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부터 시작한 제주와 고흥, 통영, 거제, 진주 탐방을 뒤로하고, 목포, 거창, 포항 그리고 호미곶에 들렀다. 그리고 영덕에서 대게시장 거쳐서 문경새재와 단양팔경 돌아보고 지난 5월 초에 강원도 탐방을 하면서 잠시 들렸던 영월로 다시 가서, 7/14에 비운의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와 장릉과 그 근처에 있는 한반도지형과 법흥사를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경기도 안성엘 꼭 들릴 일이 있었다.
단종이 수양대군한테 양위를 하고 상왕이 되었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도, 사육신이나 생육신을 포함하여 금성대군까지 복귀를 꾀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이곳 청령포에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유배시켰다. 청령포는 3면이 남한강 상류인 서강으로 둘러싸였고, 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외부와 단절이 되었다. 1457년 세조 3년에 이곳에 유배되었는데, 그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겨서 두 달 만에 영월부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단종은 헤어져 살아가는 정순왕후를 몹시 그리워했지만, 서울 청계천 영도교에서 헤어진 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세조는 끊임없이 자결을 강요하였고, 그해 10월에 17세 나이로 숨졌는데, 시종이 살해했다고도, 사약을 받았다고도 하고 또 자결 했다고도 하지만, 세조는 그런 기록을 정확하게 남길 리가 없다.
세조의 강압으로 나이 어린 정순왕후 송씨는 1454년에 단종보다 1살 위인 14살에 혼인하여 왕비로 책봉되었다. 단종이 강등되었을 때 그녀도 폐서인이 되어서 노비로 살면서, 염색과 바느질을 하며 동대문밖 숭인동 청룡사 근처에 초암을 짓고 시녀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는 얘길 세조가 듣고서 집과 식량을 내려줬으나 받지 않았는데, 세조는 노비로서 살지만, 사역없이 아무도 범하지 못하게 "정업원"으로 보냈다. 정업원은 출궁 한 후궁들이 여생을 보내는 곳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을 평생 그리워했고 82세까지 모진 삶을 살았다. 그녀의 무덤은 남양주시에 있는 사릉(思陵 )이다. 문자 그대로 그리워하는 능이고 경춘선의 사릉역은 그녀의 능호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