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여행 이야기

거창-호미곶-영덕-문경-단양-영월: 7/11~7/14/2024

바람거사 2024. 8. 15. 23:34

6/23부터 시작한 제주와 고흥, 통영, 거제, 진주 탐방을 뒤로하고, 목포, 거창, 포항 그리고 호미곶에 들렀다. 그리고 영덕에서 대게시장 거쳐서 문경새재와 단양팔경 돌아보고 지난 5월 초에 강원도 탐방을 하면서 잠시 들렸던 영월로 다시 가서, 7/14에 비운의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와 장릉과 그 근처에 있는 한반도지형과 법흥사를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경기도 안성엘 꼭 들릴 일이 있었다. 

[거창 창포원이 유명하다하여 들렸는데, 창포는 다 지고 연지에 연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호미곶에 들려서 검게 만든 "상생의 손"을 봤는데, 2011년 11월에 지중해 쿠르즈 여행때 튀르키에의 쿠사다시 해안에서 본 하얀 손을 모델로 만든 거 같다. 영덕으로 가는 길에 해안에 거대한 규모로 뻗어있는 포항제철을 보고 오늘의 철강 강국을 만들게한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의 업적에 새삼 감탄하였다.

 

[말로만 듣던 영덕에서 별 먹을 게 없는 홍게는 금어기라 보이지도 않고, 대게식당이 꽉 들어찬 길 끝, 포구옆에 있는 "동광어시장"에서 생물을 사다가 자기네하고 연관된 "충무식당"에 가지고 가면 요리를 해준다고 하였다. 어째튼, 지금은 금어기라 조개 모듬과 수입산 대게를 맜있게 즐겼다. 인주가 좋으니, 우리 부부와 제수씨는 아주 조금, 소주를 안 마실 수없었다.]
[1950년 9월에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미군이 태평양 전쟁때 상륙작전에 동원된 상륙함인 문산호인데, 14~17살의 학도병 772명/지원 요원 52명이 탄 상륙함이 강풍으로 좌초되어 인민군의 집중공격을을 받고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했다고 보고 되었지만, 행방불명이 다수였단다. 영화 "장사리" 를 촬영한 곳이고 1997년에 침물된 배와 신원확인이 어려운 많은 유해를 인양하여 묘역이며 추모탑과 광장이 조성되었다.]

 

[문경 고모산성은 신라시대때 군사방어용도로 축성한 것을 복원하였고, 근처에 었는 옛 철도 터널에 오미자를 선전하는 시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순식당이라는 곳을 한참만에 찾아갔는데, 백반정식이 1만원이 안 되었지만 잘 차려진 정식이라 손님이 많았다.]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보러 한양에 갈 때 꼭 거쳐가는 문경새재다. 3관문이 있고 길옆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이 예나 지금도 정겹게 흐른다. 초입에는 식당이며 숙박업소가 즐비하다. 우리는 전동차를 타고 제2관문까지 올라갔고 그곳을 돌아보고 차거운 계곡물에 세수하고 손발도 적셨다. 그리고 하산때도 전동차를 이용하였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최근 영화로 "강감찬"을 촬영한 곳을 지나치면서 사진만 찍었다.]

 

단종이 수양대군한테 양위를 하고 상왕이 되었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도, 사육신이나 생육신을 포함하여 금성대군까지 복귀를 꾀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이곳 청령포에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유배시켰다. 청령포는 3면이 남한강 상류인 서강으로 둘러싸였고, 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외부와 단절이 되었다. 1457년 세조 3년에 이곳에 유배되었는데, 그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겨서 두 달 만에 영월부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단종은 헤어져 살아가는 정순왕후를 몹시 그리워했지만, 서울 청계천 영도교에서 헤어진 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세조는 끊임없이 자결을 강요하였고, 그해 10월에 17세 나이로 숨졌는데, 시종이 살해했다고도, 사약을 받았다고도 하고 또 자결 했다고도 하지만, 세조는 그런 기록을 정확하게 남길 리가 없다.

세조의 강압으로 나이 어린 정순왕후 송씨는 1454년에 단종보다 1살 위인 14살에 혼인하여 왕비로 책봉되었다. 단종이 강등되었을 때 그녀도 폐서인이 되어서 노비로 살면서, 염색과 바느질을 하며 동대문밖 숭인동 청룡사 근처에 초암을 짓고 시녀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는 얘길 세조가 듣고서 집과 식량을 내려줬으나 받지 않았는데, 세조는 노비로서 살지만, 사역없이 아무도 범하지 못하게 "정업원"으로 보냈다. 정업원은 출궁 한 후궁들이 여생을 보내는 곳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을 평생 그리워했고 82세까지 모진 삶을 살았다. 그녀의 무덤은 남양주시에 있는 사릉(思陵 )이다. 문자 그대로 그리워하는 능이고 경춘선의 사릉역은 그녀의 능호에서 유래했다.

[영월 서부시장에서 사온 녹두전병과 전으로 숙소에서 영월동강 생막걸리를 마시며 저녁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온달 관광지를 잠시 들렸다.]
[점심은 단양 "오성통닭"에서 닭강정과 마늘만두로---]
[아주 오래 전부터 말로만 들었던 단양군을 중심으로 12km 내에 있는 단양 8경을 모두 돌아볼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승선표가 과한 17,000원인 유람선을 40분동안 타면서 "옥순봉"과 "석문" 그리고 "도담삼봉"만 봤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실망하였다. 그리고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 다음으로 들린 곳은 제천의 "의림지" 였고 박달재는 시간상 들리지 못하였다. 제천 의림지는 삼한시대때부터 존재한 역사적인 저수지다. 점심식사는 소문난 "주천묵집"에서 도토리묵 비빔밥으로 맛있게 즐겼다.]
[영월 호장 엄흥도의 행적을 알고보니 그 시절에 죽음을 불사한 그의 충절은 가히 높히 기릴만하였다. 우리 일행이 장릉을 둘러보고 6:00 시가 될 무렵에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비운의 단종에 대한 연민으로 맘이 아팠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한반도지형"을 둘러보고, "사자산법흥사"엘 들렸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서기 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지만, 1912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1933년에 재건되었다. 그리고 제천으로 다시 돌아와서 안성 요양병원에 2시에 면회 약속이 잡혀있어서 박달재는 들리지 못했고 근처 휴게소에 금봉이를 껴안은 목상이 있어서 담아봤다.
[미국 양로원에서 수 년을 지내다가 한국에서 거소증 발급받아서 보험혜택을 받고 안성요양병원으로 옮겨 온 친지를 10여년만에 만나봤다. 신장암으로 한쪽을 제거한 후로 심한 우울증에 걸린 그에게 여기 한국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집에 가고싶다라는 말을 표정없이 한 게 우리들의 맘을 아프게 하였다. 30분의 면회를 마치고 무거운 발길로 밖으로 나와서 서울근교에서 출퇴근 시간대를 피하려고 서둘러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장마철인데 모처럼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눈이 시도록 아름다운 오후였다. 1시간 정도 지나서 서울이라 쓴 톨 게이트 사인이 보였는데 오후 4:37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