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아침나절에 모처럼 쉬면서 사진 정리를 하였다. 오후에 남동생과 같이 구 동대문 야구장에 들어선 기념관에 갔고 동대문을 아주 오랜만에 둘러봤다. 그리고 저녁은 ‘마복림’ 원조 1호 집에서 라면이 들어간 특이한 떡볶이를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 황혼이 물드는 잠수교 근처 세빛섬엘 들렸다. 서울에 돌아오니, 울릉도에서 멈췄던 알레르기가 다시 생겨서 콧물/재채기가 다시 나온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하체 운동에 젤 좋은데, 미국에서는 그런 운동을 할 만한 데가 우리 타운에 있는 평지라 눈썰매 타는 언덕밖에 없다. 너무 심하게 걸으면 5년 전에 한 발목 대체 부위가 마모가 더 심해질 거고, 하루 10,000보 보다 6000~8000이 적당하다고 한다. 10년 후에 재수술한다면 아주 힘들 게다.
5/10(수): 서부 터미널->교대->당산(30분), 당산에서 막내 처남의 개인 택시로 일산 ‘명가원’에서 집사람 외사촌 자매와 오라버니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6년 만에 와보니 아픈 사람들이 주변에도 그리 많다.
<당산가는 중에 2호선 전철에서 일어난 일화>: 어떤 남자가 마시고 난 빨대가 끼워진 플라스틱 컵을 가랑이 밑에 내려놓고 하차하려고 하였나 보다. 그 시간대에 전철에 서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우리는 같은 쪽에 앉아서 보질 못했는데, 그의 앞쪽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거 가지고 내리시오-.”라고 하니까, “당신이 가지고 가라!” 하며 하차하려고 승강구 쪽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재차 “가지고 내려라!”라고 하니, “야, 씹 팔 놈아, 너 내려!”라고 하자, 전철이 서면서 문이 열렸다. 그러자 그 중년 남자는 쫓아 내리더니 밖에서 서로 윽박지르면서 삿대질을 하는 모습을 잠시 봤는데, 전철이 빠르게 움직여서 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승강구 쪽으로 성큼 걸어가는 그 남자를 힐끗 보니까, 행색이 마치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삭발한 머리가 조금 길고, 홀쭉한 배낭에 허름한 작업복을 입었는데, 순간 옆얼굴을 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험한 인상이었다.
5/11(목): 큰집 형님의 장손이 6시에 제사를 지낸다기에 만나도 볼 겸 참석하러 가기 전에 남동생의 도움으로 벽제의 한 요양원에 있는 치매가 왔고 걷는 게 부실한 87세 형님을 십수 년 만에 만나봤다. 휠체어를 밀고 부실하게 걷고 또 반가이 맞았지만, 어려웠던 옛 얘기만 당신 혼자 20여분 넘게 하였다. 이제 50대 중반인 장손이 최선으로 모셔서 요양원 시설은 1인 1실로 잘 꾸며진 거 같이 보였다. 그리고 형님이 평생 수산업계 공무원으로 근무하여 두 전 대통령한테 받은 상장도 현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사에 참석하기 전에 부평에서 여동생부부를 다시 만나서 점심 먹고 커피 타임도 가졌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할머니나 증조부모 제사는 큰아버지가 졸지에 경성에서 28세 나이로 급사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치렀다. 이제 큰집의 종손이 입사후 22년만에 외가에서 인수받은 사업체의 대표이사도 되었고 잘 운영하여 생활도 안정되어서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조부모 제사도 물려받았다. 제사 의식이 끝나고 포도주잔을 기울이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5/12(금): 오전에 세빛섬에 들렸다가, 오후에 3호선 전철을 타고 석계역에서 내려서 집사람 큰 올케가 사는 아파트에 갔고 같이 사는 아들 부부와 두 딸도 만났다. 그런데 전철을 타고 갈 때, 유난히 집사람도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 앞에 서있던 젊은 색시가 마스크를 얼른 쓰는 걸 봤다. 비바람 쳤던 울릉도 다녀온 후로 감기에 걸렸나 생각했는데 기침이 시작되면 한참 동안 콜록거렸다. 나는 미열이 좀 있고 가래가 많이 찼다. 남동생 부부가 약을지어다 줬다. 집사람에겐 기침 억제하는 약, 나한테는 가래를 멈추게 하는 약을. 그리고 도라지 생즙이 들은 패키지도 가져왔는데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5/13(토): 아침에도 집사람의 기침도 계속하는 걸 보니 예사롭지 않은 생각이 들었는데, 집사람이 미국에서 가져온 Covid-19 신속 검사 Kit를 꺼내면서 검사를 해보자고 하였다. 