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시카고사는 이야기

어느 노인들의 야반도주 - 2021

바람거사 2023. 2. 1. 02:10

 

정말로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더니, 아니 그게 정신적이던, 욕정적이던 간에 나이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걸 또 실감하였다.

    

지난 주말에 집사람이 점심 모임에 다녀와서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아니 글쎄, 아빠도 안면이 있는 그 C 아무개라는 여자가 이번엔 아주 만루 홈런을 쳤다네요-."

"또 무슨 큰 일이라도?"

 

시카고 동포사회의 장년층에서 그녀의 행실이 시골 동네의 풀어놓은 암캐 수준 인 그 C 아무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녀는 뇌구조가 어찌 되었는지, 결혼 생활 하는 동안에도, 아마도, 합의 이혼 전까지 피차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고 지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거리의 여자처럼 주변의 남자들과 눈만 맞으면 닥치는 대로 수 없이 놀고 다녔다.

 

 대략 10년 전에 집사람과 같이 시카고 시내에 있는 어느 병원에 장모님 병문안 갔다가 로비에서 우연히 집사람과 공식적인 모임에서 자주 만났던 그녀와 마주쳤는데, 몇 마디를 인사조로 주고받을 때, 나는 몇 걸음 뒤에 서있었다. 그러다가 같이 어울려서 주차장으로 나가는 긴 복도를 걸어가는데, 느닷없이 입이 딱 벌어지는 얘길 묘한 웃음을 흘리며 서슴없이 하였다.

"얼마 전에 LA에서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였는데, 아주 오랜만에 단짝으로 지냈던 동창을 만났지 뭐야. 그래 뭐, 이제  애밸 일도 없으니, 그날 저녁에 한 잔 하고 같이 잤지 뭐-!"

그런 얘길 왜 집 사람한테 한 것도 이해가 안 갔는데, 같이 걸어가는 나도 들으라고 크게 얘기했으니,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쇼크를 먹었고, 그녀의 음기로 가득 찬 눈빛을 살짝 살펴봤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실실 웃으며 얘길 계속하고 있었으니 더 기가 막혔다.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해전에 그 부부가 당연히 갈라섰다는 얘길 들었다. 이제 자유부인이 되었으니 이런저런 단체 행사장에 빠지지 않고 다니면서 모르긴 몰라도 더욱더 신나게 놀았을 게다. 아마도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데는 이미 통달한 입장이라, 가끔 연말 행사장에서 그녀를 보면 항시 당당하게 보였다. 영어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어서인지 동포사회에서 감투도 여러 개 쓰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현대판 카사노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과도한 성적 희열을 추구하는 Hedonism을 숭상하는 '성의 여신'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집사람이 얘길 계속하였다.

"그것도 교회에서 알게 된 가정이 있는 62세의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네요."

"뭐 62살? 아니 그 여자 나이가 몇 살인데?"

"73이야-"

"70대 초반이라고 생각은 했지만서도. "

"그 남자는 전에도 그렇게 줄행랑을 친 상습범이라는데-"

"아무리 그래도 73살이나 먹은 사람이 주변정리를 하지 않은 채 순간적으로 그리 했겠어? 와, 적어도 한 두 달 전에 다 준비해 놓았겠구먼. 철없이 사랑만을 가지고 맨 몸으로 튈 때는 아니지-. 완전 계획적이었네-. 도대체 뭘 하고 지내려고 그리 튀었을까? 아마도 돈이 떨어지기 전에 정력이 먼저 바닥나면 눈먼 사랑이 시들해지고 꺼지면, 한 바탕 싸우고 또 찢어지겠지? 그러나 이젠 모두 다 시카고로 돌아올 수는 없겠군 그래-. 와, 예전 같으면 선데이 서울에 날 빅 토픽감이네 그려-. 미국 엔콰이어러 잡지사에서 알면 난리 날 거 갔네-!"

"당신도 남자니까, 은근히 그런 게 좀 부럽지 않남요?"

"무슨 소리여. 그것도 정도 차이가 있는 거지. 비밀리 한 달에 한 번씩 외진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지? 그건 조족지혈이군-. 하여튼, 막가는 청춘, 아니지, 그 나이에 남은 인생이 무지 아쉬웠던 모양이군."

 

더 심각한 건 두 사람의 만남이 교회에서 이뤄졌다는 거다. 동포사회에서 서로 첨 만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첫인사가 "어느 교회에 나가십니까?" 하는데, 좀 조사를 해보니, 성인 동포의 7, 80%가 크리스천이란다. 불교신자가 5, 10%이고 기타 종교를 빼고 나면 나같이 무종교인 사람은 10명에 한 명 꼴도 안된다는 얘기다. Chicago는 LA, Atlanta, Houston, NYC, Washington DC에 비해서 춥고 또 보수적이라 동포 인구가 자꾸 줄어든다.

 

수십 년 동안 눈 많이 내리고 아마 일 년에 반은 긴 겨울을 감내해온 시카고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동포는 극히 드물 게다. 우리 내외같이 두 남매가 혼인하여 며느리나 사위도 모두 시카고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직 손자 손녀들이 어린데, 그 녀석들과 정이 들어서 헤어질 수도 없으니, 앞으로 5년 이상은 어디 따뜻한 동네로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잘 알고 지내는 40년 지기 지인이 LA의 Laguna Woods라는 타운을 다녀왔는데, 한 동안 시카고에서 안 보였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리로 와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얘기가 좀 본 궤도에서 벗어났는데, 시카고의 인구가 매년 줄어들어서 이제 시카고 근교 타운 다 합쳐도 10만이 채 안될 건데, 교회의 숫자가 무려 300군데가 넘는다. 믿음이 있어서 나가는 사람과 장사 속으로 또는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소위 대인관계로 나가는 사람의 비중이 반반은 될 거라 믿는다. 그러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장사하면서 현금 챙겨 탈세를 하거나, 불륜으로 놀아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크리스천들이라는 아이러니가 따른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속칭, '연애당'이라는 말이 정말로 맞다는 걸 실감한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