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여행 이야기

방한기 3: 부여/군산(5/1~ 4/2023)

바람거사 2023. 6. 22. 03:59

5/1(월): 07:20: KTX로 대구로 가는데, 동생이 서울역에 데려다줬다. 대구역에 처남이 마중 나왔지만, 주차한 곳 찾느라 잠시 헤맸다. 대구도 이제 옛날의 대구가 아니다. 서울과 같이 아파트 빌딩 숲의 도시가 되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오전에 처음으로 합천 해인사엘 들렸고 집사람은 여기서도 공양을 하였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절대 농지에 있는 처남의 농장에 가봤는데, 특히 처남댁이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있어서 잘 가꾸고 그곳에 농막도 지어놨다. 저녁에 모두 다 와서 푸짐한 식사를 하면서 소주도 두 잔 정도 마셨다. 잠자리는 처음에는 농막에서 하루 지내고 처가가 있는 황간을 거쳐서 부여로 가려고 했는데, 수성못 근처 수성 관광호텔에 180,000원이나 주고 예약한 방에서 단 하루 잤는데,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여로 가기 전에 합천 해인사엘 먼저 들러서 팔만대장경도 보고, 내려 오는 길에 동동주 한 잔을-]

5/2(화): 08:30에 Checkout하고 처남 부부와 같이 집사람 초등학교 동창과 만나기로 한 충남 영동군 상촌면에 있는 맛집, ‘청학동에서 자연산 능이버섯전골을 정말로 맛있게 즐겼고, 처가에 들려서 모두 같이 성묘-. 14:00 무렵에 부여로 출발-->15:00 공주 휴게소--> 16:00가 거의 다 되어 Lotte resort에 도착-->17:00에 부소산에 있는 낙화암/고란사엘 들리며 오르락내리락하며 어두울 때 내려왔다. 그리고 소문난 맛집을 찾아서 24km를 갔는데, 5분 전에 도착했지만 문을 닫았다고 하였다. 그 식당이 외진 곳에 있어서 훨씬 오래전에 닫은 거 같이 보였다. 별 수 없이 돌아오는 길에 딸기 한 상자를 샀지만, 바가지를 썼다. 군산에서 1만 원인 걸 1.3만 원을 줬으니 말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지도 않았던 어머니의 고향인 규암을 지나는데  울컥했다. “어머니, 어머니, 어디 계시나요?” 하며-. 부여읍내 마트에 들러서 물과 라면/소주를 샀고 10시 무렵에 잠자리에 들었다.

[처가에 가기 전, 초등학교 동창이 주선하여 만나기로 한 맛집에서 '천연산 능이버섯 전골'을 즐기고 성묘도 하였다. 대구시내나 합천으로 가는 길이나  부여가는 길가에 이팝나무 가로수의 하얀 자태를 인상깊에 즐겼다.] 
[인천 여동생의 배려로 롯테 리조트에 할인 가격으로 이틀을 머물면서 부여/군산을 돌아 볼것이다.]
[1976에  공군 전역 전, 이른 봄, 집사람과 소원해던 때인 어느 비오던 주말에 낙화암과 고란사를 혼자 들렸던 추억이 있는데, 47년만에 집사람과 같이 다시 들리는 감회가 따랐다. 그때 엽서를 보냈는데, 그걸 받고 맘이 아파서 바로 내려가고 싶었다고 하였다.]

 

5/3(수):  이른 아침에 지방도로 4번을 타고 장항읍을 지나면서 제련소 굴뚝을 보니 1967년에 어머니와 같이 화천 양조장에 들린 일이 생각나면서, 꿈에서라도 보고픈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차창밖을 쳐다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 페리 대신에 새로 만든 다리를 건너서 군산에 갔다. 군산에서 일제의 수탈을 상기하는 역사박물관 관람 후, 추억의 기찻길에서 나만 빼고 셋이서 고교 교복을 입고 사진 촬영/달고나의 추억을 되살렸고, 다시 부여 Lotte resort에 가기 전에 장항읍으로 건너가는 긴 다리 옆 수산 시장에서 사 온 횟감과 얼큰한 라면에 소맥을 즐기면서 이틀째 마지막 밤을 지냈다.

