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여행 이야기

제주탐방(5): 7/1~7/3/2024

바람거사 2024. 7. 25. 07:11

한라산 동쪽 산기슭에 위치한 "관음사" 는 4.3폭동때 수난을 당한 사찰이다. 이곳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한라산 정상(1947m)은 갈 수 없으나 1,925m 까지 오를 수 있다. 그리고 항몽 유적지를 들렸는데, 힘없는 고려의 역사의 아이러니가 점철된 유적지다. 용두암, 제주박물관, 정방폭포, 제주의 생태 자연숲 곶자왈, 용두암, 돌염전, 국립제주박물관, 정방폭포, 환상숲, 상방산 보문사, 용머리, 하멜 표착지, 도립 곶자왈, 국제학교지구 등을 둘러봤다.

7/1:

[4.3 사태가 얼룩진 한라산 보문사와 전통 혼례 소개하는 혼인지. 어델가나 색색의 수국이 눈길을 끈다.]

 

[힘없는 나라의 비극이 얼룩진 소위 "삼별초난"의 유적지. 삼별초난이라고 부르는게 어처구니없다. 몽고가 점령한 고려정부가 합세하여 결국 진압하였으니 말할 수없는 수치다.유적지에 핀 짙은 자주색의 송엽국이 화사하고 엉겅퀴도 피었는데 예쁘다.]

 

[엊그제 섭지코지엘 왔으나, 폭우로 인하여 진입 도로를 막아놨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가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 있는 등대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한가하게 풀을 뜯는 조랑말들이 보였다. 그리고 동생이 네비를 찍고 제주도를 동쪽끝에서 횡으로 운전하여 서편 신창 숙소까지 오는데 2시간이 걸렸다. 동생이 남은 흑돼지를 밖에서 굽는데, 매번 들고양이 한 마리가 얼쩡거렸고, 오늘은 나무밑에서 뭐라도 주지 않나 기다리고 있다.]

7/2:

[애월에 있는 "돌염전"을 둘러봤는데, 바다물이 넘쳐서 이곳에 잠궈지면 물이 다 증발한 후에 소금을 체취하였단다. 그런데, 물이 도중에 넘쳐들어오면 어찌했을까? 이런 돌 염전을 대를 이어 자손들이 계속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1978년 신혼여행때도 비가 온 종일 왔었는데, 용두암에 잠시 들렸고, 그 다음엔 2001년에 어머니하고 우리 부부와 여동생 부부와 같이 왔었다. 주변에서 생선회와 소주를 샀고, 랜트카 반납 시간이 촉박하여 나중에 공항에서 먹고 마시면서, 그곳에서 바로 잡은 해물이 아니고 미리 잡아 놓은 걸 용두암 앞 바다밑 바위에 감춰놓은 걸 건져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20년도 넘게 지난 요즘에도 그 근처 수산 시장에서 사온 걸 바로 잡은 거라 속여서 바가지를 씌웠다는 방송을 봤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혼을 보여준다. 그리고 1978년 신혼여행으로 왔던 제주 공항 근처 KAL Hotel의 모습을 차타고 가면서 순간적으로 찍어봤는데, 지금은 매각추진중이고, 서귀포에 새로 생긴 칼 호텔이 있단다.]

 

[ 1978년 신혼 여행 사진을 들쳐보니, 그때도 비가 왔는데, 택시가사와 계약하여 우릴 데리고 다니고 식당도 소개해주는 그 친절했던 기사가 찍어준 사진이 있어서 같이 올려봤다. 와, 45년이란 세월이 흐르더니, "홍안은 간데온데 없고, 노안만 남았다". ]
[용두암을 둘러 보고 "국립제주박물관"엘 들러서 전시장을 들어가기 전에 "제주 10경"소개를 보고, 천지연/천제연 폭포는 두어차례 가봤기에 "상방폭포"도 생략하려고 했는데, 비가 많이 내린 후라 폭포수가 많을 거 같아서 가봤다. 막상 가보니,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박물관 옆 화단에 "백량금"이란 첨 보는 붉은 꽃도 예쁘고 맥문동의 자주꽃이 만개하였다. 그리고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러 사자인 서복이 수행원 5백명과 더불어 해안에 닻을 내리고 영주산(한라산의 옛 명칭)에 불로초를 찾아갔는데, 구하지 못하고 돌아 가면서 이곳 해안이 비경이라며 절벽에 "서불과지"라는 글을 남겼다하여 세운 "서복전시관"엘 들렸다. 중국풍으로 건물이 지어졌는데,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서귀포시에서 적자운영을 한다고 하였다. ]

7/3:

[개인이 운영하는 곶자왈인 "환상숲"인데 제주의 지질과 생테계를 보여주는 곳이다. 그런데 입장료도 받는데 별로 볼 게 없었다. 낙옆층 아래 현무암층에 많은 기공도 있고 또 큰 웅덩이 바닥에는 기공이 큰 곳이 많아서 비가 오면 배수가 빠르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큰 나무들은 단단한 현무암을 피하여구불부구불 마치 뱀같이 뻗어서 흙이 있는델 찾아서 뿌리를 내리는데 매우 단단하다고 하였다. 마치 캄보디아의 앙크르왓트의 구조물을 감싸듯하면서 뿌리를 내리는 " 스펑나무" 처럼. 좀 깊은 계곡의 낮게 파진곳의 온도는 연중 14도 정도를 유지하여 서늘하였다.]

 

[상방산 산자락에 있는 "보문사"에 왔는데, 해무가 끼여서 산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395m의 산이 경사가 심한데, 벼랑 중턱에 바위굴에 있는 "산방굴사"는 영주 10경중에 하나다. 그리고 도립 곶자왈을 들려서 1시간 넘게 숲속길을 걸는데, 햇볕이 없어도 무더워서 땀으로 손수건이 푹 졌었다.]

 

[대정은 제주도 남서에 위치하여 태풍이며 폭우도 흔하다. 화가가 아닌 추사 김정희가 작성한 "세한도"에 그린 삽화의 소나무가 여기 올린 소나무와 매우 흡사하다. "용머리"해안은 잦은 폭풍우로 해안가 진입을 하지 못하여 "하멜 " 표류 선박이나 보려고 하였더니, 3년전에 낡아서 해체를 하였고, 벤치에 앉아 있는 하멜을 만나봤다. 하멜은 나가사끼로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서 제주도 해안에 좌초하였다. 그는 여러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1666년에 13년만에 22명 선원중 8명만 가까스로 나가사끼에 갔는데. 1년내에 떠나라는 일본 정부의 명을 받고 네델란드 고향에 가서 소속사인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에 12년간 받지 못한 임금을 받기위해서 항해일지를 제출했는데, 이 일지가 "하멜 표류기"가 되어 유럽에 조선을 소개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하멜이 앉아있는 벤치옆에 있는 "사계해녀의 집"에서 해삼/소라/멍게 모둠을 2만 원 주고 나이든 해녀 할머니 여럿이 나눠먹기로 일하는 거 같아서 지역봉사 차원에서 사서 우리 형제만 먹었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도중에 국토일주를 하는 세종대학교 학생들을 봤는데, 앰블런스도 따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금방 비가 내릴 것같은 하늘을 보며 숙소로 가는 길에 꼬맹이 수박도 2개에 1만원(?)에 사서 저녁식사때 즐기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려고 술 잔도 튀기며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