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사랑 타령

누가 날 기다리라고 하였남?-1

바람거사 2010. 8. 24. 20:30

 

2007년 6월말 다녀온 캐나디언 록키 투어 마지막 날에서야 내 눈에 들어왔던 사람에게서 이제나 저제나 소식이 오길 기다려 온지도 반년 넘게 세월이 흘렀다. 그녀의 호기심에 가득 찬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의심할 여지도 없이 꼭 연락을 해줄 거라 굳게 믿고서 내 이메일과 카페를 어찌 찾아오는 것만 알려줬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 흔하게 주고받는 이메일 주소를 묻지 않았는지 후회가 막급하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야간열차에서 만났던 어느 여고생과 밤새 얘길 나눈 끝에, 서울에 가서도 다시 만나고 싶어서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미적거리다가 전해주지 못하고 서울역에서 낮선 사람마냥 헤어지고 말았었다. 그 후로 다시 만날 때까지 석 달 동안 얼마나 후회를 했었던가. 그때도 다시 찾을 만한 확실한 근거가 있었던 건 아녔다. 이름도 모른 채 가슴에 단 학교 배지와 2학년이라는 사실과 J시에서 서울 가는 밤 11시에 출발하는 준급행을 탔었기에 막연히 그곳이 그녀의 고향이라고 생각했었다.

 

며칠이 지나서 불현듯 유일무이한 방법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K여고를 다닐 정도면 당연히 J시에서는 J여중을 나왔을 거라 생각하고서, 마침 그 무렵 그 학교에 다녔던 동생을 통해서 2년 전에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 K여고로 진학한 학생 명단을 알아봐달라고 하였다. 많아봤자 두 엇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두 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중 한 사람이 틀림없는 그 여고생이라 생각하고 한 사람에게 반 표시 없는 막연한 편지를 보내면서도, 너무 좋아서 길길이 뛰었다. 허지만, 그 때는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각본이었지만, 한 달 만에 극적인 재회가 따랐었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연락이 바로 올 거라 꼭 믿었는데, 일주일, 한두 달, 그리고 반년이 넘어서면서, 기다림은 짙은 안개처럼 피어올랐고 언제부터인지 짜릿한 그리움으로 바꿔졌지만 반가운 소식은 결코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 끝에 경찰 고위간부로 근무하는 군 동기생한테 연락을 하여, 아주 막연하게, 30년 근속 경관 중에서 성이 이 씨인 여자를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리 썩 내키지 않은 맘으로 모처럼의 부탁을 거절치 못하고 검색을 해본 모양인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녔지만 실망을 하였다.

 

이제 남은 방법은 밴쿠버에 있는 그 여행사에게 오해 없도록 잘 설명을 하여, 당시 손위 동서와 같이 산호세에서 온 다른 여자의 이름과 무슨 연락처라도 알아내는 거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여행사에서는 개인 정보 유출이라는 법규를 어기는 일이라며 알려줄 수 없다면 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행 중 찍어 준 디카사진을 보내준다는 구실로 어떤 연락처라도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때 가이드를 하였던 직원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지금은 계속되는 일정으로 시간이 없으니, 비번이 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몇 주가 또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다른 직원이 이 메일을 확인하여 수고스럽게도 그녀의 이름은 물론 부군의 이름까지 알려주면서, 지금 산호세에서 공부를 한다는 아들의 전화번호도 알려줬다.그런데 그녀의 성은 뜻밖에도 이 씨가 아녔다. 그러니 지난번 부탁한 조회가 될 리가 없었다. 예전에 시댁이 있는 산호세에서 3년 동안 살았었기에,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따서 미세스 리라고 그냥 알려줬던 거였다.

 

어째튼 이번에는 틀림없이 조회가 될 거라 믿고서, 다른 경로를 통해서 그녀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근속햇수를 20~30년으로 범위를 넓혀서 부탁을 하였는데, 신원조회를 전문으로 하는 담당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래도 찾질 못하겠다는 연락만 되돌아왔다.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아니, 경찰에서 그 정도의 입력으로  찾지 못한다는 건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시 부탁을 하여 잘 좀 찾아보라 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반년이 휙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산호세에 있다는 딸이 작년 봄에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는 얘길 하였는데, 이건 서로 인사치례로 나눈 말이라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또 여행 중에 마지막 휴게소에서 그녀가 수첩을 꺼내 보이며, 시카고 근교인 엘크 그로브에 친구가 산다고 하면서 아직 시카고엔 못 가봤다고 하였지만, 정확한 주소도 모르니 그 역시 도움이 되질 못하였다. 그냥 건성으로 타운 이름만 잠시 스쳐봤을 뿐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마지막 남은 희망은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를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전화를 하여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이 니 엄마의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 따위를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먼저 전화번호로 사람을 찾아주는 사이트에 의뢰를 하여서 주소와 이름을 받았는데, 그 동안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는지 소유자가 한국성이 아닌 외국인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 연락이 왔다. 이렇게 해서 결국 모든 게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제는 단지 마지막으로 부탁한 친구로부터 제대로 조회가 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일인데, 분명한 건, 그녀는 내가 알려준 내 카페에 로그인을 하지 않고서 들락거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그 동안에 기다리고 그리워한다는 나의 글을 보면서 그녀는 뭘 생각했을까? 아마도 이제는 그 때 여행 중에 잠시 들떴던 그녀의 맘은 다 사그라져 평상심이 돼버렸기에 그냥 씩 웃으며,'누가 날 기다리라고 하였남?' 이라고 뇌까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도 한편 이렇게 반문을 해본다. 왜 그토록 그리워했을까? 난생 첨으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드높은 록키의 산악, 사이사이로 여울져 흐르는 강, 태고의 신비한 옥색이 물들여진 호수며, 하늘에서 내리꽂은 듯한 푸른 숲 등에 푹 빠져버린 나에게, MP3 플레어에서 흐르는 낭만적인 사랑의 노래까지 더빙이 되어, 한 없이 부풀어진 나였다. 게다가 뒤 늦게서야 내 눈에 들어왔던 그녀와 같이한 그때의 분위기를 더욱 그리워한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