마 따뜻한 남자의 정이 그리웠을까? 하룻 저녁 나절 같이 한 풋정도 정이런가? 귀국을 한 후에도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와 결코 싫지않는 스킨십이며 나근나근한 그 몸매가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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