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거사네 뜨락의 모습을 올렸는데요, 이제 초하를 넘어서 성하의 계절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에 모든 게 무척 많이 자랐군요.
- 제일 먼저 싱싱하고 씁스름한 상추를 실컷 즐겼는데, 이제 고동이 길게 나오고 꽃이 피려 합니다.
- 오이는 이어짓기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올 해는 그냥 같은 곳에 심어서 그런지, 줄기가 말라 가는 병에 걸려서
수시로 잘라내거나 뽑아내서 이제 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만, 그동안 그래도 가게에서 파는 것과는 달리, 향기 좋은
싱싱한 걸 된장에 찍어서 즐겼고, 애들이나 집사람 지인들에게 한 개씩이라도 나눠 줬답니다.
- 깻잎은 가뭄에도 잘 견디지만, 물도 자주 줬더니 너무 잘 잘라서 실컷 따먹고도 초간장에 남은 건 넣어서 놔두면
오래 먹죠. 어떤 때는 해를 넘기기도 하여 겨울에 밥에 얹여서 먹기도 하는데, 예전에 어머니가 된장에 박은 것도
아주 오랫동안 즐겼죠. 어려서 물만 밥에 한 장씩 얹어 먹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 호박은 다섯 구덩이를 파고 길렀는데, 제 주먹이 무지 큰데, 씨가 크게 생기기 전에 그만할 때 따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한 구루에서 세 개를 따냈더니, 그 옆을 지나가면, 매번 구시렁 거리네요. "주인장인지 뭔지,
싸가지도 배려도 없어-. 한 개는 씨받이로 남겨 놔서 우리도 후대를 이어야 할 게 아닌가?" 하면서 말입니다.
호박도 역시 나눠 먹습니다만, 냉장 보관해서 오래 놔뒀던 식품점에서 사온 것과는 질감이 틀리는 군요.
연하고 맛이 너무 좋아요. 집사람이 후라이 판에 들기름/참기름/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새우젓과
굴소스를 넣고 살짝 읶이면, 국물도 나와서 맛이 그만입니다. 이역 만리에서 한국의 맛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청량고추는 엄청 크게 주렁주렁-. 아주 단단하고 큰 걸 따서 역시 된장에 찍어 먹습니다. 집사람은 속이 예민하여
아주 매운 건 사양합니다. 그래서 소인이 일단 고약하게 생긴 건, 시식을 해보고 아주 약하게 매운기가 있는 정도면
건네줍니다. 그 아삭거리는 질감이 너무 좋습니다.
- 가지도 올해는 아주 크고 길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내일쯤 두 개를 수확하려고요-.
- 그런데 줄기가 뻗지 않은 콩은 벌써 주렁주렁 열렸는데, 이 강낭콩인지 뭔지는 아직도 줄기를 뻗치는 기개가 등등하고,
아직 꽃도 안 피우고 말입니다. 이곳 여름이 한참 갈 거라 생각하는지--. 알아서들 하겠죠-.
- 사막의 장미도 붉게 피고 또 동백꽃, 커피나무도 무럭무럭 자랍니다. 나팔꽃도 서너 송이씩 피기 시작하고 어머니한테
서 받아 온 봉숭아 씨앗으로 우리 집에 이사를 온 후로 매년 저리 붉게 피기 시작하니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나고 눈시울
이 뜨거워집니다.
- 그리고 한국에서 잘 자라는 추억의 땅꽈리나 까마중도 잘 크고 있답니다. 어머니가 그 추억의 땅꽈리를 좋아하셔서
꽈리 주머니가 옅은 갈색으로 물들면서 망사같이 변하면 그게 짙은 자주빛으로 잘 읶어갑니다. 그걸 따다가 같이
먹으면서 옛 이야기 많이 하였죠-. "아니, 미국에도 이런 게 있어? 아범이 어찌 알고 이걸 키웠어? " 하시며,
감격의 눈물이 글썽하시던 모습이---.
- 또 무궁화꽃도 이제 막 피기 시작하고 글라디올로스, 해묵은 분꽃, 그 옆에 핑크빛으로 피는 하이비스커스는 내 손바
닥보다 더 큰 꽃이 예쁜데, 하루 밖에 가질 않지만, 연신 피고 지집니다.
- 이제 어둠이 깔리고 좀 서늘해지면 반딧불 벌레들이 짝을 찾느라고 형광빛을 점멸하면서 밤이 깊어지고 시끄럽게 울던
매미소리도 잠잠해집니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 역질로 얼룩졌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올 여름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계절의 채바퀴에 맞물려서 유유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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