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년 전인 2013년 3월에 시카고에서 이문열 작가의 “시인” 사인회에 참석하여 독자들과 대담을 경청하고 그 책자도 샀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으로 “사람의 아들”이나 그 외 몇 권의 작품은 오래전에 접하였지만, “시인”은 그 동안 서재의 한 귀퉁이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3년 1월 3일부터 6일까지 딸네 식구들과 같이 Miami에 있는 호텔 리조트로 避寒가면서 읽을거리를 찾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문열 작가는 이 책에 심혈을 들인 수작으로 생각하였는데, 국내 독자들한테 큰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거사는 읽기 시작하여 점점 빠져들면서 나흘 만에 메모하며 완독 하였다..
김병연 金炳淵(호: 난고 蘭皐, 별호: 김삿갓-金笠):1807~1863
순조 11년(1811) 섣달, 평안도 지방의 차별과 세도정치를 비판한 홍경래 난의 봉기로 관서지방의 선천방어사 조부 김익순은 반란군에게 투항하여 벼슬까지 받았는데, 관군이 난을 진압 후에 역적에게 항복한 대역죄인이 되어 능지처참 형을 받았다. 그리고 조모 전주 이 씨는 광주의 관비로 축출되었으며, 3족을 멸하는 명이 내려질 무렵, 김익순의 아들인 김안근은 곧 닥치게 될 멸문을 피하려고 세 아들의 맏이인 7살 된 병하와 더불어 둘째인 5살 배기인 병연은 노복 김성수의 등에 업혀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시켜서 노비로 위장한 고난의 삶이 이어졌다. 그리고 부친 김안근은 남해로 귀향 갔고 모친은 셋째 병호를 데리고 여주 이천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후일에 순조 때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는 안동 김 씨의 방계 친척인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둘째 아들인 김좌근이 삼족을 멸하는 명을 거두게 하여 폐족으로 감형시켰으나, 부친은 지병인 노점(癆漸-폐병)이 악화하여 죽었고, 모친 함평 이 씨는 식구 모두를 데리고 역적 집안이라는 세인의 괄시와 천대를 피해서 강원도 영월로 이주하여 살았다.
모친은 한이 되어 쓰러진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고 영특한 둘째 병연으로 하여금 학문에 열중하게 했으나, 지방 관아에서는 대역죄를 진 죄인에 대한 감시와 천대가 끝없이 이어졌고, 고을에서도 소문이 퍼져서 생계를 유지할만한 일을 찾을 수 없어서 장남 병하는 장돌뱅이가 되어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결국 산속으로 들어가서 밭을 일구면서 농사짓는 일을 하면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훗날 20세의 성인이 된 병연은 장수 황 씨와 혼인을 치르고 영월 동현에서 실시한 백일장 시제인 ‘논 정사산 충절사, 탄 김익순 죄통우천(論 鄭嘉山 忠節死, 嘆 金益淳 罪通于天)’에서 정가산의 충절을 기리고, 조부를 호되게 비판하여 장원이 되었으나, 모친으로부터 할아버지가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 크게 낙심하여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로 옮겨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22세 때 아들 학균을 낳은 뒤에 상경하여 이름을 김란으로 바꿔서 권문인 안응수의 문객이 되어서 중앙에 출세를 도모했지만, 김좌근이 소문이 자자한 비상한 문객이 병연이라는 걸 눈치채고 그를 불러서 호통치며 멸족을 면하게 해 줬으면 이제 근신하면서 죽은 듯이 없는 듯이 살아가라고 하였다.
병연은 또 큰 상처를 받고 낙향하여 형도 25세에 역시 부친처럼 노점으로 죽자 아들 학균을 대가 끊긴 형한테 계자 입양시키고 후에 둘째 익균을 얻었다. 그러나 병연은 낙향한 후로 학문을 멀리하게 되자, 모친은 그를 다시 보지 않겠다는 편지를 병연의 처에 남기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는 25세에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자책하며 삿갓을 쓰고 죽장 짚고 방랑길에 올랐다. 그리고 김삿갓(김립)이라는 별호를 얻고서 전국을 방랑하며 여러 기인들과 교우하면서 술 마시고 기생들과 어울리면서 숱한 기행과 더불어 자연경관이며 세도가를 비판하고 고통과 절망 속에 사는 민초들의 애환을 담은 많은 시를 읊었다. 그 역시 노점이 악화하여 철종 14년(1863년)에 56세로 전남 화순군 동복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였는데, 몇 년이 지나서 아들 익균은 유해를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이장하였다. 그런데 그 후로 안동 김 씨 세도가들은 김익순의 복권이나 사면을 건의하지 않았는데, 45년이 흐른 후 순종 때 총리대신 이완용의 건의로 1908년 4월 12일에 기하여 조부 김익순은 명예회복이 되어 작위와 시호가 복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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