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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교토-나라-고베 투어: 5/30~6/2/2024

바람거사 2024. 6. 9. 16:59

그동안에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다녔지만, 한국에 와서도 가장 가까운 일본에는 가고 싶지 않아서 그 대신에 태국의 푸껫, 베트남의 하롱베이, 캄보디아 씨엡립 근교의 앙크로 와트/기타 유적지/폰레삽을 다녀왔었다. 그런데 3/20 방한 이후로 먼저 서울 근교와 강원도/ 충청도의 주요 사찰과 명소를 들렸는데, 한국에서의 체류 비자 유효기간이  90일이라 6/19에 끝나기 때문에 해외 나들이를 하여 다시 90일 연장을 하려고 동생 부부와 같이 오사카 여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떠나기 며칠 전에 동생 부부는 중요한 일이 생겨서 취소하여 별 수 없이 우리 부부만 다녀오기로 하였다. 이번 오사카 여행을 택한 이유라면, 그동안에 일본 정치인들이 독도/위안부/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으로 한국과 마찰이 있고 거사 또한 그리 생각하여 일본 여행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마지막 순위로 미뤄놨었다. 물론 대다수의 일본인들의 생활양식을 보면,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배려도 많고, 폐를 끼치는 일도 극도로 삼가고 전통을 지키는 점은 한국인의 정서와 판이하게 달라서 짧은 기간이나마 보고 느끼고 싶었다.  

- 3/30: 인천공항에서  3시 반에 이륙하였다. 여행은 잠자리와 먹는 일이 중요하여 하나 여행사를 통해서 좀 비싼 상품을 샀고, T'way 항공사를 통해서 1 시간 40분후에 가깝고도 먼 이웃에 도착한 후에 가이드 미팅하고 40여분 걸려서 "그랜드 프린스  호텔 오사카 베이"로 이동하여 이곳에서 2박한다. 

(간사이 국제공항에 착륙하여 보니 대부분의 안내나 광고에 한국어가 들어가 있어서, 그 동안에 한인들이 무수히 방문한 걸 알 수 있었다. 17층 호텔방에서 내려다 본 오시카 북부 야경인데, 시내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어서 15층 정도의 아파트와 굴뚝이 있는 많은 공장 건물이 보였다. 그런데 공장 굴뚝주변에 철골을 둘러놨는데, 아마도 지진으로 인하여 기울거나 무너지는 걸 방지하려는 방책같이 보였다.)

- 3/31 아침에 1시간 20분 걸려서 1,000년의 고도인 교토에 갔다. 그리고 "오토와 산"에 있는 범상종의 총본산 고찰인 "기요미즈데라(청수사)"엘 들렸다. 778년에 창건되었지만, 다이묘들의 권력 투쟁으로 여러차례 소실되었다가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츠"(1603년에 막부의 초대가 되었던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3대 쇼군)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사찰로 가는 긴 골목길인 "산넨자카"와  "니넨자카"엔 수학여행온 학생들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사찰 주변에는 호수와 잎 크기가 작은 일본단풍과 벚나무가 울창하여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사찰에 이르는 전통이 유지된 "니넨자카" 골목길엔 음식점/선물 가게가 즐비하고 인산인해를 이룬다.)
(처음 보는 꽃이라 특이하여 검색해보니 Erica Mammosa/ 가이드가 소개하는 에도막부 타도를 주도한 메이지유신의 사무라이 Royoma Sakamoto-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기요미즈데라"인데, 사찰 주변에는 주로 일본단풍과 벚꽃이 많아서 봄과 가을에 그 조화가 일품이란다. 그리고 못을쓰지 않고 지었다는 본당이고 저 아래로 고베시가지가 펼쳐져있다.)
(부처를 모신 법당은 관광객에 의한 손상을 막기위해서 목책을 둘러놨다.)
( "오토와야마"에서 흘러나오는 폭포물을 세개의 튜브에 흘려내려서 두 번 마시기도 하고 손을 씻으면서 학업/사랑/건강 등을 기원 한다. 그리고 채색이 없는 돌로된 관문이 있는 사찰과 붉은 색으로 칠한 전형적인 관문(도리이とりい - 鳥居새집)이 있는 신사가 같이 있는 곳이 많아서 부처한테 빌고 또 신사에서토속신이나 실재 인물 /전설속의인물 등 에게 소원을 빌기도한다. 참고로 붉은 채색의 관문을 통과하면 신성한 지역이고 새가 빈 소원을 신에게 전달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많은 일본인들이 참배한다. )
(점심 식사는 일본 전통 요리집에서-. 뒷뜰에 금잉어가 모이를 줄까봐 가장자리로 몰려오고, 붉은 수련이 핀 연못이 있는 정원이 있다. 요사이 일본 남부쪽으로 올라오는 폭풍우의 영향으로 구름이 잔뜩 끼었고 비가 오락가락하여 한층 더 차분한 정취를 만끽하였다.)

