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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茶山丁若鏞)시조 "독소(獨笑)"

바람거사 2023. 8. 20. 00:32

[ 공군장교 64기 그룹 카톡에서 퍼온 글 ]

<방한중인 2023년 4월 18일에 방문한 "다산기념관">

💙 독소(獨笑) 💘, "홀로 웃다"

조선 정조때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이 1804년 유배지 강진에서 썼다는 시조 '독소(獨笑)'인데,  250여 년 전의 사회풍자 내용이지만, 지금의 세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곡식(조)이 많아도 먹을사람이 없고(자식이 많지 않아서)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자식이 많은 집엔 가난하여 굶주림이 있다

達官必憃愚 (달관필창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다.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집안에 완전한 복(福)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능지):
지극한 도(道)는 항상 쇠퇴하기 마련이다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부모가 절약하여 재산을 모으면 자식들은 방탕하고

婦慧必癡 (부혜낭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짓을 한다.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는날은 구름이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댄다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 ♧ ♧ ♧ ♧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세계사에 어떤 석학(碩學)과 견주어도 상석(上席)에 모실 분이다.
한국사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 “홀로 웃다(獨笑)”처럼(獨笑)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사다. 18세기 초반부터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을 개혁의 인물로 정조(正祖)와 다산 정약용 (丁若鏞) 선생이 등장하지만, 하늘은 조선이 행복해지는 것을 원치 안 했는지 개혁의 중요한 시기에 정조(正祖)를 하늘로 불러 올렸다. 따라서 이제 막  날개를 달아 일생의 포부를 조선의 개혁에 펼치려던 정약용의 날개도 꺾여 전남강진으로 18년 유배를 간다.

오늘날 허리가 잘린 반신불수의 한반도의 불행은

*개혁의 기치를 내건 인조의 세자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의 죽음과

*정조의 일찍 죽음(거사추가: 선조와 인조 포함)

*고종의 무능,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실패로 개혁 개방의 기회를 놓쳐 열강(列强)의 먹잇감이 된 것이고,
종내는 남북분단까지 이어졌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론분열(國論分裂)”이다.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은 명치왕(明治王) 때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의 막번체제(幕藩體制)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王政復古) 이룩한 국가변혁이다.

결국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양보를 하고 명치유신(明治維新)이 성공하여 오늘날 일본은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이 1868년부터 1880년대에 마무리되었으니까, 정조(正祖) (1752~1800), 다산(1762~1836)의 생()이 끝날 때가 일본의 명치유신과 비슷한 시기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시작하는 때에 조선은 안동김 씨 대원군 민비등의 권력다툼으로 패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산이 강진 유배 중에 쓴 책이 1000여 권, 그중에서 “경세유표(經世遺表)”라는 책은 참고자료에서 기존 제도들의 모순에 대한 뼈아픈 통찰과 지적을 남기며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도록 정치, 사회, 경제 제도를 개혁하는 부국강병을 이루는 데 목표를 두자는 내용의 국정개혁의 중요한 책이다.

일본은 선진국의 깃발을 달고 대륙을 넘볼 때에 조선은 권력 다툼으로 다산을 강진으로 귀양 보내 “앉은뱅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람은 큰 슬픔을 당하면 슬피 운다. 울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더 큰 슬픔을 당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허허~ 혼자 웃는다.

다산초당(茶山艸堂)은 단순히 강진만 바다가 넓게 펴진 아름다운 관광 유적지라 생각하면  안 된다. 한 인생의 포부를 짓밟힌 한 맺힌 곳이다. 그렇다고 “구천(句踐)이 오(吳) 나라에(吳)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 을 할 수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도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廣州) 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 다산박물관이 있다. 다산이 강진 귀양이 풀리고 바로 고향으로 가서  생가  당호(堂號)를“여유당(與猶堂)”이라 하였다. “여유당(與猶堂)” 은 노자(老子) 도덕경의(老子) 한 구절로 마치 코끼리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산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 시대의 위인 (偉人)이 갔다. 아직도 당파의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세상이 미칠 지경이 아니랴!  허허허~ 언제나 정신 차리려나!! 犬糞食衛 (견분식위 : 개똥이나 처먹어라)소리치며 먹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국민들은 보고 있다. 제발 더는 국민 팔지 말라. 썩은 정치인, 모든 저급 방송국, 언론사, 방송인, 언론인은 새롭게 태어나든지 아니면 이 땅에서 하루속히 사라져야 할 것들이다. 오늘도 허! ! ! 웃어야 하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