잠시 후 결과는 둘 다 양성으로 나왔다. 나의 시편에는 가느다란 줄이 나 있는데 그것도 양성이라고 쓰여 있고, 집사람은 굵은 줄이 나 있는데, 열은 없어도 기침을 자주 오래 하는 거로 봐서 나보다 좀 심한 거 같았다. 그럼 언제부터 걸렸나? 생각해보니 울릉도에서 5/8에 출항할 때 근처에 어느 남자가 기침을 자주 하던데 그때 옮았나? 4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치고 증상이 나타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좌우지간 5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외출 때는 마스크를 썼다. 동생 부부가 매일 오는데 감염되지 않나 우려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5번이나 vaccine을 맞았고 마지막으로 작년 초가을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을 때 cocktail로 Covid-19 vaccine까지 맞았는데 돌파 감염이 된 게다. 이게 미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와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이 달라서 돌파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사람은 당장 오늘 사촌을 만나러 가는 건 취소하였는데, 나는 5/15에 과 동기 모임. 5/16에는 몇 군동기와 대학 때 절친을 만날 약속을 했는데 어찌할까 망설였다. 5/12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는데, 기침이나 열도 없고 얼추 격리일이 끝나는 거 같아서 만나기로 하였다.
5/14(일): 집사람은 Covid-19 돌파 감염으로 아직 격리 기간이 애매한데 가지마라고 했는데도 기침도 좀 잦아들고 또 열도 없어서, 강남에서 수학 학원강사를 하는 큰 오라버니 둘째 독신으로 지내는 과년한 딸을 만나러 가고, 나는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있는 대성사라는 사찰까지 걷고 왔다.
5/15(월): 1시에 과 동기 모임이 있었다. 2호선 타고 선릉역에 가려고 하였는데, 남동생이 우리와 같이 숙소에 있다가 ‘반용산’까지 데려다줬다. 졸업생 22명 중에서 8명이 나왔는데 반은 50년 만에, 나머지는 6년 만이다. 지난번에 만났던 H는 폴란드에 계약근무, 다른 6명의 동기는 해외에 살고 또 4명은 지방에 가서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나하고 친했던 L은 오래전에 저 세상으로. 또 다른 2명은 행방불명. 하여튼, 이제 모두들 늙었다. 이리 만나면 너무 허무한 게다. 목소리를 들으면 아직은 그대로인데, 머리카락은 백발에 거의 다 삐지고 엄청나게 늙었다. 모임 주선한 S가 카톡에서 한 말이다. 앞으로 10년이면 50%는 저세상에 간다는데 자주 만나자고.
5/16(화): 오늘은 군에서나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동기를 만나러 전철 타고 가려했는데,, 아침에 동생 부부가 와서 11시까지 '가락시장' 8번 출구까지 30분 걸려서 데려다줬다. 눈에 익은 왕년의 최 중위가 출구옆에 서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먼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특기는 틀리지만, 구 공군 기술교육단에 같이 근무하여 나는 눈에 익었고, 그도 그러했겠지만, 좀 낯선 모양이다. 잠시 후 전자과 출신 술꾼 L이 왔다. 이번 모임을 주선한 하남시에 사는 친구 K가 SUV를 타고 왔는데, 내 집사람과 같이 오는 줄 알고, 탈 자리가 차서 미처 부르지 못한 K를 전화해서 나오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전자과 친구 N을 끼워 태우고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하여튼, 지난 4/15에 처남 부부하고 같이 갔던 곳을 다시 가니 낯설지 않았지만, 평일이라 한가한 ‘상아궁’에 들러서 식사하면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데, 최 중위와 이 중위는 와우! 밑 빠진 독 수준이다. 최 중위는 나의 ‘가족의 온도’를 읽으면서 가져왔는데 1쇄라 수정할 내용을 고쳐주고 사인도 해줬다. 그는 내 지난 생이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도 625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강원도에 살면서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내 삶과는 비교가 안 된다며 연신 감탄하였다. 이 친구는 세칭 KS 출신이다.
