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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마당/세상사는 이야기

과기부 장관 추천에서 낙방한 어느 재미동포의 일언

by 바람거사 2012. 2. 6.

                           과기부 장관 추천에서 낙방한 어느 재미동포의 일언(02/25/2003-한겨레)

 

 

 

나는 1972년 대학을 졸업 후, 1976 7 31, 4년반 동안 공군장교로서 군 복무를 마치고, 곧바로 H 건설회사에서 근 3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열심히 벌어 모와 마련한 200만원짜리 전세집이나마 연로 한 부모님한테 물려준 후, 나보다 좀 일찍 미국에 들어 간 아내가 월부로 끊어 보내 준 568불짜리 편도 비행기표에 빌린 돈 400불을 검어쥐고, 1979 3 23, 김포공항 출국 장을 죄지은 사람 마냥 빠져나갔다.

그리고 긴 세월 주경야독으로 일리노이 공대 대학원에서 로봇 자동제어 및 기계 설계를 주 전공을 하면서, 10 여 년 동안 몇 군데의 생산업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1990년에 이르러 개인 엔지니어링 컨설팅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 해 이민을 떠나온 지 11년만에, 중소기업 진흥공단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기술자문을 하기 위해서 한국방문을 시작하였고, 그후로 IMF의 구제금융을 수혈 받기 바로 전 1996년까지 7년 동안 일 년에 한 두 차례 기계 전자부문에 관련된 여러 회사들을 자문하면서, 실제적으로 안고있는 생산현장이나 기본 설계 및 자료, 교육부재의 많은 문제점을 들쳐보게 되었다.

 

과학기술 강국의 입지를 다진다 라는 과제야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누구든지 내걸 수 있는 슬로건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실천 가능성이 높은 정책을 세우는데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예전에 비하여 한국에서도 기업들이 학계와 연결이 되면서 연구의뢰를 보다 많이 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기업이 바라는 경쟁력이 있는 연구를 학계에서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실무경력이 별로 없는 고급 인력들은 학계에 편중되어 있으며, 모두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자신들은 연구개발이나 신 학문 습득에 최선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도 과욕을 부리며 학생들을 호되게 부리면서, 국내 및 외국 학술지에 자기 이름석자는 제일 먼저 실리게 하는 편법적이고 아전인수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알게 모르게 젖어있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

이러한 한국적인 풍토를 바꾼다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또 수 십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바꿔질 일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구현도 대중의 참여가 기본이 되지만, 결국 소수의 엘리트들의 사고 방식과 그들 나름으로 수렴한 정책에 의해서 꾸려지는 걸 감안한다면, 그런 소수 엘리트들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언급을 재차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당연히 과학기술분야에 있어서도, 오늘날에 이른 과학기술 선진국에서의 수평적 사고 방식에 의한 실무경력과 폭 넓은 컴퓨터 응용지식 내지는 최신의 엔진이어링 지식으로 중무장을 한 안목으로 글로벌시대의 경쟁에 뛰어들 준비가 된 새 인물이 필요할 때 라고 생각한다.

오랜 이민 생활에서 한국은 한시도 눈을 띌 수 없는 나의 조국이었다. 그 동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하나로 선진 대열에 들어설 무렵, 불행하게도IMF 구제금융의 수혈을 받아 회생이 되었고, 또한 이곳에서 모시고 있는 부모님과 나는 가계 파산의 일보직전에 동생의 가정을 회생시켰다. 그리고 나의 컨설팅이 한국의 실정에서 어떻게 적용이 될 건 가를 염두에 두고, 인터네트가 실용화되던 시절부터 단일 일간지 구독을 끊어버리고, 정치, 경제, 문화, 정보과학 등 다방면으로 각종 미디어에 비집고 들어가서 세심하게 훑어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면에서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한국인들이 소홀하기 쉬운 문제, 또 이런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면 하는 바램에 대해서 많은 점을 느끼게 되었지만, 모두들 살아 남기위하여 세태의 흐름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명제를 감안한다해도, 한 나라의 총체적 책임을 지는 장기 정책이 이뤄지기위해서 감히 몇 가지 개선을 해야 할 여지가 있는 분야를 말씀드립니다.

