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여행 이야기

베이징 투어 3박4일(2010)-Ep.1

바람거사 2023. 2. 13. 11:35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을 30여 년 전에 되새길 때는 한창 일할 때 왜 노는 타령을 하는가 의아했었다. 그런데 그 말이 2, 30년이 지나고 나서 실감케 한다. 구태여 포괄적으로 얘기하면,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모두 다 젊어서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그런 여행을 다니는 것도 물론 경제적인 여유도 중요하지만, 지금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중요하다. 휴가도 없고 주말도 반납하며 일하는 대부분의 개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2, 3주는커녕 단 1주일도 비우지 못하기에 은퇴할 때까지는 꿈도 꿔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래도 둘 다 직장에 다니는 처지여서 맘만 먹으면 1년에 1, 2차례 다닐 입장은 되었지만, 이제 20년도 넘은 1987년 겨울에 목 부위를 다치는 큰 사고로 거동이 몹씨 불편하신 모친을 생각해서 우리끼리 맘 편하게 나다닐 수가 없었는데, 우리도 어느새 50세 중반이 넘어가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모친은 간병인들과 전투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지내시기에, 몇 시간의 외출도 힘이 든다. 그래서 외박을 하는 여행은 매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2001년에 방한하여 제주도며 강원도를 다녀오신 이후로는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모친은 세월이 갈수록 몸이 비대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잦은 골절을 당하셨다. 그러니, 비행기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는 10시간도 넘는 해외여행은커녕 몇 시간의 자동차여행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내가 2007년에 서유럽 관광을 다녀오기 전인 2002년에 처음 계획을 짤 때는 당연히 우리 부부가 단체여행으로 가는 거로 돼 있었는데, 나의 모친은 어차피 이런 해외여행은 다니실 수가 없기에, 집사람은 생각 끝에 이번에는 나이가 모친과 비슷한 74살의 장모님을 모시고 가고 나는 다음 기회를 잡아보자고 하여 기꺼이 양보해드렸다. 그런데 그때 장모님은 양 무릎 관절 교체 수술을 했어도 걸음을 잘 걷지 못하였는데, 언제 다시 그런 여행을 다니겠느냐는 공통적인 의견수렵이 있어 보내드렸지만, 실제로 가보니 걸어서 다녀야 할 일정이 많았기에, 집사람은 1시간 이상이 소요되거나 오르락내리락하는 곳은 아예 버스나 만날 장소에서 얼쩡거리며 기다렸다고 하였다. 그런 여행을 다녀온 후로 장모님은 다시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우리끼리의 여행계획을 우연히 처제네 식구한테 건네 들으시고는, 고통스러웠던 옛 생각은 다 잊으시고, 여행 자체만의 좋은 추억만이 기억에 남아 내심 서운해하셨다.

 

지난 2008년 동남아 투어 때도 마찬가지고, 이번 4/27~4/30 베이징 투어도 마찬가지다.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등의 적절한 이유를 대고 일주일쯤 집을 비운다는 말을 해드리고 다녀보면, 역시 보행이 힘든 사람들이나 연로한 어르신들이 다닐 여행은 절대로 못 된다고 매번 느꼈다. 그래서 이번 방한에 맞춰서 다녀온 베이징 투어는 어르신들에게는 비밀에 부치고 다녀오게 되었다

 

장모님이 이제 만 82세로 작년에 장손이 장가를 가니, 꼭 참석하고 싶다 하시어 보내드렸는데, 올해는 또 한국에 있는 자식들의 집안에 이런저런 힘든 일이 뜻밖에 생기는 바람에 자칫 실기하면 후회가 될 썽 싶어 장도에 오르셨다.

 

그래서 출국은 우리보다 1주일 먼저 하시고, 우리가 베이징 관광하는 건 모르시게 한 후에 2주 후에, 작년 10/10에 결혼한 장남 내외와 같이 출국하기로 하였다. 동행하면, 분명히 망쳐질 여행이지만, 그래도 알려드리고 이해를 바라는 거보다 차라리 하얀 거짓말로 처음부터 둘러대어 모르시는 게 더 좋은 일이니 말이다.

 

4/25, 일요일 낮에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출발하여 13시간 비행을 하여 인천공항에 4/26, 오후 3시 반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인천에 사는 여동생 부부가 마중 나왔고 한 시간 반 후에 부평에 있는 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피로가 채 가시기 전에 다음 날 아침 34일의 베이징 투어에 필요한 간단한 짐만 챙겨서 인천공항엘 나갔다.

