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을 30여 년 전에 되새길 때는 한창 일할 때 왜 노는 타령을 하는가 의아했었다. 그런데 그 말이 2, 30년이 지나고 나서 실감케 한다. 구태여 포괄적으로 얘기하면,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모두 다 젊어서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그런 여행을 다니는 것도 물론 경제적인 여유도 중요하지만, 지금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중요하다. 휴가도 없고 주말도 반납하며 일하는 대부분의 개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2, 3주는커녕 단 1주일도 비우지 못하기에 은퇴할 때까지는 꿈도 꿔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래도 둘 다 직장에 다니는 처지여서 맘만 먹으면 1년에 1, 2차례 다닐 입장은 되었지만, 이제 20년도 넘은 1987년 겨울에 목 부위를 다치는 큰 사고로 거동이 몹씨 불편하신 모친을 생각해서 우리끼리 맘 편하게 나다닐 수가 없었는데, 우리도 어느새 50세 중반이 넘어가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모친은 간병인들과 전투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지내시기에, 몇 시간의 외출도 힘이 든다. 그래서 외박을 하는 여행은 매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2001년에 방한하여 제주도며 강원도를 다녀오신 이후로는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모친은 세월이 갈수록 몸이 비대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잦은 골절을 당하셨다. 그러니, 비행기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는 10시간도 넘는 해외여행은커녕 몇 시간의 자동차여행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내가 2007년에 서유럽 관광을 다녀오기 전인 2002년에 처음 계획을 짤 때는 당연히 우리 부부가 단체여행으로 가는 거로 돼 있었는데, 나의 모친은 어차피 이런 해외여행은 다니실 수가 없기에, 집사람은 생각 끝에 이번에는 나이가 모친과 비슷한 74살의 장모님을 모시고 가고 나는 다음 기회를 잡아보자고 하여 기꺼이 양보해드렸다. 그런데 그때 장모님은 양 무릎 관절 교체 수술을 했어도 걸음을 잘 걷지 못하였는데, 언제 다시 그런 여행을 다니겠느냐는 공통적인 의견수렵이 있어 보내드렸지만, 실제로 가보니 걸어서 다녀야 할 일정이 많았기에, 집사람은 1시간 이상이 소요되거나 오르락내리락하는 곳은 아예 버스나 만날 장소에서 얼쩡거리며 기다렸다고 하였다. 그런 여행을 다녀온 후로 장모님은 다시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우리끼리의 여행계획을 우연히 처제네 식구한테 건네 들으시고는, 고통스러웠던 옛 생각은 다 잊으시고, 여행 자체만의 좋은 추억만이 기억에 남아 내심 서운해하셨다.
지난 2008년 동남아 투어 때도 마찬가지고, 이번 4/27~4/30 베이징 투어도 마찬가지다.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등의 적절한 이유를 대고 일주일쯤 집을 비운다는 말을 해드리고 다녀보면, 역시 보행이 힘든 사람들이나 연로한 어르신들이 다닐 여행은 절대로 못 된다고 매번 느꼈다. 그래서 이번 방한에 맞춰서 다녀온 베이징 투어는 어르신들에게는 비밀에 부치고 다녀오게 되었다.
장모님이 이제 만 82세로 작년에 장손이 장가를 가니, 꼭 참석하고 싶다 하시어 보내드렸는데, 올해는 또 한국에 있는 자식들의 집안에 이런저런 힘든 일이 뜻밖에 생기는 바람에 자칫 실기하면 후회가 될 썽 싶어 장도에 오르셨다.
그래서 출국은 우리보다 1주일 먼저 하시고, 우리가 베이징 관광하는 건 모르시게 한 후에 2주 후에, 작년 10/10에 결혼한 장남 내외와 같이 출국하기로 하였다. 동행하면, 분명히 망쳐질 여행이지만, 그래도 알려드리고 이해를 바라는 거보다 차라리 하얀 거짓말로 처음부터 둘러대어 모르시는 게 더 좋은 일이니 말이다.
4/25, 일요일 낮에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출발하여 13시간 비행을 하여 인천공항에 4/26, 오후 3시 반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인천에 사는 여동생 부부가 마중 나왔고 한 시간 반 후에 부평에 있는 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피로가 채 가시기 전에 다음 날 아침 3박 4일의 베이징 투어에 필요한 간단한 짐만 챙겨서 인천공항엘 나갔다.
이렇게 하여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베이징 투어가 시작됐다. 우리 세대는 아직도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된 비극의 1/4 후퇴를 기억하고, 공산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기에, 2시간의 짧은 비행 끝에 베이징 공항에 착륙하여 오성기가 휘날리는 공항청사를 바라보는 맘은 찹찹했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 온 세상이 이제는 잘 먹고 잘사는 데 초점이 모이다 보니, 정치적인 이념보다는 경제적인 흐름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에는 우방이 되는 묘한 아이러니가 생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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