- Nepotism의 배제:
유교의 오랜 전통으로 물들어 온 한국사회에서는 능력이나 실력보다 장유유서의 종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하고 싶어도 말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체면유지에서 오는 폐단이 팽배해 왔고, 일제시대와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살아 남기 위한 어려운 과정을 겪다보니 기회주의적 의식까지 편승하게되었다. 결국, 그 모든 총화로 학연과 지연으로 끼리끼리 밀고 끌어주는 전근대적인 네포티즘(Nepotism)이 자연스레 형성이 되었는데,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력과 능력 위주의 인선이 요구되어도, <개방된 형평성>을 겉모습으로만 코팅시켜 놓고 아직도 사회의 모든 면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의 특정 그룹들에 의한 왜곡된 병폐가 만연 되어있다.

작가 전여옥의 <대한민국은 있다>에서도 지적한 일례로, 지방 대학을나온 수모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유학까지 다녀와서 변호사가 되었는데도 이미 끼리끼리 쳐 놓은 그 단단한 벽을 허물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학계나 재계, 정계, 특히 언론계에서는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절대다수로 지도층에 앉아 있으니 그 세력 유지를 위하여 왜곡된 일이나 기만을 하는 일을 하면서도, 문제는 그게 이 사회의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합리화 해버리는 데 있다. 특히 보통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알게 모르게 변화시키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주요 언론기관들의 야누스적인 발상은 항시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추파를 보내며 들어 붙어서, 강준만 교수의 얘기처럼 문화폭력을 휘젓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구태의연하게도 사전에 확실한 자료에 대한 조사도 없이, 사회의 모든 면에서 실무를 담당한 전문인보다는 형식적인 권위에 매달려 철 밥통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일부 학계인사를 내세워 탁상 공론 적인 사후대책을 논하게 하는 편협한 오류를 범하고있다. 물론 언젠가는 시행착오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바람직한 사회의 흐름이 조성되겠지마는, 사회의 흐름이나 대인관계를 <상선약수>식으로 정의하고 안일한 세월만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물의 흐름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라면 들어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 경쟁력이 있는 인프라 확보:
인터네트를 통하여 이제는 누구든지 세계 어느 나라는 물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과학기술, 문화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무엇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이고 분야인지 잘 간파할 수 있다. 특히 과학 기술 입지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실무경력이 단단한 전문인들이 정책수립을 하는 위치에 있어서, 과학 선진국과의 최대 정보교류를 해야되며, 국내 이공계출신들의 실무능력을 국내의 특성에 따라서 전문분야가 제 각기 특성을 가지고 튀게 하는 풍토를 지역별로 잘 조성해야한다. 이 얘기는 단지 이공계에 대한 얘기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대학의 종합적인 평가 외에 전공에 따른 학교 평가 역시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 한국에서 공부를 한 절대다수의 이공계 출신 고학력 자들이 학계나 산업계에 진출하는 일이 대단히 힘들다고 한다. 이런 차별적인 이유는 바로 국내에서의 교육의 질이 사실 탐탁지않다는 얘길 간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경기의 침체와 맞물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들어 간 많은 고학력 자들이 넘쳐서 어느 분야든지 직장 잡기가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불과 3년 동안에 박사 학위를 끝내고 오는 사람들을 대단한 수재인양 치켜 올려주는 미디어들의 좁은 소견이 국민의 의식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이룬 업적을 대단한 것으로 쳐주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필요한 전공만을 후닥닥 하다보니, 좀 폭이 넓어진 질문에 대해서 내 전공이 아니라고 지레 발뺌을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많은 유학생들이 다 그런 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5년 내지 10년이란 세월을 아파트- 강의실- 도서관을 잇는 삼각지대만을 돌다 오기 때문에, 영어는 물론 이거니와 미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원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일이라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더우기 요새는 직장을 얻으려고 수 백 통의 이력서를 뿌려도 인터뷰를 하자는 데는 서너 건에 불과하다. 인터뷰가 더 중요한 과정인데, 일차로 전화 통화로 하고 다시 최종 면담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직장을 잡는 일은 이곳 미국인들도 어려운 일이다.비하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과연 전화를 통해서 원만하게 자기 의사를 밝히고 묻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결국 도중에 포기를 하고 한국에 들어가서는 개인의 자존심에 지극히 흠집을 내었던 과거는 불문에 부치고, 학위 자체만을 내세워 구태의연한 노트정리를 신주단지 모시듯 움켜쥐고 똑같은 강의를 되풀이하면서 <정중와>의 길을 간다.

