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여행 이야기

지중해 크루즈 하이라이트(VII 종편)

바람거사 2012. 1. 4. 09:58

 

테네를 오후 5시 45분경에 출항한 배는 20시간동안 그리스 남단을 돌아서 아드리아틱 해를 따라 그 다음날 오후 1시에 베네치아에 기항하였다. 베네치아는 지난 2008년에 서유럽 일주 투어로 들렀을 때 Inland투어를 하였기때문에, 이번에는 그 대신 주변의 Lagoon을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기로하였다.

 

 그리스 남단을 돌아서 북서 방향으로 선수가 바꿔지면서 석양을 바라볼 수있었다.

 

 

 보통 12시간의 항해를 하여 이른 새벽, 다음 목적지에 접안한다. 그러나 아테네에서 베네치아는 6시간

더 항해하는 탓도 있지만, 이번 크루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의 밤이 되어 버라이어티 쇼나 영화 등을

두루 즐기면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British Invation' 이라는 초호화 버라이어티 뮤지컬 쇼는 하이라이트! 각기 다른 나라출신의 댄서나 싱어들이 잘 조화가 되어 멋진 쇼를 보여줬는데, 의상이며, 무대설비나 조명등은 최고급 수준이었다. 그리고 주역으로 나온 두 남녀 싱어는 둘 다 미국출신이었는데, 그들의 노래실력은 대단하였다. 그때의 아쉬움과 여운이 지금도 남아서 들리는듯하다. 또 다시 Star Princess를 조만간 탈 기회가 없다면 두 번 다시 이 환상적인 쇼를  볼 기회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플래쉬가 없이 사진이나 비디오촬영이 가능하여 여러 컷을 올렸다.

 

 다음날 호후 1시가 가까워지고 베네치아의 전경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었다. 저 아름다운 풍경은 항시 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있을 터인데, 우리는 3년만에 다시 그 풍경을 다시 보는 감격을 갖어본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이곳에 크루즈 선박이 접안을 못하게되어, 이곳에서 북쪽으로 좀 떨어진 베니스 항구에 접안을 하고 다시 소형선박으로 이곳으로 이동이 되어야할 거란다.

 

 크루즈선박에 작은 유람선이 다가와서 관광객들을 싣고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성 마르코의 광장에 있는 탑은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우뚝 서있다.

 

                      Lagoon 투어중에 만난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사람들. 개도 우리가 탄 배를 쳐다보고있다.

 

 Lagoon에는 나무기둥을 박아서 물길을 정하고, 교차로가 되는 곳엔 신호등이며, 작은 섬이나 이곳 공동묘지 등으로 가는 정류장같은 선착장이 있는데, 소형선박들을 시내버스같이 운행하여 편하게 구경 다니는 배낭족이나 개인적으로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여기 보이는 무슨 성같이 보이는 건 공동묘지인 San Michele Cemetery의 정문인데, 베니스에는 수상도시라 묘지가 없기때문에  19세기초까지는 베니스 시내의 도로밑에 묻기도 하였단다. 그러나 비위생적이고 더 많은 매장지가 필요함에 따라서 근처의 조그만 섬을 묘역화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묘지로 쓸 땅이 한정 되어있기때문에, 예전에 묻혀 장식된 묘지를 제외하고, 지금은 보통 5년동안만 매장을 하였다가, 10년 단위로 화장을 하여 유골을 납골당에 보관하도록 한다고하였다. 

 

두 시간 정도의 유람을 끝내고 정박을 한 배로 돌아와서 부페식을 하고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두어시간의 자유시간을 이용하여,가방, 시계 등 온갖 선물용 잡화를 파는 세네갈, 인도, 파키스탄 인들이며 수 많은 여행객들이 북적거리는  긴 부둣가를 지나서예전에 한나절동안 구석구석을 들렸던 성 마르코스광장 근처를 이번에는 가벼운 산보를 하며 둘러보기로하였다.

 

 

 카사노바가 괴씸죄로 총독관저옆에 있는 감옥에 5년동안의 형을 받고 들어가던 가교 아래로 지금은 곤돌라를 타고 샴페인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며 유람을 한다. 그런데, 카사노바는 1756년 이 요새같은 감옥에서 유일무이하게 그와 관계를 맺었던 어느 간수의 아내의 도움으로 탈옥하여 파리로 도망하였고, 프랑스, 독일, 스위스, 스페인,피렌체, 로마, 등을 전전하다가 종내는 다시 베네치아 당국의 허락을 받아서 그곳에서 살면서 베네치아 종교 재판관들을 위한 첩자 노릇을 했고, 또 보헤미아의 둑스 성에서 발트슈타인 백작의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말년(1785~98)을 보냈으며 73세에 죽었다. 하여튼 그는 수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갖었지만, 헤어진 후에도 그를 좋아하고 따랐다는데 그의 탁월한 언변이며 처세술로, 이탈리아의 성직자, 작가, 군인, 첩자, 외교관 등을 지냈다. 특히 가명으로 쓴 그가 죽은 뒤에 12권의 〈생갈의 J. 카사노바 회고록 Mémoires de J. Casanova de Seingalt〉(1826~38)으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원래의 원고에 바탕을 둔 결정판은 1960~62년에 〈나의 인생 이야기 Histoire de ma vi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다시 찾아 온 성 마르코스 광장에서-

 

광장앞 비들기의 무리앞에서 집사람이 포즈를 잡았는데, 카사노바의 얼을 갖은 놈인지 뭔지, 비둘기 한 녀석이

감히 집사람 머리위에 냉큼 올라 앉았다. 나는 서둘러서 이 컷을 찍었는데, 집사람은 순간 당황하여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고, 우리는 이 사진을 보며 두고두고 웃어댔다.