 

이렇게 하여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베이징 투어가 시작됐다. 우리 세대는 아직도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된 비극의 1/4 후퇴를 기억하고, 공산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기에, 2시간의 짧은 비행 끝에 베이징 공항에 착륙하여 오성기가 휘날리는 공항청사를 바라보는 맘은 찹찹했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 온 세상이 이제는 잘 먹고 잘사는 데 초점이 모이다 보니, 정치적인 이념보다는 경제적인 흐름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에는 우방이 되는 묘한 아이러니가 생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4 /25 오전 11시 40분, 비오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이륙하면서-

 

대한항공 기내식은 최고. 선식으로 나온 피망/ 락스(훈제 연어)한 점과 레드와인. 와인은 캘리포니아산 Mondavi(몬다비)와 Chateau(샤또) 두종류를 내놨는데, 몬다비는 좀 달고 무난하지만,이 거사는 떫은 맛이 있는 샤또를 서너 잔(적은 거로)마셨더니, 알딸딸한 기분이 넘 좋습니다. 여행동안에는 모든 시름 다 잊어버리고 여행자체만 생각합니다. 아, 이제설레는 여행의 시작이구나! 낮설은 곳에서새로운 걸 보고 듣고 배우는설레는 기분 때문에 힘든 여행을 떠나 가겠죠?

 

13시간의 비행끝에 인천공항에 착륙, 공항을 나서는 길옆에 아직도 벗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예년에 비해서 기온이 낮아 희고 또 분홍 선홍의 철쭉이 이제 피기시작하고, 아직 벚꽃도 지지않아서 야- 좋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인천공항 입구의 이 조형물은 뭘 상징하는 걸까요? 지구를 나르는 비행체? 그러나 이구동성으로 졸작이라는 말을 합니다. 혹자는 묘한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4/27(화), 우려했던 황사는 없고 다행히 맑은 편이다. 공항청사에 붉은 글씨로 쓴 '북경'을 보니 실감이 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베이징 중심가에 위치한 큰 식당앞에 도착했습니다.

 

중국 전통음식이라지만 퓨전버젼인지, 먹는데 큰 지장이 없이 맘껏 즐겼습니다.

 

Oriental Bay라는 고급호텔에 3일동안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호텔방에서 밖을 보는 전망이 좋아서 자금성의 뒤에 있는 경산공원의 동산 (자금성 뒤편의 인공호수를 판 흙으로 만든)의 누각도 먼 거리에서 잘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가까히 있는 2개의 누각은 북해공원에 있는거로 생각되는데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호텔 로비입니다. 조식이 6:30부터라 잠시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들어왔는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자고/ 잘 먹고 / 잘 보는 거라지요? 이곳 아침식사는 양식/중식 으로 잘 차려 있었습니다. 강행군을 하는 여정을 위해 골고루 잘 먹었죠-.

 

 

천안문 광장에서

 

                      

광장 근처에는 여러 건물들이 많습니다. 중앙의 인민영웅기념비 뒤편으로 인민대회당(중국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입니다. 아래 건물은 국가박물관입니다.

                                                                                      

명/청조 황제가 살았고, 마지막황제 푸이를 찍었던 쯔진청(자금성). 남쪽의 텐안먼(천안문)을 들어선 후 중간 남문인 '오문'입니다.

 

태화전에 들어서는 태화문. 거대한 규모의 여러 건물을 보면서 한국의 고궁을 비교해봅니다.거대한 중국을 다스렸던 이곳 궁전에는 9999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한국의 고궁이 더 아름답고 여성스러움을 느낍니다.
경복궁 근정전 전경
태화전의 전경입니다. 건축양식으로 처마나 용마루를 보면, 직선이 많으나 한국의 고궁건물에는 완만한 곡선이 있어 더욱 아름답죠? 단청이나 기와의 색상도 뉴앙스가 틀리는군요. 이곳은 황실의 색깔인 노랑과 중국인들이 기호하는 붉은 색이 많은 게 특징이군요.그런데, 한국의 것처럼 지붕의 기와가 검은 곳은 서고랍니다. 검은 색은 물을 상징하여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함이랍니다. 그리고 궁전에는 후원을 빼고는 나무가 없는데, 외부에서 침투하는 암살자들이 은신을 하지 못하게 하기위해서였답니다.

 

자금성내에는 수 많은 금도금 철제 항아리가 있는데, 소방을 위한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금도금을 한 게 많이 벗겨져 있는데, 청조말엽에 서구 열강들이 침략을 했을 때 병사들이 금을 긁어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태화전 앞에 있는 자금성에서 제일 규모가 큰 돌 조각이된 계단(약 17미터 x 3미터 x 1.7미터에 200톤). 조각에 쓰인 암석은 베이징 서부 지역에서 운반하였는데, 처음 명조(1761년)때 돌을 옮길 땐 겨울철에 길에 물을 뿌리고 얼게한 다음에 끌어서 운반하였고, 청조때 명의 이미지를 없애고 구름속에서 노니는 용과 연꽃으로 다시 조각을 했다는군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