미국의 경우를 한국의 경우와 연관하여 비교를 할 수는 없겠으나, 이공계 출신의 고 학력 자들이 주로 국립연구소 내지는 산업계로 진출하며, 학계로의 진입은 사명감을 가진 최고의 엘리트 그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최하의 우선권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많은 아시아계의 유학생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자국으로 들어가는 걸 꺼린 나머지, 산업계로 먼저 눈을 돌려보지만, 연구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고학력자를 필요로 하는 입지가 좁아지는 면도 있으나, 아직도 언어장벽에 부딪히고, 미국사회에 적응이 되는 데 필요한 생활인으로서 자질이 갖춰지지 않아서 그 대열에 끼질 못한다. 그래서 봉급이 턱없이 낮게 책정이 되는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학계로 가기 때문에, 조금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대학원은 온통 외국인 출신 교수로 채워져 있다. 미국정부에서는 그런 국지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민주주의도 알고 보면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서 유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굵직한 연구소의 수석 책임자며 대학교의 총장, 단과 대학학장, 학과장은 주로 백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소수민족은 미국에 들어와서 나름대로 물질적인 풍요에 젖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소위 상류사회로 튀는 출세에는 별 신경을 쓰지 말라는 얘기로도 통한다고 할까?

- 각기 특징을 살린 소규모 연구시설의 확보:
기초과학은 물론이거니와 이공계통의 소외는 가장 심각한 인프라 부족을 부른다. 비오는 날을 위한 준비 없이 어느 순간에 과학기술입지를 단단히 하여 설계능력과 인적관리를 하루아침에 향상 시켜서 글로벌 경쟁대열에 낄 수 있겠는가? 80년대 말, 소형 TV CRT는 물건이 없어서 수출을 못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기업이 성공하려면, 잘 나갈 때 연구개발에 신경을 써야하는 ABC도 몰랐던 지간에 대형 CRT의 개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나머지, 막상 생산을 해야할 시기를 놓쳐 버렸다는 얘기가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근시안적인 발상으로 기업을 하는 업주는 없을 것으로 본다.

90년대 들어서 미국에서도 대형 연구소가 예산문제와 실질적인 실적부재로 그 비대한 살집을 많이 빼고 있다. 8년 전 시카고 근교에 있는 아르곤 연구소나 페르미 랩에서도 수많은 인력을 감축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제 3국 출신의 박사학위 소유자들도 많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IT 산업의 버블이 빠지면서 미국경제의 위축은 바닥을 치고 있다. 신문발표에 의하면,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던 한국 출신들의 고급 인력들이 고국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하였다. 그들이 돌아가서 연구를 할 직장이 있다면 천만 다행이겠지만, 한국의 경제도 그렇게 튼튼한 것도 아닐 일인데, 어떻게 그런 인력을 흡수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각분야의 특성을 살린 소규모의 연구소를 많이 설립 운영하면서 경험이 많은 전문인을 골고루 흡수하여 최고의 기술을 축적케 하고 단계별로 자립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 해줘야한다. 일례로 작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일본의 한 학사출신의 민간기업 연구원이었다. 연구개발이라면 주로 규모가 큰 연구소의 고급 부레인들이나 대학교에서 이름있는 학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관은 버려야할 일이다.

낙방거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