[처남이 숙소를 가는데 다른 길로 숙소에 가는 바람에 어머니의 고향인 '규암'을 지나가는데 가슴속에 시큰한 눈물이 주르룩 흐렀다. 그리고 1968년 어머니와 같이 처음 장항에 들렸을 때 봤던 추억의 제련소 굴뚝을 보니, 잠시 그 시절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점심은 1952년에 창업하여 196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전통있는 맛집에서 '군산 삼선짬봉'(해물)을 즐겼다.]
[군산의 명물, '철길마을'에 들러서 60년대 교복을 입고 추억의 가진을 찍었는데, 나는 교복으로 갈아입는 게 왠지 싫었지만,  멋있는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물론 교복 대여가게 전속 사진사가 사진을 짝어줬지만. 그런데 집사람이 너무 좋아했고 처남 내외도 물론 좋아했다.]
[그리고 추억의 '달고나'를 주인장이 시키는대로 직접 만들어 먹으며 추억의 철길을 걸었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시절에 인력거는 지금의 택시같이 다녔다. 집사람은 한복으로 나는 망또에 모자까지-. 그런데 일정때는 고등학교 과정이 중학교라 '고'자를 쓰지 않았을 건데-, 하여튼, 재밌다. 그리고 집사람과 처남댁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일경들이 총칼로 위협하는데 3-1 운동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또 지게로 쌀가마를 지는 모습도 재연하였다.] 

 

[짧은 일정이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장항으로 건너가기 전에 군산에 있는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생선회를 샀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모두 소맥을 즐겼다. 나도 같이 소맥잔을 들로 사진을 찍었는데, 다 먹지 못해서 버리는데 무척 아까웠다.]

 

[5/4 아침에 짧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사비성이라고 붙은 성문을 거쳐서 대전으로 출발하였다.]

부여 투어에서 부소산을 돌아보면 하이라이트를 본 거다. 백제시대엔 목조 건물이 많았고 또 나당 연합군에게 처참하게 멸망하여 모든 게 불타고 소멸되어서 큰 사찰도 궁궐도 주춧돌만 남아서 아쉽기 그지없다. 백제가 고구려 하고 연합을 성사하려고 했지만,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가 느슨했으며, 백제도 역시 당나라와 연합하려고 했지만, 고구려/당 전쟁 때 백제가 고구려를 후원하여 밉보였다. 그러나 남에서 고구려를 공략한 신라와 연합하였다. 결국 나당 연합이 이뤄졌고, 당나라는 고구려 앞바다를 항해하지 않고, 10만이 넘는 대군을 서해로 빠르게 보냈다. 백제는 서기 660년에 8일 만에 패하였고, 나당 연합군은 연개소문이 죽자 세 아들의 불화로 혼돈에 빠진 고구려를 그해에 멸망시켰으며, 신라는 고구려땅을 다 차지한 당이  한반도를 속국으로 만들려는 야욕을 물리쳤지만, 한반도의 반토막 영토를 확보했을 뿐, 고구려의 멸망으로 넓은 땅을 잃어버린 건 역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과오라 생각한다.

[5/4 아침 11시 14에 KTX로 대전을 출발하여 서울역에 12:15 도착하였는데, 숙소에 들리지 않고 막내처남이 바로  5/5 새벽 5시에 묵호에서 울릉도가는 쾌속정을 타기위해서 출발하였다. 부여/군산 일정으로 가져간 옷가방이 거추장스럽지만, 주문진에 오후 3:30에 도착하여 수산시장도 들려서 생선회도 샀고 또 한 잔하고서 초저녁에 멋있는 경포대 해안을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