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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秋想)-해외문인협회 수필 당선작(2007)

바람거사 2022. 9. 14. 10:27

                                                                                                     김석휘(Mark S Kim)

 

며칠 전 캐나다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찬 기운을 밀어붙이더니 밤 새 기온이 영하로 조금 떨어진다고 하였기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동안 밖에서 공들려 가꿔 논 화분들을 갑자기 실내로 옮겨 놔야 하는 소동이 벌어진 게다. 아직도 체리 토마토, 임페이션트, 제라늄, 야래향, 재스민, 선인장, 장미 등이 좀 더 아쉬운 초가을 태양 빛을 즐기고 싶다는데,  이게 무슨 날 벼락이냐 하며, 덮어씌울 건 그렇게 하고, 안으로 드려 올 건 서둘러 그리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첫서리가 조금 내렸지만, 다행히 냉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붉거나 샛노랗게 물들여져야 할 캐나다 단풍은 이파리가 일부 우그러지고  누리 구리 한 갈색으로 탈색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겨울이 6개월이 넘는 이런 동네에서 뼈다귀를 묻어야 하나? 하고 투덜거리며 여기저기 쓰여 논 비닐을 걷어치우고, 밖으로 내놓을 건 또 죄다 내놨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런 불평을 해 온 거지만, 봄부터 여름 내내 작렬하는 태양 빛만 내려 쪼이는 애리조나 피닉스나  로스앤젤레스는 죽어도 가기가 싫다. 여름철 간간이 작달 비 시원하게 내리며 우르르 꽝 하는 소릴 듣지 못하면 살맛이 없기 때문이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서인지 몰라도 나는 가을을 유난히 무척 탄다. 만추가 되면 회상도 무르익는다. 서재밖에 서있는 사과나무의 마른 가지에 비바람이 치면서 몸 둘 바 모르게 흔들어대는 걸 보면서, 이미 낙엽 진 잎들 위에 자근자근 내리는 빗소릴 들으면 난 반미치광이가 되어 버린다.  리처드 클라이더먼의 피아노 연주곡 모음을 연속으로 틀어놓고 레인 와인 몇 잔을 연거푸 비우면서 깊고도 깊은 추상의 늪에 빠져 버린다.

 

요사이 가제로 ‘어느 남자의 사랑 이야기’의 380쪽 분량을 탈고시키고, 출판사를 알아보라고 서울에 있는 지인한테 부탁을 하였다. 초등학교 이래로 정들었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35년 만에 찾아낸 첫사랑 얘기, 학창 시절, 군바리 시절 풋사랑을 준 아름다운 사람들 얘기,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서 지금의 아내를 포함해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또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만났던 사람들 얘기를 묶어놔 봤다. 허지만 다 추억이 된 얘기일 뿐이기에 허무할 따름이다.

 

오늘은 나의 18번인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연거푸 틀어보다가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을 들어본다.  작년 이맘때쯤 그 첫사랑이었던 여고생을 인터네트를 통해서 찾아내었는데, 너무 반가운 맘에 몇 개월 간 정신없이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가 올 초에 갑자기 그녀는 소식을 끊어버렸다. 이제 와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정말 이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알리가 없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나도 떨떠름하게 웃음을 지면서 그녀의 괴로운 맘을 이해해 주기로 하였고, 지난 일은 그런대로 놔둬야 하는 맘이 들어서 더 이상 그녀를 흔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9월 초 이주일 동안 일 때문에 방한을 하였다. 시카고에서 출발하여 인천 공항까지는 13시간이 걸린다. 사실 비좁은 공간에서 자기 자신과 잘 타협해서 지내지 않으면 지겹다면 지겨운 시간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32번을 왕복하면서 16만 마일을 다녔다. 어떤 때는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서류 정리를 하기도 하였고, 때론 코냑이던 위스키나 포도주던 연거푸 마셔대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흘러간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얘길 쓰다가 선잠도 자면서 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번 한국 가는 비행기에서는 진작 읽었어야 했던 책 몇 권을 가방에 쑤셔 넣는데, 우선  지난 5월 인천 사는 여동생한테 부탁해서 우편으로 부쳐준 이문열의 ‘신들메끈을 고쳐 매며’ 를 펴 들었다. 그 책을 받아 놓고서도 네댓 달이 되었는데도 머리말도 읽지 못하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해치워 버리자고 맘먹고 점심식사가 끝나던 오후 1시 정도부터 책을 펴 들었다. 이문열은 그 머리글에서 자신이 이제 56살인데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좋은 글을 쓸 수가 있을 건 가를 얘기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대개 젊어서 쓰였고, 몇 대호들만이 명작을 남겼다. 괴테의 <파우스트>, 밀턴의 <실낙원>은 우리들의 정년인 65세 후쯤에 쓴 것이고, 톨스토이는 71살에 <부활>을, 토마스 만은 72살에 <선택된 인간>, 프랑스의 시인 구르몽은 80줄에 <낙엽>를 썼다지만, 특별한 자기 관리를 하였거나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예외적인 역작들이었다고 하였다.

 

작가는 정년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정년이 되는 65세를 기준으로 하여 그가 55세이니, 앞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도 맘이 갑자기 섬뜩해졌다. 젊어서는 젊음의 고마움을 모르고, 세월이 이리 빠르게 지나치는 걸 모른다. 뭔 가를 잃어봐야 그 진가를 아는 우리들이다. 큰 일을 하던 작은 일을 하던, 나름대로의 분위기에 휩쓸려 세월이 그렇게 빠르게 지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어서니 말이다.

 

그래, 나도 앞으로 내일을 하는 기간도 혹 길에서나, 카페에서, 또 어딘 가에서 만나 사랑하고픈 사람을 만난다 해도 앞으로 얼마나 그런 아름다운 맘을 느낄 것인 가를 생각하니, 괜스레 이 가을이 유난히 쓸쓸해진다. 아,  앞으로 내 인생의 황금기가 그 말대로 10여 년밖에 남지 않았는가?

 

우리는 옛적에 품었던 서운함, 미움, 더 나가서 사랑하는 맘까지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그토록 애절하게 그리워하며 하루를 견디기가 힘이 들었던 실연이라도 불과 수년만 흐르면, 그렇듯 애달게 몸부림쳤던 지난날의 나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절로 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슬픔이 평생을 가지만, 그래도 수 십 년이 지나고 새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 키우다 보면, 그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도 많이 무뎌져 버리는 것이다. 그게 우리 인간의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랜 진화를 통해서 우리의 유전인자 속에 내장되어 온 실체인 것이다. 그걸 우리는 망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망각은 우리에게 약도 주면서 병도 주는 필요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망각이 우릴 잠시 그렇게 편하게 하도, 70여 년 전 천애 고아로 태어나, 15년 전 교통사고로 몸이 부실해져 고전 무용을 그리 좋아하셨기에 큰 무대에 서서 하얀 옷을 입고 살풀이를 신명 나게 춰 볼 꿈을 접어 버린 어머니의 고뇌, 무슨 이유로든 하시라도 접속이 되어 몸 부린 치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인생무상을 또  맘속에 저미어본다. 그래, 못 이룬 사랑, 꿈 이 모든 것이 다 잊히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 무슨 연유로 깊고도 깊은 회상의 늪으로 우릴 무자비하게 끌어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