나나 다른 동기 둘은 조금 마셨고, 시원한 숲길을 좀 걷다가 하산하여 하남시로 갔는데, 그 밑 빠진 독인 둘은 한 잔 더 하자며 돌아다니는데, 술 파는 업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송파구 거여동의 ‘바닷속안주’라는 곳에서, 광어회, 멍게, 해삼에 소맥(맥주 640ml 8병+소주 3병)을 마셨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중국집에 가서 짬뽕/짜장을 먹으면서도 그 둘은 또 맥주 1병에 고량주 작은 병 하나를 더 마셨다. 겉보기엔 그 둘의 건강이 좋으니 다행이긴 하다. 전자과 친구 K는 목동에서 살다가 몇 해전에 하남시 창우동로 이사하였는데 남한산성까지 20여 분 운전 거리라고 하였다. 전자과 친구 N은 대전고 동문회에서 알았다며, 군에서나 서울에서나 억수로 묻어다녔던 김 중위가 놀랍게도 2007년에 급사했다고 하였다. 결혼 후 아내와 처제의 설득에 빠져 세칭 이단이라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지내는 동안, 내가 90년대 초 방한 때 대전 대림 오토바이 출장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내가 처가에 들렸다가 서울행 급행을 기다리는 2시간 동안에 영동까지 와서 30분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단지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살아있는 건가?
5/17(수): 집사람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인 고향 친구를 만나러 갔고, 나는 동생 부부와 같이 초가네 '남원추어탕'집에서 추어탕을 먹었는데, 들깨나 기타 내용물이 미꾸라지의 맛을 다 중화시켜서 제맛을 못 봤다. 어려서 호박잎에 싸서 불어 구워 먹던 그 맛이 생각났다. 식사 후에 우리는 과천에 있는 '국립 현대 미술관'에 다녀왔고 저녁엔 숙소에서, 동생 부부가 사 온 초밥 모둠에 나의 절친이 선물로 준 20년 숙성에 노란 레벨이 붙은 밸런타인 위스키를 마시며 맛나게 즐겼다. 역시 비싼 위스키가 순하여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고 동생도 맞장구 쳤다. 내가 매일 숙소에 오면 피곤하여 마시지도 못하여 동생한테 줬는데, 조그마한 병에 몇 잔이라고 마시라고 가져왔다.
5/18(목): 모처럼 우리 부부는 우면산 둘레길(9:30~12:30, 11,000보) 걷고, 돌아오는 길에 점심으로 전에 들렸던 '시골집'에 들러서 돼지 수육 볶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5/19(금): 12시에 사당역 13번 출구에서 고교 때 절친 S 부부를 10년 만에 시카고에서 만났고 한식당에서 식사 후에 커피집에 들렀다. 노모(97)는 엉덩관절 수술 후에도 정신이 좋아서 나를 만나러 간다는 얘기 하니 잘 기억하더라고. 그리고 오후 4시 무렵엔 동생 부부와 같이 이준 열사/ 4.19 묘역이 가까운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로에 있는 ‘대보명가’에 가서 약제로 만든 전골로 저녁을 먹고 왼편으로 북한산, 오른쪽으로 도봉산이 보이는 경치가 좋아서 1 시간쯤 걸었다. 그리고 64년도쯤 미아리 서편과 정릉 사이에 고모네 식구가 상경하여 어렵게 살았던 달동네 삼양동에 며칠 들렸던 추억을 떠올렸다.
5/20(토): 10:30, 여동생 부부와 같이 내 생일 축하 점심으로 샤부샤부를 먹자고 하여 신중동에 있는 ‘샤부향’으로 또 갔다. 식사 후에 매부의 아크릴가공 업소엘 갔는데 30년 동안 근무하는 두 종업원을 반갑게 만났다. 그리고 ‘100만 송이 장미 정원’에 가서 매우 아름다운 장미를 실컷 즐겼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남동생 부부가 잠시 나갔다가 오더니, 5/20자에 인터뷰한 내용이 인쇄된 동아일보 토요일판을 사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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