 

          6시전까지 승선을 해야했기에 배가 정박한 곳으로 돌아 오면서, 맥주 큰 거 두어 캔을 샀고, 한 캔을

         마시니 얼굴이  붉으스레하게 취기가 올랐다. 저멀리 석양에 물들러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세 번이나

         온 이곳을 이제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라고 자문해봤다.

 

     석양에 잠겨버리는 베네치아. 배는 6시가 넘어서도 출항을 하지못했다. 마지막으로  젊은 couple이 손을 잡고

      막 뛰어 오고, 발코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이곳에다 떼어놓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말이다.

 

             새벽 5시에 공항으로 가는 길-. 이제 몸과 맘은 피곤해지면서, 집생각이 절로난다. 아직도 아직이지만,

             맘은 벌써 시카고로 날라갔다.

 

 

베네치아 공항을 이륙하여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수많은 인파속에서 1시간도 넘게 출국수속을 하느라 기다리다가 드뎌 이륙하였고,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또 두시간을

기다리면서, 대서양을 날라갈 KLM소속의 보잉 747을 바라봤다. 그런데, 여행 며칠전에 재확인을 하지 않아서 같은

기종이라도 타입이 바꿔지는 바람에, 우리 부부의 좌석이 우리도 모르게 앞뒤로 갈라져있었다. 무지 황당하여 기분이

몹씨 얹짢아 항공사 직원들과 실갱이를 하였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이제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기회는 기내에서

내 자리의 좌우 승객들로부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바꾸는 일인데, 탑승을 기다리면서 스트레스가 뇌수를 점령하여

여행의 마지막 황금시간을 구겨버렸다. 얼마후에 두 사람한테 부탁을 하였는데, 복도쪽에 있던 성직자 차림의 중년남자는 재고없이 비좁은 좌석에서 들락거리는 게 싫다고 강력하게 NO!, 성직자가 배려도 없다는 나의 푸념이 따랐다.

별 수없이 포기를 하고 앉아 있는데, 뒷좌석 집사람 옆에 앉는 20대초반의 젊은이한테 부탁을 하였다. 

그는 바로'YES!', 너무 황송하여 탱큐를 연발하였고, 이번 여행내내 껌같이 붙어다녔던 아줌씨옆에 다시 들어붙어

대서양을 날라왔다. 참내--.

 

 

 암스테르담의 쉬펄 공항에서 이른 아침에 이륙하여 기수를 서쪽으로-. 아직 플랩이 다 오르기 전에 바로 아래 기름탱크와 증기가 피어오르는 정유소도 저멀리 보이고 이리저리 뻗은 수로가 많이 보인다.

 

 

 

 

 

드디어 10시간의 비행끝에 정오무렵,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안착을 하였다. 매번 여행을 떠날 때는 만약의 유고에 대비하여 아들이나 딸애한테, 중요한 정보를 빼곡히 적은 수첩과 열쇠꾸러미를 넘겨줬다. 이번에는 아예 유언장을 만들어서 개인금고에 넣어뒀었는데, 다행히 무고가 되었다. 긴 휴가를 다녀오면, 지친 몸을 쉬기위한 휴가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이틀 정도 여유를 두고 돌아오면 'Back to the reality' 하는데, 완충이 된다. 지금은 쉬고 싶은 생각이 다 지만, 시일이 좀 지나고 피곤이 가시면서 그 피곤했던 여행은 우리의 뇌수에서 잘 숙성이 되어 아름답게 재구성이 된다. 그 동안 찍은 2,000장의 사진을 정리하고, 또 기록으로 남길 걸 정리하고나면, 그 2주동안의 여행이 벌써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여러 곳을 기항하여 수박 겉핣기 식으로 반 나절만에  둘러봤지만, 언제고 상세하게 다시 꼭 여유를 가지고 둘러볼 계기를 만들었다는 면에서도 꼭지를 틀었다.' 라는 생각으로 바꿔진다.그리고 이런 긴 여행중에 그 동안 바삐 사느라고 다 못했던 이런저런 얘기도 수없이 나누며, 죽으나 사나 같이 붙어 다녔던게, 가장 값진 일이 아닐까? 이제 세월은 또 곤두박질하듯 흘러서 두어 달이 지나면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인상이 깊었던투어 가이드의 얼굴이며 어투, 그리고 숨막히게 아름다운 아말피의 절벽같은 데가 간간히 떠오른다.(*)

La Playa.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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