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창/추억의 노래 92

원로가수 안다성 타계-2023.1.11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되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납니다만, 올 1월 11일에 향년 92세로 원로 가수 안다성 님이 타계하였습니다. 고향이 속초인 동창이 그의 "바닷가에서(1963)"를 즐겨 불렀는데, 이 거사는 "사랑이 메아리칠 때(1963)"를 좋아했습니다. 1956년에 발표한 "청실홍실"의 듀엣곡은 오랫동안 우리들의 맘에 남아있읍니다만, 송민도 님은 1925년 생으로 현재 LA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도 미국에서도 슬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Elvis Presley(1935~1977, 42세)의 고명딸인 가수 Lisa Presley가 54살의 젊은 나이에 너무 안타깝게 심장마비로 타계했습니다. 이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방화 "열풍(1965)"과 첫 색정

* 이미자가 1965년에 영화 주제곡으로 처음 불렀고, 그 후에 문주란도 불렀다. 1967년 여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어머니와 더불어 나는 전주에서 기차를 타고 군산에 가서, 다시 연락선을 타고 난생처음으로 장항으로 건너갔다. 그날따라 희뿌연 구름이 꽉 낀 날, 어머니는 시집오기까지 6년 동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양조장의 부엌일을 도맡아 곤두박질하며 지내셨던 장항을 근 20년 만에 들리셨다. 천애의 고아로 자라면서 길가의 잡초같이 질긴 삶을 살아온 어머니로 봐서, 이제 허우대가 멀쩡하게 잘 자란 장남인 나를 꼭 그 양조장 안주인인 먼 친척 되는 할머니에게 당당히 보여 드리고 싶으셨나 보다. 어머니는 꿈많던 소녀 시절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방년 19살이 되는 1947년, 30살 노총각인 선..

"후회는 없다"- 에디뜨 삐아프(1960)

"Non, je ne regrette rien"-후회는 없다: By 프랑스 국민가수, 비련의 Edith Piaf (Dec. 19,1915~ Oct 10, 1963, 몸집이 왜소하여 별명이 La Mome Piaf-작은 참새) 2008년 9월 5일, 서유럽 투어 중, 처음 간 파리에서 Escargot(달팽이 요리)를 안 먹을 수가 없었지요. 달팽이라고 하지만, 옛날 어렸을 적에 논에서 잡았던 우렁이 만하고, 겉 집이 더 단단합니다. 맛은 우렁이나 소라 같은데, 레드 와인을 곁들여서 먹고 나니 취기도 올라, Sacre-Coeur Basilica 옆, 잿빛 짙게 깔린 몽마르트르 어느 골목 어귀에서 포즈를 취해봤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기억 속에서는 몇 년 전 일 같은데, 무려 14년 전이라니 허무하기 그지없군요-..

"I Do It For You"- Bryan Adams(1992)

[거사 주]: 거사는 서정적인 에피소드를 올릴 때는 매번 배경 음악으로 올렸습니다. This song was written by Bryan Adams and Mutt Lange around a piece of film music by composer Michael Kamen. This trio of songwriters, went on to have 3 number one records during the 1990's. Sadly Kamen died of multiple sclerosis in 2003, Adams says "Losing Michael was like losing a brother, and I think of him every time I sing this song." This video..

"안개여 말 전해다오"- 장미리(1973)

1972년 10월에 군기가 칼날같은 대구 전투비행단에 배속받아서 대대장한테 "야, 쏘위도 장교냐?" 하는 소리도 들어가며, 별보기 운동하며 출퇴근하느라 정신 못차리게 근무하다가 1년 후에 중위로 진급하고 항공기 정비관리 본부로 옮기면서 맘의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1973년에 장미리가 취입한 걸 라디오에서 듣고, 가사나 곡이 너무 좋아서 즐겨 불렀습니다. 어느 가을날 오후, 활주로 옆 키를 넘는 갈대밭에 드러눠서 흥얼거렸죠-. 그땐 사귀는 사람도 없어서 데이트도 못했지만, 근무 끝나면 대전 출신 정비장교 동료인 김 중위와 어울려서 억수로 술집을 전전 했었습니다-.

'그대 변치 않는다면'- 방주연

이 노래가 1972년에 낸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인데,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아닙니다. 그해 여름 공군 소위로 임관후 12주 특기교육을 받고 첨 배속으로 대구기지 전투비행단의 일선 라인에서 근무할 때는 새벽별 보기 운동하며 무척 바쁘게 지냈답니다. 모처럼 당시 소사에서 공사장 함바집을 하면서 고생하는 어머니와 낮에 일하고 야간에 고등학교엘 다니는 여동생을 만나보고, 밤늦게 고속버스로 대구에 도착할 무렵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맘이 너무 짠했답니다.- "언제고 언제라도, 다시 또 만나기를--, --"이라는 구절이 자기네 버스를 다시 이용해 달라는 의미로 틀어줬겠지만, 그 선률이 낯선 객지에서 무척 쓸쓸하게 만들었죠-.

"젊은 내고향"- 금호동(1967)

금호동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는데, '젊은 내고향'은 학창시절에 가끔 불러봤다. 전라남도나 특히 광주 출신의 가수가 많다. 고 오기택을 비롯하여, 금호동, 남진, 강진, 김경호, 김연자,하춘화, 장미리, 송가인, 현진우 등-. 60년대말에 달동네 금호동이 생각나면서 그의 이름을 쉽게 기억했다.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 audio element.

"잊을 수 없는 그대(1998년)"- 박일남/나훈아 비교해보세요

거사의 단편소설 "배신의 장미"의 배경 음악으로 올렸던 노래인데, 하도 절절하여 별도로 올려봅니다. 혼자 뇌까리는 절규를 한다고 해서 떠난 님이 돌아 올까요? 찾아가서 만나보고 어르면 행여 맘을 돌릴 수 있으려나? 지나간 버스는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되돌아오게 못하겠죠. 차라리 다시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게--------. 1998년에 발표한 곡으로 나훈아가 첨 불렀는데, 쫌~ 느끼해서리-. 여기 박일남의 노래와 나훈아 노래를 같이 올려보는데, 함 판단해보세요-.

Sennokaze(千の 風)- A Thousand Winds by Arai Mann

오래전에 한국의 전 아무개 국회의원이 소개해서 알게된 "아라이 만"과 그가 작곡해서 부른 노래입니다. 그녀는 그가 방한했을 때 인터뷰도 했고, 그의 CD를 선물로 받고 집에 가는 도중에 흐느끼면서 들었답니다. 2015년 3월 16일에 올렸던 에피소드입니다. 광고·사진·작곡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988년 일본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유명작가이며, 2003년 말 추모시를 일본어로 ‘천의 바람이 되어’ 번역하고 작곡하여 자신이 직접 불렀다. 원래 이 시의 제목은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인데, 마릴린 먼로 25주기 추도식(87년)과 9·11테러 희생자 1주기 추도식(2002년) 등에서 낭독됐지만 노래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이 시에 대해서, Ame..