 

(교토 서북쪽에 위치한 "아라시야마(풍산)"와 고찰 텐류지(천룡사)가 있고, 헤이안 시대 귀족들이 "가츠라가와(계천)" 에서 유람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된 "도게츠교 다리가 있는데, 기둥과 상판이 썩어서 콘크리트로 대체한 모습이다. 그리고 "노노미아" 신사가 있는데, 많은 일본인들은 토속신에게 소원을 빈다. 윗쪽 다리 배경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은 아름답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인력거를 끄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40분에 40,000옌인데 빌리는 업주에게 30%주고 70% 소득이 되어, 하루 6~8차례 끌면 큰 소득이 된단다.)
(색색의 기모노를 입은 젊은 아가씨들에게 부탁하여 집사람이 같이 셀카 한 컷을-. 이 풍산(아라시야마)에 있는 대나무숲(치쿠린)이 일품이다. 세계적으로 1,200 여종이 있다는데 이곳 대나무는 수명이 15~16년이라는데 죽순이 연신 나와서 수명이 다해도 울창한 숲이 연전히 보전된다.)

 

(저녁식사는 오사카로 돌아와서 초밥에 시원한 정종 한 잔을 즐겼는데, 메뉴 가격이 2,970엔이다. 원으로는 대략 8.8을 곱하면 26,000원-. 일산 "쿠우쿠우" 일식부페 가격이 24.900 원으로 기억하는데, 샐러드는 리필이 되지만, 비싼 편인가?. 호텔에 돌아 와서도 지하에 Lawson이라는 마켓에 들렸더니 소주가 있어서 안주거리도 샀고 객실에서 한 잔 더-)

- 오후에 오사카 전망대인 "Harukas 300"에 갔는데, 일본내에서 300m로 3번째로 높다. 이곳에서 사방으로 둘러보면서 느낀 것은 한국같이 고층 아파트가 거의 보이지 않고, 녹지대는 서울보다는 적게 보였고 북편 우리 숙소(전망대 사진의 왼쪽 위)가 있는 쪽에는 해안인데 공장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분위가 좋아서 커피 한 잔-.

(일본에서 3번째로 높은 Harukas 300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풍경은 한국과 좀 다른 모습이다.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 죽순같이 솟아있는 걸 보면 악~소리가 난다. 비좁은 나라라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지만, 일본은 지진 때문인지 15~20층 정도의 서민 아파트만 보이고 녹지대는 서울만큼 많지 않다. 오사카는 일본에서 도쿄 다음으로 큰 도시인데, 시내 인구는 200만이고 주변 합쳐도 700만정도란다. 그리고 커피숍으로 내려와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에 달콤한 치즈 케익을 즐겼다.)

- 6/1 아침 7:30에 이틀 지냈던 이곳 호텔에서 Check-out하고 고베로 향했다. 고베에서는 나라 공원에서 방목하는 사슴을 보고 또 "도다이지(동대사)"를 둘러보고, "기쿠마사무네" 주조 기념관과 1500년대부터 개항이 시작되어 많은 서구인들이 들와서 살기 시작한 "기타노이진칸"도 가본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교가  왕성한 시대인 675년 덴무천황 집권 시에 육식을 금지하여 그 후로 인본인들이 왜소하게 되었는데, 무려 1000년이나 지나면서 불교문화를 배척하고 1500년대 개항시대를 거치면서, 1868년 메이지시대에 이르러 육식을 허가했다고 한다.

나라공원에는 길들여진 사슴이 돌아다니면서 관광객들이 사서 주는 비스켓을 먹으러 쫒아다닌다. 거사가 생각하기엔 그 비스켓 맛에 길들여진 사슴들이 안타깝게 보였습니다만-. 이곳엔 높이가 47m나 되는 목조건물인 "도다이지(동대사)"가 있고, 대불전 건물은 동양 최대의 크기인데, 740년대에 나라현 지방에 지진, 천연두, 화재 등이 많아서 악귀를 몰아 내기 위해 "동대사"가 창건되었는데 그 동안 소실되어 1708년에 재건하였다. 그리고 황금색의 "치미"는 멀리서 봤을땐 백제유적에서 본 수리의 꼬리를 연상했는데, 아마도 백제 불교 영향을 받아서 유사한 형태의 치미를 올렸다는 생각이 든다.

