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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必然)과 우발(偶發)이 어우러진 人生

바람거사 2023. 2. 16. 23:56

* 거사가 2002년에  거나하게 한 잔 들고 쓴 넋두리인데, 20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단상(斷想)에 변함이 없어서 맘의 정화가 필요할 때  끌어올립니다. *

 

 

필연(必然)과 우발(偶發)이 어우러진 人生

 

노자가 얘기한 도가 제아무리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 하여,

포괄적인 최상의 경지를 말한다고 하여도,

석가모니가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五蘊皆空 度一切苦厄)'한 해탈을 하였어도,

또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을 믿고, 죽은 뒤 천상에서 영생한다 해도,

우리는 단지 찰나를 살다가는 진화가 가장 잘된 생명체일 뿐이 다네.

고상함과 고귀함을 얻고 깨달아도 그게 그 걸세.

바뀔 건 하나도 없다는 얘기네.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도 그런 체하는 일일세.

 

천지 불인(天地不仁)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지만, 그 자체가

우리한테 교훈을 줄 건더기는 없는 걸세.

모든 자연 현상은 필연으로 이루어지며 갈 데까지 가는 걸세.

날이 더우니 물이 증발하고, 구름이 무거워지고 차가워지면 비가 오고,

정전기가 누적되니 벼락이 내리고, 기압골이 생기니, 바람이 불 뿐이네.

우리의 근본과 삶의 목적이 무엇이고, 왜 그 근본이 이 땅에서만

이루어졌는가를 과연 알 필요가 있을까? 또 알면 뭐하나?

그동안 쌓아 놓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치가 뒤집히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 태고의 비밀을 알아내는 순간 Twilight Zone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리는 거대한 악동(惡童)으로 변신이 되는 일도 없을 터인데.

 

35억 년 전 최초의 미생물이 무슨 조화를 통하여 유일무이한 이 땅에

만들어진 후, 500만 년의 진화를 통하여 필연적으로 우리는 태어났다지?

개 코가 예민하고, 독수리 눈이 망원경같이 잘 보인단 것을

우리 인간이 이해하기 힘들 듯이, 우리는 두뇌와 성대가 잘 발달하여

이러하듯 만물의 영장이 된 것뿐이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어나서,

궁극적인 의문만을 한 아름 안은 채 자연으로 환원되는 것이네.

이 땅의 모든 생물이 유한하며 그렇게 필연에 의해 가고 있을 뿐이 다네.

 

동굴 속의 벽화도 기록이라면, 인간의 역사는 불과 3만 년 일이네.

기원전 6세기경의 노자나 석가의 시대나, 예수의 시대가 엊그제, 어제하고

뭐가 다르리오. 지나간 날의 장단은 의미가 없는 일이요.

1000년이든, 100년이든, 50년 전, 아니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소. 지난 일은 지난 거요.

오로지 가장 확실하게 불변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잠시 머물다가

그야말로 <존재치 않음>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뿐이요.

 

노자가 말하는 그 최상의 도를 깨달아도,

색불이공(色不異空)이니 공불이색(空不異色)의 의미를 깨닫는다고,

천상에서의 영생을 믿고 또 믿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이요.

반향(反響) 없는 메아리요, 하늘에 대고 침 뱉는 일이요.

어차피, 근본도 모르는 우리인데, 헛것을 믿으며 매달린다고 누가 탓하겠소.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맘의 평화를 느낀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을.

 

어렵사리 키워준 부모를 제치고, 해외 선교를 떠나는 젊은이들,

깨달음을 앞세워 출산한 처를 두고 출가해버린 <용운>,

후년에 맘 변하여 혼례 또 치르는 파렴치한 위선자는 되지 말게나.

뿌린 씨앗 책임지지 못하고, 자기만의 깨달음을 위해 처자를 버린

<성철>의 아전인수도 본받지 마오.

<걸레>가 산속에 앉아만 있으면 뭘 하노?

청량리를 가든지, 영등포엘 가는 게 더 타당한 얘기가 아니오?

한 번 가기도 힘든 산골에 앉아서 자기 수양만 하는 오만과 위선의

극치가 아니겠소?

<법정>, <석용산>,---

고적한 산사에 들어앉아 있으니 모두 다 시인이 되었구려.

 

성경, 불경을 잘 암송하고, 선문답 잘한다 해서 자기를 깨우치고,

중생을 깨우칠 일이 아니오.

오로지 실천 가능한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가 있을 따름이요.

그게 천상의 시나리오에 따른 것도 아니고, 운명도 아닐 게요.

지금의 나는 필연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내가 하는 일도 필연으로 하는 것이오.

그리고 또 내가 의도치 않은 일이 우발로 생긴 다지만,

그것 또한 필연이라고 봐야 할 일이니,

그게 우리가 가는 우리의 인생이오!

 

전장에 자식을 보내고 자기 자식만은 꼭 살아 보내 달라고

지극 정성 기도를 다 하여도,

저격병한테 선택되어 죽임을 당하는 병사들의 선택된 우연,

장난 삼아 던진 돌에 그중 한 마리 개구리의 머리가 터지는

그런 우연 같은 필연 말이요.

 

잠시 살다가 없어질 몸이지만,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며, 뭔가를 이루는 보람된 희열을 즐겨 보이.

부모한테 효도하고, 식솔에게 듬뿍 정 주어 맘의 상처일랑 주지 말며,

친구나 지인을 배려하고, 해 없는 미물이라도 함부로 하지 말게나.

우주의 시작과 끝이니, 생명의 근원이 어떠니, 영원불멸 최상의 득도며 해탈,

천상에서의 영생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