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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나라에겐 평화는 없다

바람거사 2019. 5. 6. 11:28

[김순덕의 도발]부국강병 포기한 평화타령 듣기 싫다


                                                            동아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19-04-30 14:32수정 2019-04-30 15:02

 

일종의 직업병이다. 놀러 가면서도 뭐 쓸 게 없나, 강박관념을 갖는 건. 처음 가보는 오키나와에선 23일 바다만 보다 늘어지게 자는 호캉스를 즐길 참이었다. 그런데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이라는 책을 본 뒤 휴가는 등산이 돼버렸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었다
구글에서 오키나와 관광을 검색하면 거의 맨 앞에 등장하는 붉은 궁전이 슈리성이다. 일본의 궁전은 붉지 않다. 도쿄의 고쿄(황궁)도 무슨 색인지 말하려면 궁해진다
2016년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을 쓴 요나하라 케이는 “경복궁을 보고 지붕 형태나 선명한 색채가 슈리성과 닮아 눈을 크게 떴다”고 적었다. 내가 본 슈리성의 색깔은 한국의 궁궐보다 붉다. 새빨강 랑콤 립스틱 같다. 오키나와가 일본이 아니었음을 슈리성은 온몸으로 말하는 
셈이다


                                           류큐왕국의 영화를 보여주는 슈리성. 출처 슈리성공원

1879, 그러니까 일본이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의 문을 열어젖힌 지 3년 뒤 ‘류큐처분’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합병하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이었다. 조선보다 일찍 중화제국의 세계 질서에 편입돼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누린 왕국의 찬란한 왕궁이 슈리성이다

●군사력 없는 류큐왕국의 비극
슈리성에서 눈을 크게 뜬 건 자칫하면 우리나라가 오키나와처럼 될 수도 있었다는 충격 때문이었다. 류큐왕국도 조선처럼 덕치(
德治)를 강조하는 ‘비무(非武)의 문화’였다. 지배계급은 오키나와말로 ‘유캇추’, 공식적으로는 ‘사무레()’라고 하는데 일본같이 칼을 찬 사무라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대부에 가까운 문사(文士)를 뜻했다

 

                                            류큐왕국 전통복장을 입은 남자들.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고 보면 조선이 600년을 살아남았다는 것부터 천운이고 기적이다. 우리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 중에는 임진왜란 때 차라리 나라가 망했어야 한 게 아니냐며 울분을 터뜨리는 이들이 없지 않다

왜놈들 침략에서 죽다 살았으면 그때부터라도 위아래가 똘똘 뭉쳐 부국강병(
富國强兵)에 힘써야 마땅하건만 이 나라는 경험에서도, 역사에서도 배우지를 못했다. 왕과 386세력 뺨치는 양반들이 자기들만의 이념과 권력투쟁에 매달리느라 세계적 흐름과 담을 쌓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조선이 오키나와처럼 됐을 수도…
그래서 이건 정말 상상인데, 임진왜란 때 조선이 일본에 정복당했다고 가정을 해봤다. 지금의 한반도는 일본처럼 바뀌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키나와가 보여준다. 임진왜란 뒤 힘이 남아돌아간 사쓰마번의 3000여 사무라이들은 실제로 1609년 류큐왕국을 정복했다. 군사력이 없는 류큐의 왕은 거의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개 사쓰마 번주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그리고 조공을 바친 역사가 이어진다. 류큐왕국은 일본과 한 나라가 되지도, 일본처럼 발전하지도 못했다. 그로부터 250여년 후 사쓰마번이 메이지유신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도 류큐의 수탈로 부를 쌓았기에 가능했다

●‘내부의 식민지’ 오키나와 차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국가의 길로 들어선 일본은 류큐왕국에 청과의 조공 책봉관계 정지와 일본 연호 사용을 강요한다. 중화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류큐왕국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꾀한 거다(중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뒤흔들어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을 꾀하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리고는 끝내 1879년 무력으로 강제 합병했다. 이름도 가증스러운 ‘류큐처분’이다. 2차 대전 막바지 미군이 상륙하자 일본은 “식량제공을 위해 주민은 깨끗이 자결하라”며 집단자결을 명령했다는 전쟁사는 끔찍하다

 


                                               1972 5 15일 열린 오키나와 본토 반환식.

27년간의 미군 점령, 1972년 본토 반환 이후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 ‘내부의 식민지’ 같은 차별이다. 오늘 퇴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오키나와 국민들이 견뎌온 희생의 마음’을 각별히 언급하곤 했지만 오키나와의 아픔은 쉽사리 사라지지 못할 터다

●우리에게 우리를 지킬 힘은 있나
구불거리는 언덕길 꼭대기, 불타는 색깔로 복원된 슈리성에 올라 소름이 돋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오에 겐자부로가 지적했듯 아시아의 중심이 일본이라는 ‘중화사상’은 그들에게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그럼에도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적과 맞짱 뜰 수 있는 군사력, 동맹과 힘을 합칠 수 있는 외교력 없는 ‘평화 타령’은 개수작에 불과하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다. 유사시 한반도로 출격할 수 있는 오키나와의 전술핵과 전투기 퇴거까지 포함된다

내일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와 함께 일본이 새 시대로 간다는데도 정부가 최악의 한일관계를 풀 태세를 안 보이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두어서가 아닌지 의문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장해제를 거듭하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하다. (*)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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