 

(1995년 6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고베 지진으로 붕괴된 "한신 고가도로"와 내진을 감안하여 재건된 모습(오른쪽). 고가아래로 지나가는데, 받히는 기둥 크기가 몇 배는 굵게 만들었다.)
(점심은 영양 솟밥으로. "기타노이진칸"이라는 이방인들이 거주한 곳을 가기 전에 "기쿠 사께" 주조 기년관에 들러서 시음하고 16도 일반 정종과 21도 매실 정종을 각기 한 병을 샀다.
(2022년 7/8 전 일본 수상 아베 신조가 살해당한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 역 사거리 근처/ 아무리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이라도 도로변 낮게 다듬은 철쭉위에 던진 페트 물병이 보였다.)

 

(개항 당시 서구인들이 살던 "이진칸(외국인집)"인데 산자락에 위치하여 예전에는 바다가 보였는데, 이제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입장료도 받는다.)
("고베 하버랜드"엘 들려서 유람선이 떠나는 모습도 보고, "모자이크 정원"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카페가 즐비하다.)
(오사카에서 2박하고 고베 세라톤 호텔에서 1박하러 저녁에 들어와서 2014년에 오픈한 "하마이즈미" 에서 시설로 잘된 자가온천수로 다양한 효능이 있다는 온천욕을 즐기고 부페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메뉴가 다양하고 좋았다.)

- 06/02: 아침에 고베를 떠나서 다시 오사카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로 머물었고 숨을 거둔 "오사카성"을 먼저 들르고, 에도시대부터 약 400년 동안 이어져 오사카의 상징이 된 곳인데, 밤에는 운하 좌우로 네온사인이 찬란하고 유람선도 오간다. 이곳은 가부키 같은 연극, 최신 패션, 음식점, 술집, 선물가게로 북적이는 대표적인 번화가인 "난바"지역의 "도톤보리"를 둘러보고, 저녁 식사로 장어 덮밥과 소바를 즐길 일정이었는데, 집사람이 영화 "빠진코"의 오사카 25만 한인들이 일궈놓은 "츠루하시(학 다리)"를 가면 어떡하냐 하여 가이드의 호의로 둘러봤다.

(오사카성엘 조금 일찍 가서 인파를 면했다. 올라갈 때는 각층에 들러서 사적자료를 흝어보고, 내려 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중요 사적 자료는 촬영금지라서 일부는 촬영이 허락되어 올렸습니다. 예전에는 성 주변에 판 인공호수가 화살 공격이 닿지 않을 만큼 넓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제요시가 주로 머물던 성은 그야말로 요새화한 곳이다. 그런데 6/2 아침에 오사카성보다 더 큰 Himeji라는 성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오사카성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 성은 고베 근교에 있는데,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이 주둔한 곳이라 미군이 폭격을 하였지만 직격탄은 불발이 되어 소실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 속에 기울고 낡아서 값싼 가격에 팔리기도 하였고 지금은 지자체에서 보수하여 운영하고 있단다.)

 

(장어 덮밥과 소바로 점심을)
("도톤보리"와 "신사이바시"는 엄청나게 붐빈다. 2016년인가? 한인 관광객한테 와사비 테러를 한 "이치바 스시" 오사카 지점도 이 근처라는데-)



(100년전인 1924년부터 제주-오사카를 오가는 페리로 3500명 정도 왔으며 공장 노동일이며 해녀로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일제 강점기 동안에 약 20만명이 건너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일 년에 한국에서 200만명이 오사카를 방문한다는데, 그들의 보금자리인 "츠루하시(학다리)에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봤다. 어느 한식 반찬가게의 음식을 찍으려할 때 아주머니가 쳐다보길래 찍어도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승락하며 웃어보였다. 가게가 즐비한 뒷골목에 가보니 살고있는 집도 꽉 차있다. 일제 식민지때부터 차별이 심한 이곳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감격적이었다.)

 

(간사이 공항에 가는 도중에 본 공장의 굴뚝이나 관제탑주위엔 방진을 위한 철재구조물이 둘러져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승강장을 빠져 나갈 때 저쪽에 대한항공 비행기도 보였고 또 이룩준비를 마친 지상 요원 3명이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을 첨 보았는데, 이색적이고 인상이 깊어서 나도 창에서 열심히 흔들어줬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 어느덧 끝나고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하여 오후 6:30 이륙-. 해지는 석양의 붉게 물든 하늘은 참 고왔고 1시간 50분후에 인천공항으로 내려가는데 여러 색으로 바꿔지는 영종대교의 푸른 불빛도 고왔다. 8:30 쯤 착륙하여 입국수속을하고 짐 가방 찾아 나오니 9:00가 넘어갔다. 1시간이나 기다렸던 동생 내외가 마중나와 서울 서초 숙소로 이동하는데도 1시간이 걸렸다. 여행의 마지막날은 긴장도 풀리고 또 매우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